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이 옆에 서 있어 줄 필요 없다. 본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뉴스프리존= 김현태기자]12일 오후 ‘문준용 특혜채용 제보조작’ 파문에 대한 안 전 대표의 기자회견 즈음,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향한 당내 반응은 냉담했다. 기자회견을 주관한 당 공보실에서는 “안 전 대표 측근이라던 사람(보좌진)들은 회견에 코빼기도 안 보인다”며 “이제 와서 당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지난달 26일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이 제보조작 사실을 공개한 이후 16일 만에야 입을 여는 안 전 대표에 대한 서운함이 묻어났다.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문준용씨 의혹 제보 조작 파문과 관련, 법원이 12일 새벽 국민의당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급기야는 안철수 전 의원이 이날 오후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고,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과 박지원 전 대표도 사법부 판단을 존중하고 국민들에게 사과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파장은 여기서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검찰의 칼날은 보다 윗선으로 향해가는 중이고 그에 따른 정치적 파장은 확대일로다. 국민들의 여론까지 냉담해지면서 창당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듯하다.
이번 입장 표명은 10분 만에 끝났다. 오후 3시28분 홀로 브리핑룸 단상에 선 안 전 대표는 오후 3시38분 당사를 빠져나갔다. 안 전 대표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지금까지 항상 책임져 왔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시절 7·30 재보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김한길 대표와 함께 사퇴한 일, 지난해 6월 ‘리베이트 파문’ 당시 천정배 대표와 함께 상임공동대표직을 내려놓은 사례를 열거했다. 국민의당의 출발점은 민주당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친문(친문재인)패권세력'에 대한 피해의식이다. 2012년 대선후보를 문재인 후보에게 통 크게 양보했던 안철수 의원이 2015년말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을 결행했다. 대선을 겨냥한 행보였지만 기치는 '반문'이었다. 이후 안 의원을 정점으로 김한길, 박주선, 천정배 등이 동참하면서 세를 키웠고, 이듬해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문재인 호남 홀대론'을 앞세워 호남의 민심을 얻었다. 이런 정치적 애증은 문재인-안철수가 격돌한 이번 대선에 이르기까지 지속됐고 증거조작이란 희대의 정치적 사건으로 번졌다.
국민의당에서 안철수 전 의원은 건축주요, 박지원 전 대표는 설계자다. 두 사람은 당의 상징이자 존립근거와도 같은 존재다. 문준용씨 의혹 제보 조작이 불거지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이 두 사람을 직격했다. 국민의당 자체 진상조사 결과, 당원에 불과한 한 사람의 단독범행이란 발표에 대해 '머리 자르기'라고 비판한 것이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어 국민의당이 추경 심사를 위한 예결위 불참 등 강경한 태도를 취하자 추 대표는 국민의당의 조작사건은 형사법적 '미필적 고의'라고 못박으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설상가상 검찰이 조작의 책임을 물어 이준서 전 최고위원에 대해 '미필적 고의'로 영장을 청구하자 국민의당은 여당 대표가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문준용씨 취업특혜와 제보조작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등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정계은퇴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제보 조작 사실을 사전에 인지했느냐고 묻자 “(5월5일) 기자회견 당시 뚜벅이 유세 중이었다. 인터넷 생중계로 거의 24시간 (내 모습이) 전국으로 생중계됐다. 그걸 본 국민들은 다 알 것이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민주당 입장에선 국민의당은 경쟁자이지만 여소야대 국회에서 그마나 협치파트너로 삼을 수 있는 정치세력이다. 그런데 추 대표는 연일 국민의당을 자극하며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국민의당은 안 그래도 조작 파문 여파로 지역적 기반인 호남에서조차 싸늘한 민심에 애를 태우는 형편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조직의 이탈 조짐 등 당의 존립기반까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있다. 그렇기에 추 대표의 공격은 아파도 너무 아프다. 국민의당을 궤멸시키려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국민의당이 추 대표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며 불퇴전의 각오를 되새기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가 지난 10일 만장일치로 준용씨 특혜채용, 제보조작 의혹의 동반 특검을 주장한 데 대해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정대철 상임 고문과 황 의원은 각각 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당은) 특검을 주장할 도덕적인 자격이 없다”고 꼬집었다. 추 대표는 자신의 발언과 관련,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배경은 없다고 방어막을 치고 있다. 정치공작과 선거범죄에 대한 원칙을 밝혔을 뿐이란 것이다. 백 번 옳은 얘기고 엄정한 수사와 처벌도 이뤄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입장 표명은 굳이 여당 대표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현안 가운데 하나인 일자리추경안이 제출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심사에 착수조차 못하고, 인사청문회 일정도 겉도는 상황에서 여당 대표의 강공(强攻)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 민주당 내에서도 추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당 대표에게 선명성도 중요하지만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선 때론 양보와 포용력도 겸비해야 할 덕목이랄 수 있다. 마침 어제 안 전 의원이 "정치적·도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반성과 성찰의 시간 갖겠다"고 사과한 만큼 더 이상 전선을 확대해서는 곤란하다. 추 대표는 이제 국민의당의 피해의식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고 통 큰 정치를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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