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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취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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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취여지도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07/25 11:43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취여지도


취여지도(取予之道)라는 말이 있습니다.《관자(管子)》<목민편(牧民篇)>에 나오는 이 말은 ‘주는 것이 받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관중(管仲)은 춘추시대의 사람으로 제나라를 부흥시킨 뛰어난 정치 경제학자였습니다. 관중은 춘추시대 법가(法家)의 대표적인 인물로서 중상주의(重商主義) 경제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하여 제나라의 부를 크게 신장시킨 명재상입니다.


그 관중이 말하는 정치의 요체(要諦)가 바로 ‘취여지도’입니다. 원문을 보면,「여지위취자(予之爲取者) 정지보야(政之寶也)」즉, ‘내가 백성에게 주는 것이 도리어 받는 것’이며, 이것이 ‘정치의 보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을 부리려면 억압을 하거나 물질로 유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심리적인 동기를 부여해야만 노동의욕이 고취됩니다. 그리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 런지요? 전국시대 주(周)나라에 매우 뛰어난 사업가이자 경제 모략가로 통하는 백규(白圭)라는 사람도 ‘능히 취할 줄도 버릴 줄도 아는 것’이 ‘인(仁)’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부리는 사람을 후히 대우하고 정신적으로 그들과 함께하는 것은 얻는 것이 곧 주는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성경에서도 “주어라, 그리하면 얻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말들이 ‘인생은 거래(去來)와 여수(與受)다.’ 와 같은 말일 것입니다.


일찍이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우주의 진리는 원래 생멸(生滅)이 없이 길이 돌고 도는지라, 가는 것이 곧 오는 것이 되고 오는 것이 곧 가는 것이 되며, 주는 사람이 곧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곧 주는 사람이 되나니, 이것이 만고에 변함이 없는 상도(常道)니라.」하셨습니다.


그럼 여수는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천지에 사시순환(四時循環)하는 이치 따라 만물에 생 · 로 · 병 · 사(生老病死)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주에 음양 상승(陰陽相乘)하는 도(道)를 따라 인간에 선악 인과의 보응(報應)이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겨울은 음(陰)이 성할 때이나 음 가운데 양(陽)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양이 차차 힘을 얻어 마침내 봄이 되고 여름이 됩니다. 마찬 가지로 여름은 양이 성할 때이나 양 가운데 음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음이 차차 힘을 얻어 마침내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인간의 일도 또한 강(强)과 약(弱)이 서로 관계하고 선과 악의 짓는 바에 따라 진급(進級)과 강급(降級),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과보(果報)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인과보응(因果報應)의 원리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가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살 때 더 큰 위로를 받고 생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니까 인과의 원리에 따라 만일 지금 고독하다면 주어진 고독을 탓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주위를 돌아보며 우리처럼 친구가 필요한 다른 누군가와 함께 주고 또 받으면서 인생을 살아가면 인생이 결코 외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여수거래적인 존재입니다. 산다는 것은 서로 주고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인사를 주고받고, 정을 주고받고, 돈을 주고받고, 지식과 정보의 도움을 서로 주고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서로 주고받는 여수의 행위를 떠나서 인간은 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주고받는데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으며, 살아가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일생은 주고받고 오고가는 가운데 선업(善業)을 짓기도 하고 선연(善緣)을 맺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주고 난 다음에 받지 못한다고 섭섭해 하면 도리어 악연이 되기도 하며, 가고 난 다음에 지난 일에 집착하면 앞길이 막히기도 한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주고받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는 조금 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진 · 강급(進降級)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급 기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가? 그 심성(心性)이 온유 선량하여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고, 대하는 사람마다 잘 화(和)하며, 늘 하심(下心)을 주장하여 남을 높이는 사람이다. 강 급기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가? 특히 인과의 진리를 믿지 않고, 수행에 노력이 없는 사람은 강 급 할 사람이다.”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다스림의 요체라는 ‘취여지도(取予之道)’를 보며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 무엇을 먼저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시면 어떨까요? 그것이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 앞에 서기만 하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는, 부끄러움과 수줍음을 잘 타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런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그는 친구도 없고 남의 집에도 가지 못하고 늘 외롭게 지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소심하게 살면서 평생을 나약하게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과감하게 자신을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미소를 머금고 인사부터 하고는 상대편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멋있는 분이군요!”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런 말에 그를 만나는 사람마다 행복해했고, 좋아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모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영국의 달변가요, 시인이요, 극작가인 ‘버나드 쇼’입니다. 이렇게 남을 행복하게 해주면 자신이 달라지는 것이지요.


세상이 밝아질수록 마음 하나가 참 되고 선한 사람은 일체가 다 참 되고 선하여 그 앞길이 광명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하나가 거짓되고 악하면 그 앞길이 어둡고 막히게 되는 것이지요. 노력한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정신, 그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능력대로 인간관계에 활용하여 이웃과 인류에게 공헌하는 사람이 되면 그것이 곧 거래이고 여수요 또 취여지도가 아닐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7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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