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부터 사건청탁 등을 대가로 벤츠 승용차를 제공 받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른바 '벤츠 여검사'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12일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내연 관계에 있던 변호사가 고소한 사건을 동료 검사에게 청탁해 주고 금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기소된 이모(40·여) 전 검사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전 검사는 광주지검에 근무하던 2010년 10월 내연남인 최 변호사가 고소한 사건과 관련, 검사임관 동기인 당시 창원지검 소속 검사에게 전화로 청탁해준 대가로 벤츠 승용차 리스료와 샤넬 핸드백 등 모두 5591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벤츠 여검사'로 지칭된 이 전 검사에 대한 하급심의 판단은 서로 달랐다.두 여검사가 법정에 섰다. 재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판을 받기 위해서다. 판사나 검사가 당사자로 법정에 서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는 2건을 소개한다. 두 사건 모두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판결 대 판결] 열 번째 이야기, 1편 백지구형 사건에 이어 2편 벤츠여검사 사건을 소개한다.... 기자의 말
여검사와 남변호사의 은밀한 사생활. 영화나 소설 제목이 아니다. 어느 여검사와 변호사가 연루된 형사사건을 보면서 이런 제목이 떠올랐다. 세칭 '벤츠 여검사' 사건 말이다. 그런데 정작 법적으로 문제가 된 건 사생활이 아니라 외제차와 명품백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건 속으로 들어가보자.
여검사와 남변호사의 은밀한 사생활, 법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서
2010년 9월초, A검사(당시 35세, 여성)는 B변호사(당시 48세)로부터 사건 하나를 부탁받는다. 변호사가 검사에게 청탁을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특별한 사이였다. 오래 전부터 남몰래 내연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던 것이다.
B변호사는 A검사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아파트 보증금을 대신 내주고 다이아 반지, 시계, 골프채 등을 선물하는 등 물량공세를 펼쳐 왔다. B변호사는 2008년부터는 벤츠 승용차를 리스해 주었고, 2010년에는 신용카드 하나를 건네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그러던 중 B변호사는 동업 과정에서 분쟁이 생겨 동업자를 고소했다. 그는 검찰에 있는 연인 A검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2010년 9월 초, 두 사람이 만날 때나 전화 통화를 할 때 B변호사는 "담당검사에게 부탁해서 동업자가 구속되거나 고소 사건이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게 도와달라"고 A검사에게 말했다.
요청을 받은 A검사는 담당검사인 C검사에게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뜻을 직접 전하기도 했다. 청탁 이후에도 A검사는 B변호사가 제공한 승용차와 카드를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A검사는 500만 원대 고급 가방을 구입한 뒤 B변호사에게 "가방 값을 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알선과 알선수재
'알선'은 남의 일이 잘되도록 주선하는 일을 말하지만 법적으론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법적으로 '알선'은 공무원이 일정한 직무행위를 하도록 매개, 주선하는 것을 말한다. 알선의 수단과 방법에는 제한이 없고, 반드시 부정한 행위를 요건으로 하지도 않으며 단순하게 '선처 바랍니다'라고 부탁하는 정도로도 알선이 될 수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3조(알선수재)에 따르면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ㆍ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이같은 사실은 B변호사의 또다른 내연녀가 검찰에 진정을 내는 바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진상을 조사한 검찰은 A검사의 행동이 단순한 부적절한 관계를 넘어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A검사가 B변호사의 청탁을 받은 2010년 9월부터 2011년 5월까지 신용카드와 벤츠 승용차를 대가로 제공받은 혐의(특가법상 알선수재)로 기소하기에 이른다.이것이 '벤츠 여검사 사건'의 전모다. 정리하자면 B변호사는 A검사에게 승용차와 신용카드를 제공했고, A검사는 B변호사를 위해 담당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호의였을까, 아니면 청탁을 대가로 금품을 주고 받은 범죄였을까. 법원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법적인 쟁점에 따라 '① 청탁'을 받았는지 '② 대가성'이 있는지 여부를 나눠서 살펴보자.
벤츠 승용차, 연인을 위한 호의인가 청탁의 대가인가
먼저 A검사의 입장이다.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그는 "청탁 받은 기억이 없다"고 부인했다. 설사 청탁을 받았더라도 신용카드나 벤츠 승용차 제공은 대가성이 없고, 설사 알선으로 인정되더라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호의로 한 행위이므로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A검사의 주장이다. 요약하자면 '① 청탁'을 안 받았고, 설사 받았더라도 '② 대가성'이 없다.
하지만 1심(부산지법 제5형사부 재판장 김진석)은 두 사람의 행동을 청탁에 따라 대가를 주고 받은 '거래'로 보았다. 먼저 청탁여부에 대해 법원은 ▲ B변호사가 청탁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 C검사가 'A검사가 가급적 신속하게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취지로 부탁했다'는 진술을 한 점 ▲ 두 사람이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으로 볼 때 "청탁을 받았다"고 밝혔다.
