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설립을 준비하고 이후 대표로, 실행위원으로 활동에 힘을 모았던 사람으로 최근 상황에 입장을 발표했다
지난 날 "이미 할머니가 되어버린 피해자들을 한 분 한 분 찾아 내면서 저희는 가슴이 메어 주체하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했다
"지난 50여년이나 숨죽여 살아온 이 할머니들을 만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우리의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문서를 찾고 할머니들의 증언을 채록하는 역사 발굴작업은 시작부터 국제적 활동이 되었다"
"한국과 일본을 넘어, 중국과 대만, 필리핀, 네덜란드까지 엄청난 수의 피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 할머니 피해와 50여 년 간 침묵에는 전 세계의 갈등과 냉전이 작용했다는 사실이 있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는 이 거대한 메커니즘의 희생자이고 그리고 피해자 뿐 아니라 여성인권과 평화가 위협받는 세계 시민들이 희생자라는 자각도 하게 되었으며 피해자가 대부분 사망한 지금도 이 운동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다"고 주장했다.
이런 이유로 "오늘의 정대협 운동은 이렇게 긴 시간 여러 지역에서 피해자와 활동가, 연구자가 함께 켜켜이 쌓아온 것이다" 최근 윤미향 정의연 전. 이사장을 둘러싼 보도가 저희를 황망하고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정대협 설립 시에 간사로 시작하여 사무총장, 대표직까지 오직 정대협 운동에 일생을 헌신한 부끄러움 없는 사람이다"며 신뢰를 밝혔다.
저희들은 "이제 활동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후배의 연구와 운동에서 관심을 놓은 적이 없다. 만약에 문제가 있다면 어찌 윤미향 개인에게 국한된 것이겠는가?"며 저희 "초기 활동가, 연구자들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 그것은 정대협 30년 역사와, 정대협과 연대한 아시아 및 세계 여성인권과 평화운동의 문제가 될 것이다"고 입장을 표했다.
다음은 "언론이 연일 제기하는 문제 중 몇 가지 관해 저희들 생각을 말씀드리겠다"며 첫째, "할머니들은 단지 수동적 피해자로 머물지 않고 활발한 인권운동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정대협운동이 전 세계 여성인권운동의 모델이 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대협의 재정이 피해자 생활지원에 전부 쓰이지 않았다는 비판은 할머니에게 오히려 서운 할 수 있지만 처음부터 피해자와 활동가는 함께 운동했다" 그리고 "수요시위는 할머니와 활동가 및 시민과 만나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며 주장했다
둘째, 이미 "여성인권운동가가 된 피해자와 함께 꾸려온 정대협에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장관 합의 정보를 상그활동가가 독점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화해치유재단 피해자 지원금을 정대협이 받지 못하게 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저희는 "일본정부가 1994년 8월 발표한 국민기금을 정대협이 못 받게 했다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 당시 "법적 배상의 회피를 위해 만들어진 국민기금을 둘러싸고 한국, 일본, 대만, 필리핀, 활동가, 피해자 사이에 매우 심각한 논쟁이 있었다"며 "서로 의견을 모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금원을 받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것은 일말의 진실도 없는 왜곡된 것이다"며 재차 강조했다.
이런 왜곡된 보도로 "2015년 12·28 합의 문제에서도 이러한 왜곡이 반복되고 있다. 이 합의로 인하여 우리 정부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관련 발언을 중단했고, 철거 위험에 봉착한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려는 어린 학생이 추운 겨울 거리에서 밤을 지새웠다"며 추후 "심사가 다 끝난 연구비가 정부조치로 철회되고, 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등재사업도 중단되었다"고 그때의 "부정의한 상황과 좌절감을 저희들 모두 잊을 수 없다"며 상처받은 마음을 토로했다.
셋째, 어쩌면 "너무도 힘이 들어 보고 있을 수 없는 회계 문제이지만 저희는 김학순 할머니의 첫 신고를 교회여성연합회 사무실에서 받았다" 그 후 "정대협 실행위원 가족의 사무실에서 신고를 받고 활동을 했다" 그 후로도 "아현동, 장충동, 서대문, 종로5가 등지로 이사를 다녔다" 그 당시 "재정이 궁핍했고 냉난방, 통풍이 제대로 않되는 사무실에서 총무와 간사가 밤늦게까지 일했다"며 단체 운영의 고달픈 아픔을 표했다.
최근 "형편이 비교적 나아졌지만, 결코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할 수는 없었고 한 단체가 일본정부와 한국정부, 국제사회 모두를 대상으로 활동하며 피해자지원과 수요시위 등 모든 일을 감당하는 현재도 상근 활동가는 여덟 명뿐이다"며 하지만 "부족한 인원으로 회계정리에 빈틈이 생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진솔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대협의 긴 활동 중 회계부정이라는 생경한 상황에 접해본 적은 단한 번도 없다" "정의연에 회계부정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저희는 확신한다"며 간절한 심경을 밝히고 입장을 마무리했다
2020년 5월 20일
[정대협을 만든 사람들] 윤정옥, 이효재, 김혜원, 김윤옥, 지은희, 안상님, 유춘자, 신혜수, 정숙자, 한국염, 정진성, 권희순 [뉴스프리존, 대구=문홍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