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통신넷= 이진용기자]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점차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해외법인을 두고 있는 협력업체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하는 고전적인 수법이 동원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는 17일 포스코건설의 협력업체인 흥우산업과 관련사, 회사 관계자들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부산에 본사가 있는 흥우산업은 이날 압수수색 대상이었던 흥우비나와 용하비나 등을 베트남 현지법인으로 두고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현지 건설 공사에 협력업체로 참여했다.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이들 협력업체에 지불해야 할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을 통해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포스코건설 베트남 법인과 관련해 부외자금을 조성할 때 같이 도와준 혐의로 흥우산업 등을 압수수색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포스코건설은 베트남에서 필요한 리베이트 때문에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해명했으나 검찰은 이 중 상당액이 국내로 빼돌려졌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검찰은 해외법인을 거느리고 있는 협력업체에 줄 돈을 과다계상한 뒤 되돌려 받아 비자금을 조성하는 전형적인 수법이 포스코건설에서도 재연됐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이에 따라 포스코건설 베트남 동남아사업단장을 지낸 박모 상무 등 전현직 임직원들을 조사한데 이어 흥우산업 관계자들을 불러 비자금 조성 경위를 물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검찰의 수사가 포스코건설을 넘어 포스코그룹 전체와 정관계 로비 여부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포스코의 다른 협력업체들도 수사선상에 오를 수 있다.
특히 포스코의 인도네시아 제철소 건설사업에 협력업체로 참여했던 D사가 주목받고 있다. 경북 포항에 있는 D사는 언론사 대표인 A씨가 1999년 인수한 뒤 포스코 협력업체로 선정돼 급성장했다.
감사보고서를 보면 D사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베트남과 브라질, 인도 등에 현지법인을 두고 포스코 현지법인의 발주를 받아 각종 건설과 수처리, 원료처리시설 공사에 참여했다.
포스코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조성된 비자금의 통로가 D사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라고 전했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제철소 건설사업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서는 본격적인 수사 단계 전이기 때문에 검찰이 말을 아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D사는 이명박정부의 실세집단이었던 이른바 ‘영포 라인’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수사가 확대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검찰 관계자는 포스코건설 수사에 들어가면서 “비자금만 보는 것은 아니다”며 수사확대 가능성을 열어둔 뒤 다른 의혹에 대해서는 “증거 확보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 사장, 관련자 직위해제만… “관행적 리베이트”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조성 혐의를 수사 중인 검찰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비롯해 포스코그룹 전·현직 임직원들을 소환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8월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를 적발한 자체감사 결과를 보고 받은 황태현 현 포스코건설 사장(68)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17일 검찰과 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포스코건설 감사팀은 지난해 6~8월 동남아사업단에 대한 자체 감사를 실시했다. 자체 감사 결과 2009~2012년 베트남 현지 사업장에서 하도급업체에 지급하는 공사대금을 부풀려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감사팀은 지난해 8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감사보고서를 황 사장 등 경영진에게 보고했다.
동남아사업단장인 박모 전 상무(52) 등은 감사에서 “공사를 수주하기 위해 베트남 발주처가 요구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데 비자금을 썼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전 상무가 직접 전달했다고 주장하는 수십억원의 비자금이 실제 리베이트로 사용된 것인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박 전 상무는 “비자금 조성은 여러 사람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감사에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사장은 이 같은 내용을 보고 받았지만 검찰에 수사 요청을 하지 않았다. 포스코 측은 박 전 상무가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 착복한 것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검찰에 고발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포스코 관계자는 “개인이 착복한 것이 아니고 물량 수주를 위해 관행적인 리베이트를 한 것이라 판단해서 직위해제 처분을 한 것”이라며 “직위해제를 하고 해직을 앞둔 상태에서 본사 비상근 임원으로 인사를 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