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묘조장
발묘조장(拔苗助長)이라는 말이 있습니다.《맹자(孟子)》의 <공손추(公孫丑> 상(上)에 나오는 이야기로 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일을 망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입니다. 당연히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요. 이를 줄여서 조장(助長)이라고도 합니다.
송(宋)나라에 어리석은 농부가 있었습니다. 모내기를 한 이후 벼가 어느 정도 자랐는지 궁금해서 논에 가보니 다른 사람의 벼보다 덜 자란 것 같았습니다. 농부는 궁리 끝에 벼의 순을 잡아 빼보니 약간 더 자란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식구들에게 하루 종일 벼의 순을 빼느라 힘이 하나도 없다고 이야기하자 식구들이 기겁을 하였지요. 아들이 논에 달려 가보니 벼는 이미 하얗게 말라 죽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빨리하려고 하면 이룰 수가 없습니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되는 것입니다. 유성룡(柳成龍 : 1542~1607)의 <서애선생문집(西厓先生文集)> 卷12에 ‘아버지의 당부’라는 글이 나옵니다. 역시 공부도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말이지요.
「너무 급히 나아가면 물러나는 것도 빠른 법이니, 차분히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제일이다.」라는 당부입니다. 옛날 양반집에서는 마을 서당에서 일정한 학습 과정을 마친 다음 산사(山寺)에 보내 학업을 쌓도록 한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산사는 지금의 고시원 역할을 한 셈이지요.
서애는 세 아들을 산사에 보내 공부를 하도록 하였습니다. 어느 날 산사에서 온 편지를 받고 별일 없다는 소식에 안심하면서도 여전히 걱정되는 마음에 서애는 편지를 보냅니다. “스님 말씀에 너희들이 새벽까지 책을 읽는다니 참말이냐? 옛 책에, 삼경(三更 밤11시~새벽1시)까지 잠을 못 자면 피가 심장으로 돌아가지 못하여 이로 인해 초췌해진다고 하였다.” 하고, 이런 당부의 말로 공부하는 방도를 일러줍니다.
맹자(孟子)도 <진심장(盡心章)>에서 너무 급히 나아가면 물러나는 것도 빠르다고 했습니다. “나아감이 빠른 자는 마음을 씀이 너무 지나쳐서 그 기운이 쇠진하기 쉽다. 그러므로 후퇴가 빠른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마음만 앞서서 쫓기듯이 하는 것은 게으름 피우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성취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결과가 같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일을 하면 좋을까요? <고문진보>라는 고서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陀傳)’ 이라는 글에 ‘나무심기의 달인 곽탁타’가 나옵니다. 어떤 나무건 그가 심으면 잎이 무성하고 튼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들이 그 비법을 훔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탁타에게 그 비결을 알려 달라고 부탁을 했지요.
탁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나무를 오래 살게 하거나 잘 자라게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나무의 섭리에 따라 그 본성에 이르게만 할 뿐이지요. 본성이란 뿌리는 펼치려 하고, 흙은 단단하게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준 뒤에는 건드리지도 말고 걱정하지도 말며, 다시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다른 이들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뿌리를 뭉치게 할 뿐 아니라 흙을 돋워 줄 때도 지나치거나, 아니면 모자라게 합니다. 그렇게 하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아침에 들여다보고, 저녁때 어루만집니다. 심지어 나무의 껍질을 손톱으로 벗겨 보고 살았는지 말라 죽었는지 시험하고, 뿌리를 흔들어서는 흙이 단단한지 부실한지 관찰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나무가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려 제대로 자랄 수가 없는 것 이지요.”
문재인 정부가 제 마음에는 너무 서두르지 않나 걱정이 됩니다. 물론 개혁은 서두르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5대원칙’에 발목을 잡혀 첫 내각도 출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니지요. 과연 이 나라에 이 ‘인사 5대원칙’에 맞는 인사는 정녕 없는 것인가요?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발묘조장’이나 ‘욕속부달(欲速不達)’의 교훈을 새겨야 합니다. 조바심을 내면 늘 일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정권 초기부터 국민에게 가시적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욕구가 클수록 내용부실과 과정경시가 뒤따르기 쉽습니다. 민주주의에서 결과의 타당성은 추진절차의 적절성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 정치는 질적 변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엘리트 주도의 정치는 종말을 고했습니다. 시민 참여가 전제되는 공감의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의 본질적 문제는 낮은 정치신뢰입니다. 특히 탄핵국면을 경험하면서 정치신뢰는 극도로 낮아진 상황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공감이 확대돼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정부 목표에 대한 우선순위를 국민에게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특히 ‘인사 5대원칙’의 수정을 국민에게 알리고 동의를 획득해야 대통령은 국정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적폐청산과 통합이라는 2개의 목표를 약속했습니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되 청산대상마저 배척하지 않을 때 통합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합이라는 목표달성 여부는 국회에서 정당 간 협치가 시험무대가 될 것입니다.
만일 여당이 전략적인 정당연합을 도모한다면 특정 야당의 배제로 이어지고 정당 간 갈등이 격화할 것입니다. 자칫 과거정치의 재연이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촛불의 정치적 결과인 새 정부가 성공하려면 뺄셈의 정치라는 낡은 사고 구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공자님도《논어(論語)》<자로편(子路編)>에서 “빨리하려고 하면 이룰 수가 없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자하(子夏)가 거보(父)의 태수가 되자, 스승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공자께서는 “빨리하려고 서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마라. 빨리하려 하면 일이 잘되지 않고, 작은 이익에 구애되면 큰일이 이루어지지 않느니라.”
눈이 제 눈을 보지 못하고, 거울이 제 자체를 비추지 못합니다. 마찬 가지로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에서는 아상(我相)에 가려 제 허물을 보지 못하고 남의 시비만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디더라도 이 발묘조장의 고사를 생각하고 속도조절을 하면 좋겠네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7월 1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