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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비정규직인 게 내가 비정규직이어서는 아닐까..

딸이 비정규직인 게 내가 비정규직이어서는 아닐까

디지털뉴스팀 기자 입력 2015/03/12 13:42

1. 엄마는 '급식조리사', 딸은 '댓글 알바'
 

나쁨. 황사주의보는 해제됐지만 미세먼지 농도는 여전히 '나쁨'이다. 눈앞이 뿌옇다. 지난 2월24일 아침 8시,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도 여전히 '나쁨'이다. 엄마는 이날도 커다란 팻말을 들고 30분 동안 오도카니 서 있었다. '대화를 거부하는 교장님 때문에 급기야 조희연 교육감과 잠실초교를 노동부에 고소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또박또박 글자를 읽어본다. 유정(22·가명)씨 눈에 비치는 글자는 흐릿하다. 미세먼지 탓이 아니다. 콘택트렌즈를 오래 껴서 각막이 상했다며 의사는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비정규직과 가난은 사실상 동의어,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비정규직 자녀들은 본능적으로 포기가 빠르다

 

파업하던 날 집회에 나간다 했다가…

비정규직 처우는
 

[연합통신넷= 디지털뉴스팀]  엄마 장미숙(49)씨는 두 달째 잠실초등학교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 중이다. 엄마는 잠실초등학교 급식조리사로 일하다가 해고됐다. 해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계약 종료다. 2012년 12월, 병가를 낸 급식조리사의 '대타'로 일을 시작한 뒤 6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세 차례 계약을 맺었다. 지난 2월28일이 마지막 계약 종료일. 엄마는 2년이 됐으니 당연히 무기계약직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엄마랑 같이 일했던 다른 급식조리사 5명은 모두 무기계약직이다.
 

그런데 나쁜 일이 일어났다. 영양사 선생님은 "일하는 시간에 누워 있어서 근무평가 점수를 나쁘게 줬다"고 엄마에게 통보했다. 재계약을 맺지 않는다고 했다. 급식조리사 6명이 각각 음식을 한 가지씩 맡았다. 1200명이 먹을 밥과 반찬을 만들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점심밥도 잠깐 욱여넣고 나와 일했는데 억울했다. 엄마는 교장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사람 하나 살려주는 셈 치고 도와주세요." 교장선생님은 고개를 돌렸다.
 

"막내딸 출산 때 셋째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친척 의료보험증을 몰래 내고는 들킬까 싶어 분만실에서 바로 퇴원했다.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다. 옛날엔 열심히 살면 벗어날 길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니까."
 

어렴풋이 짐작은 갔다. 지난해 11월 급식노동자들이 파업하던 날이었다. 집회에 간다고 하니 영양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근평 점수를 나쁘게 받을 수 있으니 가지 말라"고 했단다. 노조는 엄마가 '괘씸죄'로 해고됐다고 본다. 부당노동행위로 학교를 고소한 까닭이다.
 

억울해서라도, 절박해서라도 엄마는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엄마의 130만원 월급은 다섯 식구의 밥줄이다. 그 돈으로 빌라 월세 45만원도 내야 하고, 중학교 2학년 여동생의 학비도 대야 한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는 자꾸 길을 잃는다. 급식조리사는 엄마가 얻은 첫 일자리다운 일자리다. 전에는 이삿짐센터나 가사도우미로 간간이 일했다. 다행히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낳은 오빠(28)가 최근 취업했다. 하지만 월 100만원에 4대 보험 적용도 안 되는 임시직이다. 오빠의 대학교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도 빠듯하다.
 

온 가족이 비정규직의 설움을 겪었다면, 그중 으뜸은 유정씨다. 엄마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6개월간 일했다. 아침 9시에 나가 오후 6시까지 닭강정 포장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 월 60만원을 준다던 약속은 첫 두 달간만 유효했다. 그 뒤로는 30만원으로 월급이 반토막 났다. 근로계약서는 구경도 못했다. "돈 올려주세요" 울먹였다가, "회사 어려운 거 안 보이냐"는 으름장만 들었다. 지난해 10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잠시 '댓글 알바'도 했다. '저 오늘 양악 수술했어요.' 성형외과에서 시키는 문구대로 광고글을 올리고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며 댓글을 단다. 월 100만원이 보장된다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를 걸어와 꼬치꼬치 따져대는 통에 알바는 두어 달 만에 그만뒀다.

