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권성찬기자] 일본 연립 여당인 공명당 의원 5명이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져 독립지사들이 갇혀 고초를 겪었던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았다.
지난 8일 방한한 우오즈미유이치로 참의원, 고시미즈게이치 중의원 등 공명당 의원 5명은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순국선열 추모비'에 헌화하고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옥사와 사형장을 둘러봤다. 이들은 "서대문형무소는 한일관계의 상징적 장소"라며 "역사를 직시하겠다는 의미에서 방문하게 됐다"고 방문 이유를 설명했다.
우오즈미 의원은 방명록에 "역사를 확인하는 이 자리에서 미래 지향의 일본과 대한민국의 우호를 촉진하고 싶다"고 글을 남겼다.
의원들은 안중근 의사와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보고 낮고 짧은 목소리로 "아!"하는 탄성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한 방광 파열로 순국했다.
유관순 열사는 재판을 받았던 당시 “다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대일본제국 신민으로서 살아가게 될 것을 맹세할 것인가?”는 재판장의 질문에 의자를 던지면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놈들은 천벌을 받게 되어서 반드시 망하게 되리라!”고 할 정도로 자주독립의 열정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징역 7년형을 선고 받고 옥중에 수감되었는데, 옥중에서도 항일의 정신을 잃지 않으며 만세운동을 외쳤으나 모진 고문을 받고 결국 숨을 거둔다.
그때 유관순 열사의 나이 꽃다운 열여덟 때다. 다음은 일본군들이 유관순 열사에게 실제로 가했던 극악무도한 그 날의 진실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