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와 천연두, 스페인독감이 인류역사의 전환기가 되었듯 앞으로의 인류역사는 어쩌면 ‘before COVID19’와 ‘after COVID19’로 구분될 수 있을 것 같다.
페스트, 14세기에 2,500만 명의 유럽인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염병으로 기록된 전염병이다. 페스트에 관한 인류역사의 기억은 이 질병이 중세유럽의 경제 구조를 뒤바꿔 버린 것이다. 즉 14세기 페스트는 봉건제 몰락과 시민계급의 성장을 가져왔다는 말이다.
직설적으로 말해 페스트는 유럽의 하층민들이 다수 죽음을 맞은 질병이었다. 그러나 페스트로 인한 하층민 인구 급감은 노동력 감소, 노동력의 감소는 급격한 임금 인상, 따라서 2~3배의 임금 인상으로도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유럽의 소규모 영주들이 파산하기 시작한다. 이후 영주와 농민 간의 무력 충돌을 거치면서, 결국 봉건제를 무너뜨리는 경제구조 변화를 가져왔다.
나아가 페스트로 인한 노동력 감소는 기술개발과 자동화로 이어지는 산업혁명의 기반도 된다. 당시 나타난 금속활자가 획기적 인쇄술 발달로 이어진 것도 그중 하나다.
천연두, 스페인과 잉카제국의 전쟁 승패를 가른 것은 천연두였다는 평가가 있다. 1526년 천연두는 유럽에서 여러 차례 유행해, 스페인 군대는 내성을 갖고 있었지만 잉카인은 그렇지 않았다. 따라서 천연두 바이러스는 내성이 없는 잉카인을 힘을 쓸 수 없도록 했다.
이 전쟁에서 패한 잉카제국은 멸망했다. 이후 천연두가 잉카 등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명의 종말을 촉발했다고 평가하는 학설이 다수다. 그리고 이로 인해 스페인은 중남미의 지배국 지위를 한동안 누렸다.
스페인독감,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20세기 초엽,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감염병은 실제 1차 세계대전으로 사망한 민군 합계 3천만 명의 사망자 수보다 많았다.
1919년 스페인독감 팬데믹이 세계를 강타한 후 영국은 몰락하고, 미국이 신흥 경제 대국으로 떠오르는 세계 경제 재편이 시작됐다. 1919년 내내 미국의 다우 산업지수는 100선을 넘어섰다. 명실공히 미국이 20세기 지구촌 최강대국으로 떠오른 계기가 된 셈이다.
코로나19,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이 질병은 지금 유럽과 미국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창궐 3개월에 유럽인 160만여 명 미국인 70만여 명을 감염시키고 유럽 10만여 명 미국 4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낼 정도로 중세 이후 21세기 초입까지 지구촌을 지배해 온 유럽과 미국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물론 우리도 1만여 명의 감염자와 200여 명의 사망자를 냈으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국가와 민족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파워를 선 보이며 지구촌의 눈길을 모으고 있다.
19일 청와대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총선 결과 도표를 바탕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승리’를 축하하는 전화를 해왔다고 밝혔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양 정상간 통화에서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높은 평가, 구체적으로는 ‘최고의 성공’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와는 별도로 현재 지구촌은 한국을 경이적인 눈으로 보고 있음이 많은 외신들에서 나타난다.
코로나19 최대 피해국 중 하나인 이탈리아 전문가 150여 명은 “한국은 코로나19 방역 베테랑”이라며 "봉쇄 없이 코로나를 잡은 한국을 따라야 한다”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캐나다 총리 또한 “코로나19 대응 한국 모델로 가려 한다”면서 “한국의 데이터를 얻게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남아공 등 여러나라들은 지금 한국을 따라 코로나19 이동 검진소 활용하고 있다.
AFP 통신은 “독일 ‘한국 대응 모델’ 따라 코로나19 차단 방역 나서”란 제목의 기사에서 독일이 코로나19 ‘한국형 방역체계’를 모델로 삼아 전방위적인 검사 전략을 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타임은 “코로나19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한국 모델’ 따라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19 사태에 한국 모델을 따르기 위해 미국이 해야 할 일’ 이라며 5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또한 “한국, 코로나19에 허를 찔린 나라들에 중요한 모델”이라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코로나19 검사에 대한 세계의 호평이 이어지는 가운데, 세계가 앞다퉈 한국을 배우려고 한다”면서 “광범위한 검사와 투명한 정보 공개로 전 세계의 호평을 받고 있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전 세계 모델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프랑스 이란 등 코로나19 방역품물 수출을 요청한 국가가 31개국, 우즈벡 부탄 등 인도적 지원을 요청한 국가가 30개국, 아랍에미레이트 등 수출과 인도적 지원을 함께 요청한 국가가 20개국, 민간 차원에서 협력을 진행하는 국가가 36개국 등 모두 117개국이 우리나라에 방역물품 지원을 요청하거나 한국식 모델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이에 우리 정부는 코로나19 진단키트를 중심으로 국내 수급상황에 따른 해외 지원 가능 여력을 점검하고, 지원 대상국 상황에 부합하는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인데 세계 각국이 요청하는 방역물품은 유전자 증폭기, 산소호흡기, 병상세트, 진단키트 등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현재대로 우리가 코로나19의 제압에 성공한다면 이 전환기에 우리 한민족이 세계사의 한 축으로 등장할 수도 있다는 말이 그냥 기대감에 부푼 말만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들떠 정작 중요한 것을 잃으면 안 된다. 이 전염병은 전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적’이다. 때문에 미래에 도래할 역사전환의 주인공이 될 꿈 보다는 지금 당장 이 질병의 제압이 중요하다.
현재 이 전염병은 우리사회 내부의 단합과 결속이 아니라 사회 내부로부터 공격을 시작해서 가까운 사람들마저도 접촉을 꺼리게 해 고립과 배척을 부추기고 있다. 이는 인간사회의 패러다임, 작게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의 습관과 행동, 사회 단위로는 사회와 문화를 바꾸는 중이다.
당장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이런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기존 노동집약적 생산 활동은 비대면 자동화 기계화로 바뀔 것이며, 대규모 관객을 필요로 하는 공연문화나 스포츠 등 인간집단화를 필요로 하는 군대, 학교, 종교 등 수많은 인간 활동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다. 우리는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인정한 이후의 일상회복이 더 중요하다. 전 세계의 많은 전문가, 특히 우리나라 방대본의 정은경 본부장도 언급했듯 코로나 이후는 코로나 이전의 사회로 회복은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한다. 때문에 더욱 우리는 지금의 방역 기조를 놓치면 안 된다. 의학과 과학이 전 지구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이 팬데믹 전염병을 극복하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