 

다른 대학은 생활임금 받는다는데
 

 '2015년 비정규직 1070명 심층 실태조사' 응답자가 함께 거주하는 가족 수는 평균 3.21명. 이 중 소득이 있는 가족이 1.76명,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가족은 1.41명으로 조사됐다. 즉 가족 구성원의 43.9%가 비정규직, 소득 있는 가족 구성원의 79.9%가 비정규직이라는 뜻이다.
 

장미숙씨 가족처럼 소득 있는 가족들이 몽땅 비정규직인 경우도 68.8%(704명)나 됐다(표1·2 참조). 심층 인터뷰 과정에서 '아빠도, 엄마도, 아들도, 딸도 비정규직'인 가족의 이야기는 너무나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저임금, 고용불안, 빈곤 등 비정규직의 위태로움이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더 넓게는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비정규직 엄마들은 근심이 많다. 자신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아들과 딸도 걱정이다.

 

2. 엄마는 '걸레' 들고, 딸은 '휴대전화' 들고
 

지난 2월25일 찾은 서울 숭실대 학생회관 앞 천막농성장에서도 '비정규직' 엄마 두 사람이 '비정규직'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꺼냈다.
 

엄마들의 직장은 숭실대 청소용역을 맡고 있는 미환개발이다. 미환개발은 청소·경비 노동자 209명을 고용한 대형 용역업체다. 숭실대 용역은 18년째 수의계약으로 독점하고 있다. 엄마들이 받는 월급은 고작 112만8600만원. 그것도 세전 금액이다. 다른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생활임금'에 맞춰 평균 143만원을 받는 걸 생각하면, 엄마들은 울화통이 터진다.

'아리랑~ 아리랑~ 노조 아리랑. 미환개발 고개를 넘어가보자. 손잡고 가보자~.' 엄마 임성숙(57)씨가 천막 앞에서 북을 치며 구슬픈 목소리로 <홀로 아리랑> 개사곡을 부른다. 2011년 미환개발에 입사한 임씨의 첫 월급은 87만원. 노동조합이 없어 최저시급도 못 챙겨받던 시절이다. 임씨는 21살에 결혼하기 전까지 서울 구로동에 있는 스웨터 공장에서 일했다. 결혼한 다음에는 가내근로자로 손뜨개질, 리본 만들기, 구슬·단추 달기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목욕탕 청소, 가사도우미, 복지관 사무보조, 주스 배달·영업사원, 간병인, 슈퍼 등등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 더 부지런히, 닥치는 대로 일했다.

 

"파견직이랑 같이 다니거나 밥 먹지 말라"
 

악착같이 일했던 걸로 따지면 엄마 장보아(60)씨도 뒤지지 않는다. 포장마차, 식당, 호프집, 슈퍼 등등 1995년 남편을 일찍 여읜 뒤 딸 셋을 홀로 키우며 가난과 싸웠다. "막내딸 출산 때 셋째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친척 의료보험증을 몰래 내고는 들킬까 싶어 분만실에서 바로 퇴원했다.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다. 옛날엔 열심히 살면 벗어날 길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니까."
 

소득 격차는 기회의 불평등을 가져오고, 이는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보단, 부모에게서 자산·인맥 등을 상속받은 사람들이 더 성공한다. 비정규직과 가난은 사실상 동의어다. 비정규직 자녀들은 본능적으로 포기가 빠르다.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임씨와 함께 사는 두 아들은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다. 하청을 받아 아파트 단지 등에 유리를 시공한다. 대학을 포기한 큰아들(35)은 유리 시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작은아들(31)은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자격증이 없어서인지 일감이 큰아들보다 적다. "얼마 전 작은아들이 일이 없어 집에서 15일가량 쉬었다. 며칠씩 일이 없으면 저도 불안하고, 나도 불안하고." 임씨는 큰아들이 음악을 하고 싶어 했는데 악기 하나 가르쳐주지 못한 게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아들들이 정규직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건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잖아요."
 

