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손상철, 유병수기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자질 문제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29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도덕성 문제보다 심각한 흠결은 이 후보자의 정치적 편향성이다. 이 후보자는 2002년 대선 때부터 노무현 후보를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전날 인사청문회를 마친 이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여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 어제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실시해 자질과 도덕성 등을 집중 검증했다. 이 후보자는 박사논문 표절과 위장전입 논란에다 남편이 장녀의 재산을 수년간 허위신고해 증여세 등을 탈루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야당의 거센 추궁을 받았다.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이 후보자에 대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부정적 의견은 더욱 견고해졌고, 주식투자로 12억원의 수익을 얻은 과정에서 회사 내부 정보를 사전 입수해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공직자 배제 5대 비리 중 3가지나 저촉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당도 여전히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경과보고서 채택 가능성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당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일제히 이 후보자에 대한 맹공을 쏟아냈다. “특정 정당에 편향된 인사가 대통령 탄핵까지 결정하는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됐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며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또한, 2009년부터 최근까지 서울시 등 민주당 소속 인사가 장(長)을 맡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수임한 사건이 전체의 45.1%에 달했고 그 대가로 재직했던 법무법인으로부터 8억6000만원의 상여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어제 청문회는 이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으로서 절대 부적격한 분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며 “헌법재판관으로서 절대 경계해야 하는 정파적 편향성이 상식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어제 청문회에서 이 후보자가 여당 법사위원에게 후원금 100만원을 낸 사실도 공개돼 해당 의원 제척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 후보자가 재판관이 된다면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다”며 “차라리 정치를 하라”고 압박했다. 이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 오만과 독선의 결과는 다른 여러 국회 현안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라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5월19일 지명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도 정치적 편향성이 강한 인물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시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며 재판관 9명 중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낸 적이 있다. 김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반발이 거세 6월 7, 8일 청문회가 치러진 뒤 두 달 넘도록 임명동의안 처리가 미뤄지고 있다. 어제 정세균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여야 교섭단체 4당 정례회동에서도 김 후보자 인준안 처리에 대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법사위 간사인 오신환 의원도 이 후보자의 세금 탈루 및 주식투자로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은 점 등을 언급, “금감원이 이 부분의 혐의를 조사하고 진실을 밝혀야 하며, 이 후보자 지명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법령의 위헌 여부를 최종적으로 조정·심판하는 헌법기관이다. 소장을 포함한 재판관 전원에게는 고도의 정치 중립성과 독립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당시 김이수 재판관만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냈던 헌법재판소 구성의 획일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관이 된 뒤에는 철저하게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만, 미국 대법관 임명 과정에서도 드러나듯 과거의 정치적 성향만 가지고 재판관이 못 될 이유는 없다”며 “현재 헌법재판관 다수가 보수적인 성향인 상황에서 다양한 토론이 이뤄지려면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 후보자가 특정 후보를 지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변호사로서 해온 공익활동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국가 상대 민사소송을 대리했고, ‘인민혁명당 사건’ 재심과 손해배상 소송, 호주제 폐지나 인터넷 실명제 등 인권침해 사건의 헌법소원도 맡았다. 야당의 ‘이중잣대’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자유한국당 쪽이 추천했던 헌법재판관 중에도 정치적 성향 논란을 빚은 인물이 많았다. 자유한국당의 전신 민주정의당은 4선 국회의원 출신 한병채 전 재판관을, 민주자유당은 박종철 고문치사 담당 검사인 신창언 전 재판관을 추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역감정 조장과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논란을 부른 1992년 ‘초원복집 사건’ 관계자인 지검장 출신 정경식 전 재판관을,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검 공안부장 출신 박한철 전 헌법재판소장을 지명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헌법재판소장으로 지명됐다가 개인 비리로 사퇴한 이동흡 전 재판관은 재판관 시절 한나라당 국회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내기도 했다. 공안검사 출신 안창호 재판관도 2012년 9월 새누리당의 추천으로 재판관에 임명됐다.
이처럼 야 3당 모두 이 후보자의 자질 부족을 강력히 문제 삼으며 ‘부적격’을 명시하지 않는 한 경과보고서를 채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임에 따라, 이날 오후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재차 진통이 예상된다.“이런 보고서를 여당으로서는 받기 어려울 것이므로 오늘 오후 보고서 채택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