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를 타고 찐빵 사러 일부러 갔다. 예전 서울 살 때 일이다.
추석에 가족이 만나 형의 객기를 들었다. 형이 번데기와 뻥과자를 정말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반포에서 시내 종로까지 차를 몰고 가서 한 아름 사고서는 희희낙락했다는 소릴 듣고 한 편으론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돈이 많으니까 저렇게도 미치구나' 싶었다.
그런데 내가 언젠가 회사를 다니던 시절, 맛 집 탐방을 싣기로 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이영규 선생님과 김 부장님을 모시고 추어탕 집 짜장면 집 등 온 천지를 돌아다닌 적 있다.
연극하는 이 선생은 당시 '신명'이라는 잡지도 창간해서 나름 스트레스 받을 때였는데 맛 집 찾으러 다닐 때는 활기에 넘쳤었다. 이때부터 나는 맛있는 집이라면 어디든 가는 못된 버릇이 생겼다.
강산도 두 세 번 변한 그 세월이 지난 이젠 내 몸에 새겨진 그 못된 버릇이 없어졌나 싶었지만 가끔 추어탕 집, 콩국수 집 등 맛 집을 찾는걸 보면 한 번 들인 습관은 잘 바뀌지 않는가 보다라며 관성화 된 못 고친 습관에 자조한 적도 있다.
어느 날 독립투사 민족시인 이육사기념사업회의 문해청 공동대표가 귀갓 길 중간에 내가 사는 대곡지구 아파트2단지에 들러 '사문진 가마솥 제빵소' 진빵 맛을 보여 주었다. 이를 멋진 아내와 맛을 보곤 쫄깃한 식감과 참으로 적당한 단 맛의 앙금에 깜짝 놀랐다.
나는 가끔 달성군 가창면을 지날 때 가창 진빵을 줄서서 사고는 했는데 속의 팥이 너무 많이 달아 이제는 입맛에 맞지 않다. 그런데 엊저녁에 꿈을 꾸었다. 지난 날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팠던 그 시절 꿈을 꾸었다.
어느 여름 밤 마당 평상에 누워 검도록 시퍼런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보며 북두칠성 자리를 찾던 그 시절. 아 ~ 오늘 아침, 꿈속에서라도 그 때를 보았으니 정말 행복했다.
내가 문 대표와 찾아 갔던 달성군 화원 명곡 '사문진 가마솥 제빵소' 진빵 맛은 우리가 어린 시절 먹은 재래시장 진빵 맛보다 맛이 월등하게 좋았지만 찐빵을 베어 물 때 그 행복이 녹아 그 날 밤 꿈을 꾸게 만들었나 보다.
그 후 내 맛 집 리스트엔 경주에 가면 '황남빵', 대구에서는 진빵은 '사문진 가마솥 제빵소' , 추어탕은 '청도추어탕' , 손칼국수는 대곡동 도원시장 안에 있는 '예전'식당을 기록하며 훈훈하고 넉넉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