장씨도 딸 둘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다. 막내딸(26)은 학원비를 스스로 벌어 미대에 갔지만, 편의점과 카페 등에서 알바하며 등록금을 버느라 휴학 중이다. 지난 1월 결혼한 둘째딸 은주(27·가명)씨는 서울의 한 대형 전자제품 전문매장에서 휴대전화 개통 업무를 담당하는 파견노동자다. 은주씨는 6년째 해온 일을 이번달에 그만둘 작정이다. "주말 휴대전화 개통이 가능해지면서 주말근무를 하라고 해놓고 휴일근무수당은 안 준대요. 그렇게 안 하면 파견업체를 바꿔버리겠다고 협박하고." 파견업체는 월급에서 매달 20만원씩 수수료만 떼어갈 뿐 '갑'인 원청 앞에서 무기력하다.
 

은주씨는 엄마와 함께 비정규직의 설움을 종종 이야기한다. 은주씨가 일하는 매장 관리자는 정규직들에게 "파견직들이랑 같이 다니거나 밥을 먹지 말라"고 지시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달리 지각 세 번이면 월급 10만원이 깎인다. 엄마는 때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 티셔츠를 물려받았을 때 가장 서러웠다. 엄마와 딸은 각기 다른 장소에 있지만, 설움은 통한다. 은주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알바나 할까 생각 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미래의 희망'과 관련한 2가지 질문을 던졌다. 본인이 정규직 일자리에 취업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없다'는 응답(84.4%)이 '있다'(15.6%)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반면 자녀의 일자리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비정규직에 종사할 것 같다'는 응답이 65.9%로 많았으나, '나와는 달리 안정된 정규직에 종사할 것 같다'는 응답도 34.1%가 나왔다(표3 참조).

 

현장소장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는 일로
 

자녀에 대한 기대 심리와 희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비정규직들의 '희망'은 우리나라 평균적인 기대치보다는 낮은 것으로 보인다. 2013년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일생 동안 노력한다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본인 세대는 28.2%가 '높다'고, 자식 세대의 가능성에 대해선 39.9%가 '높다'고 응답했다. 스스로 자신의 계층이 하층이라고 생각할수록 긍정적인 응답률은 낮아진다.

 

3. 아빠, 엄마, 딸 '우리는 학교 비정규직'
 

소연(25·가명)씨와 아빠, 엄마는 '학교 비정규직'(학비) 가족이다. 집 근처인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학교에서 가족 셋이 차례차례 비정규직으로 일했거나 일하고 있다. 지난 2월28일 소연씨 가족을 만났다.
 

'학비' 1호는 엄마(53)였다. 엄마는 소연씨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2004년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했다. 1년 단위 계약직이었고, 급여는 40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엄마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며 석 달 만에 일을 그만뒀다. 두 번째로 아빠 이태의(53)씨가 중학교 시설관리직으로 취업했다. 기계·전기 비품 관리를 맡았다. 건축회사 현장소장을 전전하느라 돈벌이가 일정치 않았던 아빠에게 "꼬박꼬박 월급 받는 일을 하라"고 등 떠민 건 엄마였다. 아빠는 2011년부터 잠시 학교를 떠나, 학교 비정규직 노조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원직본부장으로 일한다. 전문대 음향제작과를 나온 소연씨는 2011년 인턴 교사로 처음 학교에 발을 디뎠다. 지금은 초등학교 행정실무사로 회계·민원 업무를 맡고 있다.
 

아빠와 딸은 그래도 운이 좋은 경우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적어도 고용불안을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급 144만원에 몇 가지 수당이 붙는 급여 체계는 계약직이나 무기계약직이나 매한가지다.
 

