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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酒)을 아십니까?
오피니언

술(酒)을 아십니까?

이승식 기자 입력 2017/09/20 14:15 수정 2017.09.20 15:17

술(酒)을 아십니까?
 
인류가 언제부터 음주를 시작 했는지 정확한 문헌이나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술의 역사는 인류역사 만큼이나 길지 않을까요? 원시시대 떨어진 과실이 자연적으로 숙성된 알콜 성분을 발견 한 것을 시작으로 유목민시대 가축 젖이 발효돼 몽골의 아이락(аираг)같은 젖술(乳酒)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때까지는 술이라고 하기에는 미완성품일 것이고 농경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곡류를 주원료로 술다운 술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 않나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축조 시기가 BC 1500년경으로 알려진 이집트 피라미드에 이미 맥주 제조법에 대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동양에서 처음 술을 빚기 시작한 시기는 4200년 전 황하문명 때 부터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시대 유적지에서 다양한 주기(酒器)가 출토되고 기원전 454년부터 기록되었다고 알려진 중국의 전국책(戰國策)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술에 대한 첫 기록으로 ‘옛날 황제의 딸 의적이 술을 맛있게 빚어 우왕에게 올렸다’고 대목이 소개됩니다.

우리나라 문헌에 1287년 고려 학자(學者) 이승휴(李承休)가 저술한 제왕운기(帝王韻記) 동명성왕 건국신화 편에 술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해모수가 웅장한 궁궐을 짓고 하백의 딸들을 초청, 술과 음식을 대접하여 만취한 후 돌아가려 하자 해모수는 앞을 가로막고 하소연을 하였지만 세 처녀는 집으로 돌아가고 유화라는 처녀가 해모수와 잠자리를 같이 한 뒤 주몽(朱蒙)을 낳으니 곧 동명성왕(東明聖王)으로 후일 고구려를 세웠다는 내용입니다.

술의 어원은 본래 ‘수블'이었다고 합니다. 15세기에 편찬된 중국어와 국어 대역어휘집 조선관역어(朝鮮館譯語)에는 술이 '수본’(數本)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447년 세종대왕 명으로 집필된 석보상절(釋譜詳節)에는 '수을'로 표현합니다. 1443년 4월부터 38년간 번역작업을 거쳐 1481년에 간행된 번역시집(詩集) 두시언해(杜詩諺解) 내용 중에 “루 위에서 수울 마시고”라는 기록 등으로 볼 때 즉 '술'은 '수블→수울→술'로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격이 소심한 사람도 술의 힘을 빌려 당당해질 수 있고 슬픔으로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자리나 기쁨이 넘치는 자리도 술만큼 지대한 공을 세울 수 있는 물질이 또 없습니다. 서먹서먹하고 어색하기 그지없이 처음 만나는 자리에도 술 한 잔이 오가고 나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의견대립이나 사소한 일로 긴장이 고조되었던 자리를 부드러운 분위기로 바꿔줄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은 알콜 성분만큼 좋은 물질이 없을 것입니다.  

세익스피어는 맥주한잔이면 명예도 포기할 수 있다고 술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술고래가 술을 마신다. 술은 비로소 술고래에게 복수한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강물에 떠있는 아름다운 달그림자를 건져온다며 뛰어들어 익사했다는 전설을 남긴 시선(詩仙)이자 주선(酒仙), 이태백은 ‘술 석 잔이면 대도에 통하고 말술이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고 노래했으며 동양의 술 예찬론자로 두보(杜甫)와 백거이(白居易)도  손꼽힙니다.

‘술 떨어지면 친구도 떨어진다.’는 러시아 속담은 적절한 표현입니다. 근대 문학에 한 획을 그었던 문인들 가운데 횡보(橫步) 염상섭은 원래 제월(霽月)이라는 호를 썼지만 매일 술에 취해 옆으로 게걸음을 걷는다고 지인들이 횡보라는 호를 지어 주었을 정도였답니다. 수주(樹州) 변영로가 쓴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은 술꾼이라면 한번쯤 읽어 볼만합니다. 술이란 마치 양면에 날이 선 칼과 같고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는 매력적인 묘약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의 주당들 대부분이 주당이라는 명칭보다는 애주가라고 표현하며 스스로를 높이려 하지만 다음날 후회로 하루를 보내는 경험을 반복합니다. 또한 주당들은 두주불사 하는 사람을 영웅호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는데 사실 이러한 음주문화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술자리가 시작되면 기분 좋게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취기가 오르면 술이 술을 마시게 되고 더 지나치면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모든 의사들이 술이란 적당히 마시면 보약이지만 지나치면 자신을 해치는 독약이라고 말합니다. 있어서도 안 되고 없어서도 안 될 ‘필요악’ 같은 물질이지만 술로 건강과 재물을 잃고 사회적 이미지가 실추시켜 패가망신은 물론 심지어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수 없이 많습니다. 또한 의학적으로도 인간의 신체에 이롭지 못하다는 알콜 성분을 타인에게 권장 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술이 없는 현실이란 존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굳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번 명절에는 자신의 주량에 맞춰 술을 음미하며 즐겨봄이 어떻겠습니까? 적당한 음주는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 및 내일을 위한 충전제도 되고 나아가 건강까지 지키는 길입니다. 진정한 애주가란 많은 양의 술을 한꺼번에 마시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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