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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진흙 속의 피는 꽃..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칼럼] 진흙 속의 피는 꽃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07/13 06:25
▲ 김덕권칼럼니스트 진흙 속에 피는 꽃

<진흙 속에 피는 꽃>은 한 30여 년 전 제가 원불교에 귀의한지 5년 만에 ‘홍익출판사’에서 발간한 첫 수필집의 제목입니다. 진흙 탕 같은 권투 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제가《일원대도(一圓大道)》를 알고부터 우러나온 인생의 환희를 서툰 글로 쓴 책이지요. 그때 이 책의 원고를 읽어보시던 홍익출판사의 이승용 사장이 눈물을 흘리며 쾌히 출판을 결심하셨다는 말씀은 가히 충격이고 감동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0여 년 동안 저는 연꽃 같은 인생을 살아가느라고 무진 고생을 했습니다. 한 순간도 한눈을 팔지 않았습니다. 일직 심으로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제가 지닌 모든 정열을 쏟고 또 쏟았습니다. 이제 제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되돌아보노라니 여간 감개가 무량한 것이 아닙니다. 과연 나는 연꽃 같은 인생을 살았는가요? 그 연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며 얼마나 더 닦아야 할지를 가늠해 봅니다.

연꽃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는 ‘처염상정(處染常淨)’입니다. 더러운 곳에 있어도 항상 깨끗하다는 의미이지요. 탐 진 치(貪瞋痴) 삼독(三毒)에 물든 중생들이 사는 사바세계에서도 깨달음의 향기를 잃지 않는 것이 연화(蓮花)입니다. 바로 이 연꽃이 불교와 원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지요.

네팔에 있는 룸비니동산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태어났다는 평성(平石)을 보았습니다. 어머니 마야부인의 옆구리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가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합니다. 불교의 시작이 이렇게 연꽃과 함께 한 것이지요. 아기 부처님과 연꽃의 인연은 후대인들이 각종 벽화나 불화(佛畵)에 연꽃을 그려 넣었습니다.

지금도 사찰 벽화나 불화 등에는 아기 부처님이나 동자들이 연꽃 위에 앉아 있거나, 뛰어 노는 모습을 표현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불상(佛像)을 봉안하는 좌대를 연화대(蓮花臺)라고 합니다. 또 불상 뒤 대부분의 광배(光背)도 ‘연화화생(蓮華化生)’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원상(一圓相)》부처님께 귀의해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서방정토에 왕생(往生)할 때 연꽃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이 연화화생입니다. 즉 광배를 연화화생으로 표현하고 연화대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곧 불가(佛家)에 귀의해 수행정진 하겠다는 원력(願力)의 표현입니다.

《화엄경(華嚴經》<탐현기探玄記)>에는 연꽃의 덕을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향(香, 향기)이고, 둘은 결(潔,고결)이며, 셋은 청(淸, 맑음)이고, 넷은 정(淨, 깨끗함)입니다. 비록 중생이 사는 세간이 무명(無明)과 탐욕으로 얼룩져 있지만, 진리를 상징하는 연꽃은 청정하고 깨끗하여 맑은 향기를 전한다는 의미이지요. 이런 까닭에 부처님이나 불교 관련 성보(聖寶)를 모시는 자리를 연꽃으로 장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꽃은 불교 발생지인 인도 대륙에서 오래전부터 귀하게 여겼습니다. 상서로움을 지닌 것으로 이해한 사람들은 거룩한 부처님과 그 가르침을 연꽃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런 풍습은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로 이어졌습니다. 불교의 전통을 지닌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가 연꽃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 지역의 상징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연꽃을 불가(佛家)의 상징으로 여기는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진흙 속에 피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더러운 곳에 있어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꽃을 피웁니다.

둘째, 진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연꽃은 꽃잎이 필 때 씨방도 함께 여뭅니다. 즉, 꽃이 자랄 때 꽃잎과 씨방이 같이 자랍니다. 인과를 상징하고, 과거 현재 미래 삼세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셋째, 불성(佛性)이 있기 때문입니다.
꽃을 활짝 피운 연꽃은 씨앗이 떨어져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썩지 않습니다. 그렇게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내다 인연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의 상징이 된 연꽃의 역사는 매우 오랩니다. 고구려 시대 벽화고분으로 북한 국보 제28호인 ‘안악 3호분’에도 연꽃이 등장합니다. 황해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 위치한 안악 3호분의 연꽃을 통해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 즉, 4세기 중엽 이전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불교와 연꽃의 인연은 대표적인 대승경전인《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줄여서《법화경》이라 불리는《묘법연화경》의 연화가 곧 연꽃입니다. 부처님 진리를 담은 경전 이름에 연꽃을 넣은 상징성은 매우 큽니다. ‘진흙에서 피는 꽃’처럼 중생의 무명을 걷어내고, 불법(佛法)을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문양도 연꽃입니다. 연화대 외에도 불단, 천장, 문살, 탑, 부도(浮屠), 기와 등에 장식된 연꽃 문양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지옥 중생에게 진리를 전하는 의미를 담은 범종(梵鐘)에도 연꽃이 등장합니다. 종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도 연꽃 문양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국역경원’에서 발간한 <불교성전>에는 연꽃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속에서 물러나 청정한 행을 닦는 수행자는 마음에서 멀리 떨어진 곳[寂靜處]을 즐겨 찾는다. 그가 생존의 영역 속에 자기를 들어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에게 어울리는 일이다. 성인은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못한다. 이를테면,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어떻습니까? 연꽃은 수도인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모두 ‘진흙 속에 피는 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연꽃은 진흙 속에 뿌리박았으되 그 잎이 더러움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꽃은 아름답고 향기롭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찌 이 맑고 밝고 훈훈한 연꽃의 길을 가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7월 13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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