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사법부 신호탄에 또, 파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신임 대법원장에 사법부 개혁에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진보 성향의 김명수 춘천지방법원장(58·사법연수원 15기·사진)을 지명했다.
진보 성향 판사들의 대부로 불리는 인물이며 양승태 대법원장 후임 인선은 말 그대로 파격이었다. 청와대는 김명수 춘천지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는데, 김 후보자는 대법관 경력이 없다. 김 지명자는 최근 불거진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 강해 사법부에도 대대적인 개혁 바람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사법부의 독립은 인간의 기본권과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 사법부뿐 아니라 법관 개인의 독립이 필요하고, 법관 독립을 위해 내외적 간섭을 받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김 후보자는 지난 3월25일 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에 법원장 중 유일하게 참석해 이런 인사말로 ‘사법부 독립’을 강조했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김 후보자는 인권법연구회 회장을 맡으며 법원의 문제를 고민하는 판사들과 소통해왔다.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적임자”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대법관 출신’이라는 기존 공식을 버리고 현안 해결에 적합한 사람을 택했다는 평가다. 법관회의에 참여했던 한 판사는 “김 후보자는 사법부와 법관이 독립돼야 재판이 독립될 수 있고, 그래야 법원이 다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소수자와 약자를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뚜렷하다”며 “외부가 아닌 법원 내부의 압력으로부터도 판사가 독립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해, 제왕적 대법원장 제도를 바꾸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의 이력도 사법개혁과 맞닿아 있다. 김 후보자는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정부의 대법원장을 재임명하자 이에 판사들이 반발했던 ‘2차 사법 파동’에 참여했다. 김 지명자는 진보 성향의 우리법연구회 회장에 이어 법원 내 최대 학술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지난 3월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 분산 등을 주제로 한 사법개혁 관련 학술행사를 추진하다 대법원으로부터 축소 압박을 받기도 했다.
김 지명자는 부산 출신으로 1977년 부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현재 춘천지방법원장과 강원도선거관리위원장을 겸하고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지내며 법원 내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김 후보자는 2015년 11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정부의 법외노조(노조 아님) 통보 처분 효력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주목받기도 했다. 동시에 풍부한 민사재판 경험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민사조장, 민사실무제요 발간위원 등을 맡은 경력으로 민사재판 전문가로 꼽힌다. 2009년에는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로 재직했다.
특히 김 지명자는 대법원이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해왔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의 진상규명도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박수현 대변인은 “김 지명자는 인권 수호를 사명으로 삼아온 법관으로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리를 배려해 왔다”며 “법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갖고 사법행정 민주화를 선도하여 실행했으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며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현직 판사 시절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활동한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김 지명자가 국회 인준을 거쳐 대법원장에 취임하면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를 받아들이고,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를 뒷받침해 온 법원행정처 개혁과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등 법원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돼 온 사법개혁 과제들이 본격 추진될 것으로 법조계는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