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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떠난 시인 그리고 권정생 작가의 기억은 가슴에 눈물..
문화

세상을 떠난 시인 그리고 권정생 작가의 기억은 가슴에 눈물로 남아

문해청 기자 입력 2020/05/02 05:50 수정 2020.05.02 21:42
청소년기 살았던 경북 의성 고향의 이야기 그리고 삶의 시문학 기억은 단촌역사를 오가는 군민의 가슴에 감흥을 주는 노래가 되어

[뉴스프리존,대구=문해청 기자] 과거 대구에서 민족예술인총연합회(약칭 민예총) 대표로 지역문화운동하다 지금은 서울 촌놈 되어 한국문화교류선양활동에 헌신하는 김용락 시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KOFICE 원장)의 묵은 된장향기 나는 인간사랑의 시작품이 코로나19로 메마른 가슴에 잔잔한 서정의 물결이 되어 문화분권운동에 참여하는 시민에게 화제의 인물로 부각되고 있어 그의 시문학을 소개한다.

김용락 시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KOFICE 원장)
김용락 시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KOFICE 원장)

안동 임병호 시인  김용락

임병호 시인이 죽어 고향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산비알에 묻혔다 향년 57세, 죽기엔 조금 아까운 나이다 그는 가끔 신발을 신고 다녔고 많은 시간 맨발로 다녔다 그는 가끔씩 맨 정신이었고 많은 시간 술에 취해 있었다

그가 술에 관한 명작 『명정』을 쓴 건 우연이 아니다 술 취한 날이면 권정생 오두막 찾아가 몇 시간을 울고불고하면서 괴롭혔다 오죽했으면 권정생이 그의 시집 발문에 세상 귀신 다 뭐하고 병호 안 잡아가노라고 썼겠나 그 임병호가 마침내 귀신에게 잡혀갔다

그의 아버지는 권정생의 일직초등 6학년 담임이었다 그의 큰누이는 통혁당 수괴로 사형당한 경북 영천 출신 혁명가 김종태의 처이다.

박 정권 때 그는 매형 때문에 해병대에 강제징집 당했다 (그는 80년대 유행한 강집의 원조인 셈이다) 안동 용상교에서 투신했다 세상이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리만 약간 절였다

이오덕 추천으로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그는 달랑 시집 두 권을 남기고 고향 임하면 금소리 천변으로 돌아갔다

결혼을 안했으니 한 점 혈육도 없어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그렇게 훌훌 돌아갔다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 문예미학사, 2008.

* 산문을 읽다가 산문에 소개된 책이나 인물에 대해 궁금증이 생겨 다음 읽을거리를 고르는 데 영향을 받을 때가 적잖다. 시집을 읽다가도 시집 속 언급된 시인이나 시인의 시 작품에 호기심이 생기곤 한다.

권정생 선생 관련 글을 찾다가 김용락 시인을 만나고, 김용락 시를 읽다가 임병호를 만난다.

안동에서 권정생을 사숙했던 안상학 시인도 임병호에 대해 “어금니 무너지도록 이 악물고 살았다/ 한 번도 과거를 말하지 않았다/ 이 악물고 술 마시고/ 이 악물고 노래하고/ 이 악물고 시를 썼다/…/ 밥과 안주를 먹는 것도 당연히 본 적 없지만/ 안 되는 말도 못 부를 노래도 없었다”(「임병호」 중)고 했으니, 천상병처럼 고문당한 후유증도 있고 그런 영향인지 다른 이유인지 불분명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았다.

권정생은 또 다른 이유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지냈으니 임병호가 자주 찾아가서 의지했나 보다. 권정생도 병을 달고 사면서, 조금 움직여도 쉽게 피로해지는 몸이었으니 “몇 시간을 울고불고하면서 괴롭혔다”는 임병호가 불쌍하면서도 미웠을 것이다. 시인의 말마따나 오죽했으면, 시집 발문에 “세상 귀신 다 뭐하고 병호 안 잡아가노”라고 한 마디 냈을까 마는 이도 권정생 식의 우정 표현이었을 것이다.

임병호가 썼다는 「명정」을 찾아 보니, “서 말쯤 막걸리라도 들여놓고/ 낯선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구름 걸린 높다란 하늘쯤 얘기하며/ 술잔이나 건네다가/ 三日長醉(삼일장취)의 酩酊(명정)에나 들었으면 좋겠다”면서도 “흰 눈이 살같이 흐르는/ 그런 時速(시속)쯤으로/ 광활한 대륙을 돌아들면 좋겠다”고 했으니 안동 출신 이육사의 기개도 살짝 엿보인다. 더 궁금하면 시집을 찾아 읽는 게 상수다.

김용락 시인은 종종 주위 인물을 시적 대상으로 삼는다. 이야기 형태로 풀어쓴 한 편의 시에 연민과 유머가 섞여 있는데 권정생의 영향도 아주 없다고 할 순 없겠다.

만 스물 한 살의 김용락이 자전거에 수박 한 통을 싣고 조탑동 교회 문간방을 찾으면서 시작된 인연이다. 두 사람의 인연을 졸시로 스케치해 둔다.

권정생과 김용락 / 이동훈 의성 단촌리 출신, 스물한 살의 문청인 김용락 도서관에서 『까치 울던 날』(1979)을 읽으며 교회 종지기인 동화 작가가 고향집 인근 사람인 걸 안다. 김용락은 자전거에 수박 한 덩이 싣고 가서 입성 초라하고 머리카락 듬성한 사십 대 중반의 권정생을 만난다.

김용락이 랭보를 말할 때 권정생은 광주를 말하고 수박에 답하듯 『사과나무밭 달님』(1978)을 건넨다. 동화 속 달님은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소식 없는 남편의 그리운 얼굴이지만 김용락의 달님은 권정생 얼굴이다. 사과나무밭 지나 조탑동 교회 문간방으로 오층전탑 곁을 지나 빌뱅이 언덕 오두막으로 혼자서도 가고 식구 데리고도 간다.

첫 시집 『푸른 별』(1987)을 낼 때 권정생으로부터 영원히 소년처럼 깨끗할 듯싶은 시인이란 발문을 받고 다다음 해엔 첫 딸 이름을 받고 딸의 친구 삼으라고 강아지 죽딕이 밥딕이도 받는다.

나중엔 구박까지 받아가면서 권정생이 따로 챙기지 않은 글들을 애써 모으고 묶어서 『우리들의 하느님』(1996)도 낸다.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조탑동 가는 길, 사과나무 뿌리째 뽑혀나가더니 돈이 있어도 남북 어린이 몫으로 돌리고 끝내 가난한 삶을 바꾸지 않던 권정생도 평생의 병치레를 끝내고 어매 곁으로 간다.

임종을 지킨 김용락은 살던 흔적을 남기지 마라는 유지는 차마 받지 못하고 일없이 빈 오두막에 앉아 『조탑동에서 주워들은 시 같지 않은 시』(2008)를 받아 적는다.

『강아지 똥』(1974)이 민들레 몸 되고 한 거름이 한 걸음 되고 잘 묵힌 거름이 바른 생을 돕고, 바른 생은 바른 생을 부른다. 사과나무 꽃 없는 밤하늘에 김용락의 자전거가 수박 한 덩이 싣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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