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다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 아이들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장애인 학생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 학교 설립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뉴스프리존=안데레사지자] 지난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 강당 바닥에 울면서 무릎을 꿇은 이들에게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무릎을 꿇은 이들은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었다. 이에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도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반대 주민들은 장애인 학부모를 향해 “저거 다 쇼”라며 토론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날 이곳에서는 ‘강서 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2차 주민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지난 7월에 예정됐던 첫 번째 토론회는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강서구 주민이 아닌 장애인 학부모 대표는 토론에 나설 자격이 없다”면서 무산시켰다. 이날도 고성과 야유로 토론회장이 가득 채워졌다. “강서구에 있는 장애 학생들은 강서구 지역 내의 학교에서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서 여러분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마음을 열어주시고 장애 아이의 장애를 먼저 보지 마시고 학생이라고 생각해서 학생들이 공부할 공간을 만든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서울시교육청이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처음 행정예고한 것은 2013년이었다.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계획은 일단 철회됐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이 강서구 마곡지구 등에 대체부지를 알아봤지만 부지 면적, 절차상의 문제 등으로 다시 공진초등학교 터에 특수학교를 짓기로 확정했다.
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가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찬성 측 발언자로 나서 설립을 호소했다.
“장애가 있든 없든 학교는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강서구에 있는 장애인 아이들은 10년 넘게 구로구에 있는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강서구에 있는 교남학교에는 100명밖에 수용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 인구 수가 가장 많은 강서구의 아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습니다.여러분의 자녀들은 가까운 학교에 가는데 저의 아이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에서 2시간 전부터 학교를 가려고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부모이시고 저도 부모입니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의 학교를 여기에 지을 수 없다고 하시면…”
반대 주민 측의 야유가 쏟아져 발언을 이어가기 힘들어졌다.
“여러분들이 욕을 하시면 욕 듣겠습니다. 모욕을 주셔도 괜찮습니다.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 아이들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번 토론회는 비대위 대표 9명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및 서울시교육청 직원, 장애인 학부모 대표 3명이 참석해 기조발언을 한 뒤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차 토론회때와 달리 2시간30분간 의견 교환이 이뤄지긴 했지만 양쪽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발언이 이어질 때마다 고성도 오갔다. 토론회는 오후 10시가 넘도록 진행됐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도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그는 공진초 인근이 허준 선생의 탄생지이면서 동의보감 집필지라는 점을 들어 “유네스코 문화 경제유산이기도 한 대한민국의 자랑거리, 한방 산업의 메카지역이 바로 이 지역”이라며 공진초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을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지난 총선에 앞서 2015년 10월 주민설명회를 열어 ‘공진초 부지에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약속한 장본인이다.
공진초 부지에 특수학교를 짓는다는 행정예고는 2013년 11월25일 처음 공고됐다. 2016년 3월 개교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2013년 12월 서울시의회가 예산을 삭감하는 등 어려움이 있어 계획대로 되지 못하다가 2014년 조희연 교육감이 취임한 뒤 설립을 계속 추진했다. 2015년 공진초가 문을 닫자 2016년 8월31일 서울시교육청은 2차 행정예고를 했다. 개교 목표 시기는 2019년 3월로 잡았다.
비대위는 공진초 인근의 강서한강자이아파트 주민들이 2차 행정예고 직후인 지난 9월2일 발족해 활동해왔다.
이날 설립 찬성 측의 한 학부모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병상련의 마음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권, 학습권이라는 건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한방병원이 없어서 저희가 병원을 못 갑니까? 유네스코 멋진 거리 겉으로 봐야만 강서구가 멋진 구가 됩니까? 아닙니다.
강서주민이 이런 님비 현상 없애고 이 학교를 수용했다, 이건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일입니다.“
한편 서울 시내에 특수학교가 설립된 것은 2002년 종로구에 개교한 경운학교가 마지막이다. 서울시 29개 특수학교는 장애학생의 반도 수용하지 못 하고 있다. 2016년 4월 기준 서울시내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1만 2929명이지만 정작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4496명(34.7%)에 그쳤다. 이날 토론회 시작 전에는 특수학교 설립을 지지하는 주민들이 “강서 주민들이 모두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기자회견을 했다. ‘평등실현을 위한 강서학부모회’ 등 12개 단체로 구성된 ‘강서양천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6시30분 탑신초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강서를 위해 특수학교를 설립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