특히 B변호사가 사건을 파악해 달라고 요청하자 A검사가 "피의자 이름 알려줘 진행 상황이랑", "응 연락해볼게" 등의 문자를 보낸 사실이 확인됐다. 또 B변호사가 '고소인이 협박하니 사건이 빨리 처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이후에 A검사는 "뜻대로 전달했고 그렇게 하겠대 영장청구도 고려해 보겠대 상황은 다 설명했어", "C검사한테는 말해뒀으니 그리 알어" 등의 답변도 보냈다.
1심 "사건 청탁, 대가성 모두 인정" 유죄 판결
다음으로 대가관계다.1심 법원은 A검사가 B변호사의 신용카드, 승용차를 사용한 것이 대가의 증거라고 봤다. A검사는 "청탁시점 이전부터 이미 사용했으므로 대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법원은 ▲ 카드 사용 시점이 청탁 시점에서 멀지 않았고 ▲ 청탁 이후 사용금액이 눈에 띄게 증가한 점 ▲ 승용차도 2011년 2월 이후 A검사가 거의 전적으로 사용한 점 ▲ A검사가 추가 고소장 초안을 검토한 후에는 가방값 송금을 요구하기까지 한 점 등을 확인했다.
결국 신용카드와 승용차를 사용하거나 보관, 관리하던 중에 청탁이 있었고 알선행위까지 인정된 이상 "청탁을 받은 시점부터는 대가관계에 있는 것으로 성격이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법률 전문가인 A검사로서는 청탁시점 이후에는 카드와 승용차를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내연 관계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넘어 청탁에 대한 대가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였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법원은 알선과 수수한 금품 사이에 전체적, 포괄적으로 대가관계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판시했다. 대가로 인정된 금액은 사건청탁 시점인 2010년 9월부터 그해 연말까지 카드사용액 약 2300만 원과 8개월간 벤츠 승용차 사용이익(리스표 상당액) 약 3200만 원 등 총 약 5500만 원이었다.
1심 판결은 '① 청탁을 받았고 ② 대가도 있었다'로 정리된다. 이 판결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A검사에게는 약 4400만원 추징, 합계액 1000만원이 넘는 고급 핸드백과 의류 몰수형까지 더해졌다.
2심 "청탁을 받았지만 대가는 없었다" 무죄 선고
그런데 항소심(부산고법 제1형사부)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린다. ① 청탁을 받았지만 ② 대가는 없었다는 판단이다. 우선 1심과 마찬가지로 "청탁을 받은 사실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신용카드와 승용차 사용의 대가성 판단인데, 대가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왜 그럴까. 2심을 요약하면 이렇다.
'청탁 시점 기준으로 볼 때 카드는 4개월 전, 승용차는 2년 7개월 전에 B변호사가 이미 사용을 허락했다. 특히 승용차는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사랑의 정표'로 A검사에게 사용하게 해주었다. B변호사는 그 이전부터 아파트 보증금, 다이아반지, 모피코트 , 골프채 등 고가의 선물과 현금을 여러 차례 주었다. 그리고 A검사가 500만원대 가방값을 요구했다는 부분은 B변호사가 가방을 선물하기로 했는데 약속을 미루어 문자를 보낸 것일 뿐 사건 청탁과 무관하다.'
재판부는 "고소사건 청탁이 없었더라도 신용카드, 벤츠 승용차의 반환을 요구했을 만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청탁 전화의 성격에 대해서도 "내연관계에 있는 B변호사를 위하여 호의로 한 것이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2심의 판단은 피고인인 A검사의 주장과 거의 일치하는 대목이다. 범죄의 증명이 없으므로 무죄, 2심의 결론이다. 1심에서 "검사의 청렴성과 도덕성, 공정성을 심하게 훼손하고 잘못을 진지하게 뉘우치지 있지 않다"고 A검사를 질책한 법원은, 2심에서 법적인 면죄부를 준 셈이다.
벤츠는 사랑의 정표일 뿐 대가가 아니다?
2심 판결을 삐딱하게 해석해보자. 내연남(혹은 내연녀)에게 부탁을 받은 검사(혹은 공무원)는 동료에게 사건청탁을 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단,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호의를 베풀었다고 주장해야 한다. 혹시라도 내연의 연인이 신용카드나 승용차, 선물을 주겠다면? 청탁 전에 최대한 일찍 당겨서 미리 달라고 하라. 그래야 법정에선 호의의 표시가 된다. 연인간의 선물을 청탁의 대가로 바라본다면 그건 사랑을 모독하는 눈빛이다.
벤츠 여검사 사건에서 1심은 사건 청탁과 대가를 모두 인정한 반면, 2심은 사건 청탁은 있었지만 대가가 없었고 판결했다. 최종 심리 중인 대법원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최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주목받고 있다. 법의 핵심 골자는 공무원이 일정 금액 이상을 받으면 대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을 한다는 내용이다. 만일 이 법이 이미 시행되어 적용되었다면 이 사건이 이처럼 유무죄를 오가지도 않았을 테고 재판 결과도 달라졌으리라.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