아빠는 "학교 무기계약직은 '무기한 비정규직'의 준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기계약직은 학교 직제표상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승진이나 상여금 같은 혜택도 전혀 없다. 소연씨가 일하는 학교는 이번에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지만, 성과급은 정규직만 챙겨갔다. 소연씨는 5년 뒤쯤이면 자기보다 어린 행정실장님을 모셔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업무능력에 따른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구조다.
 

엄마는 딸이 비정규직이 된 게 혹시 내 탓은 아닐까 싶다. "내가 고졸이 아니라 좀더 나은 조건의 부모였다면 좀더 괜찮은 직업의 세계로 딸을 안내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속상해요. 내가 배운 게 없고, 내가 가진 게 없어 부모로서 부족한 건 아닐까 싶어서요."

알바하는 대학생? 공부하는 노동자
 

아빠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10년 일해도 학교 비정규직은 정규직 대비 임금 수준이 47%밖에 안 된다. 자녀 교육비를 대주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도 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전혀 기여를 못했다." 여기까지는 현실이다. 아빠는 딸에게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학교 비정규직 일자리를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만들고 임금을 높이고 차별을 없애는 게, 결국 딸내미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만들고 그동안 못했던 부모 노릇도 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비정규직 부모에게 미안해하는 자녀도 있다. 박민지(23·가명)씨는 이른바 '알바하는 대학생'이 아니라 '공부하는 노동자'에 가깝다. 대학 입학 뒤 커피숍 알바, 학교 인턴 등으로 월 80만원씩을 부지런히 벌었다.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월세 40만원, 각종 공과금 20만원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 20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점심은 주먹밥으로 때우거나 친구한테 얻어먹기 일쑤다. 취업 유예 상태인 민지씨는 엄마(49)의 비정규 노동에 빚지고 있다. 엄마는 1년간 돈 걱정하지 말고 취업 준비만 하라며 지난해부터 월 76만원을 민지씨에게 보내준다. 엄마가 대형마트 아동복 매장에서 하루 6시간씩 일해 번 돈이다. 일용직 운수노동자인 아빠(52)가 버는 돈은 사업 실패로 인한 대출금 이자를 갚는 데 고스란히 들어간다.
 

아빠는 "학교 무기계약직은 '무기한 비정규직'의 준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기계약직은 학교 직제표상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승진이나 상여금 같은 혜택도 전혀 없다. 소연씨가 일하는 학교는 이번에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지만, 성과급은 정규직만 챙겨갔다. 
 

이른바 서울 명문대에 다니는 민지씨는 "물에 빠진 엄마·아빠가 나만 살라고 물 위로 있는 힘껏 밀어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프다. 2011년 교양수업 조발표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다. 같이 수업을 듣는 선배가 '인턴제도의 허와 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아빠가 대형 로펌 고위직이라서 다른 로펌 인턴으로 방학 동안 일했다. 나처럼 소개로 들어온 인턴이 많았다. 우리는 매일 사무실에 앉아서 토익 공부하고, 하는 일 없이 인턴 월급을 받았다. 인턴제도를 이렇게 운영해도 되는 건가?' 민지씨는 "부모 '빽' 없는 내가 아무리 비정규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소용없겠구나" 생각했다. 요즘은 대학 입학까지의 교육과정은 물론 대학 시절 사교육을 통해서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들에게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이런 불평등 구조 아래서 비정규직의 자녀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거나 더 나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올라설 만한 '인적 자본', 이른바 '스펙'을 쌓기란 쉽지 않다.
 

아빠 직장 로펌에서 인턴 하는 친구
 

그래도 장미숙씨의 딸 유정씨는 민지 언니의 상대적 박탈감조차 부러울 것이다. 유정씨도 실은 오빠처럼 대학에 가고 싶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은 땄지만, 대학은 자신이 없다. "오빠는 학원도 안 다니고 대학에 갔어요. 오빠랑 달라서 저는 머리가 나빠 독학이 안 돼요. 학원 갈 돈은 없고. 근데 스물두 살에 대학은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인터뷰 내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던 유정씨의 눈이 처음으로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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