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북한과 전쟁으로 갔을 때 압도적인 전력으로 북한을 초토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주한 미군과 동맹국인 한국도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에 무작정 전쟁 위기 쪽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시작은 미국 에서부터였다. 미 국무, 국방 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언론 공동기고문을 통해 "북한 정권 교체 의사가 없다"는 점과 함께 미국의 대북 정책이 평화적 압박이며 외교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란 점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은 기꺼이 평양과 협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도발을 계속할 경우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강경 발언한 데 이어 북한은 "괌 주변 포위공격"을 경고함으로써 강대강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미 행정부내 대화론과 강경론을 대표하는 양 장관이 공동기고문을 통해 한 목소리로 협상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이후 초강경으로 치닫던 대북기류에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 발언 직전에는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하는 소형화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는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나왔다. 사실상 북한이 미국에 대한 유효한 핵전략을 갖기까지는 ICBM 핵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만 남은 상태다. 그러나 이마저도 북한이 이미 재진입 기술을 보유 또는 근접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등 북핵 위기는 이미 레드라인을 넘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국대통령과의 통화 이후 일주일만에 북핵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연 문재인 대통령은 '평화'를 강조한 데 이어 8.15 경축사에서는 "전 세계와 함께 한반도와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의 대장정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지난달 베를린 구상에 이어 동북아 평화구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는 평가다. 북핵을 둘러싼 위기는 그동안 소강상태를 잠시 보이다 다시 고조되는 양상이 되풀이돼왔다. 지금은 북한이 괌을 선제 폭격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미국과 북한 어느 일방의 오인 또는 오해로 인해 미사일이 오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서울뿐 아니라 대한민국 영토가 전쟁의 도가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북한의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라는 곳은 "미국의 선제타격 기도가 드러나는 그 즉시 서울을 포함한 1·3 야전군지역의 모든 대상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남반부 종심에 대한 동시타격'도 언급함으로써 남한 지역에 대한 전면전에 나설 것임을 협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에 없이 강경한 대북 발언도 이런 일련의 북핵 진전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는 앞으로도 수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번 DIA의 보고서는 지금까지의 전망을 뒤엎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적어도 북한이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해야 대화의 여건이 갖춰질 수 있다"며 "즉각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문 대통령의 촉구는 타당하다.
북한의 혈맹인 중국을 포함해 세계 모든 나라가 북한 도발에 반대하면세 제재를 가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북한이 하루빨리 대화의 장으로 나오기를 희망한다. 북한은 이미 30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사거리 1300㎞에 이르는 노동미사일과 수백㎞의 사정권을 가진 1000여 기의 스커드 등 탄도미사일에 실려 언제든 대한민국 전 영토를 타격할 수 있다. 북핵이 우리에게는 현존하는 가장 절박하고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격랑 속으로 휩쓸리는 대한민국 주변 정세에도 불구하고 국민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안보 불안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북핵 선제타격 논의나 미·중 빅딜설 등에서 문재인 정부가 소외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우려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북한이 남한에 대한 전면전까지 불사할 것이라고 언급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대화 제의 수준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북미간 전쟁위기까지 치달은 대결국면에서 이번 경축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한반도 전쟁과 관련한 원칙표명이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만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며 "정부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만은 막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간 대결구도가 심화되면서 별 문제의식 없이 진행되고 있는 '코리아 패싱'(한반도 문제에서 한국 소외) 현상에 대해 '당사자는 바로 우리'라고 힘주어 말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북미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원칙표명이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강대강 발언을 주고받으면서 9일 우리 금융시장은 여지없이 출렁거렸다. 코스피는 1.10% 급락했고 원화도 9% 하락했다. 실물경제로 북핵 리스크가 옮아가지 않도록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과 국민의 경제심리 악화를 선제적으로 예방해야 한다. 북핵 논의에서 우리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하면서 북핵에 대해 판을 바꿀 전략을 착안해야 한다. 그동안 국내 정치권과 조야에서 제기됐던 핵무장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신호를 발신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금까지 금기시 했던 핵무장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카드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과감하고 단호한 안보역량을 보여줘야 고조되는 위기에서 국민은 안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