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은 수사 개시 넉달여 만에 무기중개상 일광그룹 이 회장을 구속했습니다. 2009년 터키의 방산업체가 생산한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를 도입하는 과정에 중개료를 부풀려 무려 50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입니다. 그간 방탄조끼·방상외피 입찰비리 등 ‘워밍업’에 가까운 수사를 해왔던 합수단이 드디어 ‘작품’을 내놨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무기중개상은 거대 군수기업과 정부를 연결짓는 어마어마한 거간꾼입니다. 수백·수천억대 계약을 성사시키는 거간꾼이 되려면 유력 정치인과 군 장성의 인맥이 필수적이겠죠. 이 회장이 빼돌렸다는 500억여원을 혼자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이에 합수단 수사는 500억여원 파이를 나눠 먹은 주변 인맥 쪽으로 뻗어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의 1세대 무기중개상으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1985년 처음 무기중개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경찰 간부후보 29기로 30대 중반까지 경찰 조직에 몸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군 출신도 아닌 그가 일반인에겐 생소한 무기중개업에 뛰어든 배경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은 어떤 계기에서인지 무기중개상으로 변신해, 1세대 무기중개상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조풍언씨와 함께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FX 사업)에 뛰어듭니다. 이들은 프랑스 전투기인 ‘라팔’ 쪽 대리인으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여권 인사들이 ‘라팔’을 밀었다는 의혹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회장의 배후는 김대중 정부 당시 핵심 인사들이라는 풍문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회장은 그 뒤로도 정권의 향배와 관계없이 승승장구합니다. 무기중개라는 사업 자체가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려운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그는 건재합니다. 이 회장이 구속된 혐의도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에 체결된 사업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엔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를 받기도 했는데, 조용히 되살아나 무기중개상으로서 명맥을 유지한 겁니다. 그런데 이 회장은 그 뒤로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는 성북구와 푸드뱅크 사업을 시작하고 대중을 상대로 한 무료 콘서트를 주최하기도 합니다. 일광폴라리스라는 계열사를 만들어 연예 사업에도 뛰어듭니다. 2014년에는 대종상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이 돼 시상식장에 얼굴을 비치기도 했습니다. 철저히 지하에서 활동하는 무기중개상에서 가장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문화·연예 계통으로 종목을 넓힌 셈입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행보를 두고는 뒷배경이 뭔지 추측만 난무한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연기자 클라라와의 카톡 문자메시지로 유명세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러시아와 프랑스, 터키 군수업체를 대리해 정부의 실력자를 상대하던 그가 맹랑한 여자 연기자와 입씨름이나 벌이다 망신을 당한 셈입니다. 업종을 넓힌 걸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듣기로는 장남이 연예사업을 해보고 싶어해 일광폴라리스를 설립했다 하는데, 구속되기 전에 아들 머리라도 쥐어박았으려나요. 암튼 합수단으로선 이 회장을 구속하면서 ‘꽃놀이패’를 쥔 것 같습니다. 무기중개업이나 연예사업이나 정부 당국자의 입김이 센 업종입니다. 정권을 넘나들며 승승장구한 그의 뒷배경을 파면, 뭐라도 하나 나오지 않을까요? 이제 합수단의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