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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검사, 임은정... ‘법무·검찰개혁위, ‘검찰 과거사 청산’

김현태 기자 입력 2017/09/24 18:27 수정 2017.10.13 09:16
임 검사는 최근 개봉 영화 <공범자들>을 보면서도 많이 울었다고 했다.,. 올해 초 내부게시판에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을 권고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먼저 재심을 청구하자고 건의하는 글도

[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 '소신발언'으로 유명한 임은정(43) 서울북부지검 검사가 자신의 SNS와 감찰내부망에 과거 상관으로부터 받은 부당 지시를 폭로했다. 4년여 전 과거사 사건 공판에서 ‘무죄 구형’을 했다가 중징계를 당한 임검사가 올해 초 검찰 내부게시판에 진실과 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재심을 권고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먼저 재심을 청구하자고 건의하는 글을 올렸다가 조력자 색출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 올해 초 개봉한 영화 <더 킹>에서 안희연 검사는 검찰 수뇌부를 수사하는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졌는데, 한재림 감독은 임은정 검사를 모티브로 해 만든 캐릭터라고 밝힌 바 있다. 뉴 제공

24일 법무부 등에 확인한 결과, 개혁위는 지난주 발표한 공수처 설치 권고안 발표 뒤 후속 주제로 검찰과거사위원회(가칭) 설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인권을 탄압하거나 과잉수사·기소했던 과거 사건의 실체를 밝힌 뒤, 재발방지 대책까지 마련할 위원회를 법무부 안에 설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개혁위는 검찰과거사위원회의 정식 명칭을 비롯해 위원회 조직과 구성, 운영 방식 등을 마련해 법무부에 권고할 계획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임 검사는 검찰 내부게시판에 올린 ‘과거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검사 직권 재심 청구 보도를 접하며’라는 글에서 “2017년 1월20일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대검찰청에 과거사 재심사건에 있어 과거사위에서 진실 규명을 결정한 사건이라도 우리가 먼저 재심 개시 청구를 하고 ‘무죄 구형’을 하자고 건의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과거 시국사건 6건에 대해 직권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6년부터 4년 동안 재심을 권고한 73건 중 당사자 일부가 재심을 청구해 이미 무죄판결이 내려진 사건들이다. 함께 기소됐던 공동 피고인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아직 신청하지 않은 18명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해주는 것이다. 검찰이 과거 시국사건에 대해 먼저 재심을 청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찌 보면 재심 청구를 대행해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검찰로 거듭나기 위한 의미있는 걸음이라 평가한다.

임 검사는 2012년 12월28일 진보당 간사 고 윤길중씨 재심 사건을 맡았다. 윤씨는 1961년 5·16 쿠데타 직후 혁신계 인사들에 대한 탄압 수단인 반공임시특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5년의 판결을 받았고, 이후 그의 유족들은 재심을 청구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초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검찰의 재심 청구는 과거사 반성의 후속 조치라 할 수 있다. 검찰은 불과 5년 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백지 구형’ 방침을 어기고 ‘무죄 구형’을 했다는 이유로 임은정 검사에 대해 정직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재심 청구에선 재판부에 무죄 구형을 할 것이라고 한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개혁위가 구체적인 조사 대상 사건까지 법무부에 권고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 논의 과정에서 개혁위는 2012년 과거사 재심 사건 때 검찰 지도부의 ‘백지 구형’ 방침에 맞서 ‘무죄 구형’을 했다가 징계를 받은 ‘임은정 검사 사건’에 대해 별도의 진상규명 권고안을 낼지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위가 이런 검토에 나서게 된 배경에는 이미 국가정보원과 군, 경찰 등 사정기관뿐 아니라 사법부도 ‘문제 있는 과거사’를 조사해 사과하고 청산하려는 노력이 있었다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 반면 검찰은 지금껏 본격적인 과거 청산에 나선 적이 없다. 새 정부 국정과제인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해결’과 맞물려 검찰에서도 과거사 청산 기구 설치가 핵심 개혁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도 지난달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과거사 규명 기구 구성 검토’ 방침을 내놓았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의 과거사 진상규명과 사과가)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독려했다. 앞서 문무일 검찰총장도 ‘사법살인’으로 불렸던 인혁당 사건과 15살 소년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 ‘약촌오거리 사건’을 언급하며, 검찰 자체적으로 과거사 청산 기구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임 검사는 1·2심에서 모두 승소했지만 대법원은 2년10개월째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찰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성하고 변화해야 한다. 이미 법원에서 무죄가 내려진 사건 중 몇 건을 추려 재심을 대행 청구해준다고 과거가 청산되는 게 아니다. 과거사 반성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규명하는 절차가 병행되어야 한다. 유서대필 사건의 경우 24년 만에 누명을 벗었지만 당시 검찰 수사관계자 누구 한 사람 사과 한마디 없다. 검찰은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선 조봉암 사건 재심을 권고한 진실화해위에 대해 “결론에 꿰맞춘 궤변”이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부끄러운 과거 청산에 책임을 져야 할 검찰이 되레 적반하장의 태도였다. 이제 정권이 바뀌자 다시 태도를 바꾸니 선뜻 믿기가 어렵다. 새 정부 들어 검찰이 적폐청산 1순위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을 누그러뜨리려는 생각이라면 큰 오산이다.

▲ 임은정검사의 페이스북

임 검사는 “새로운 지휘부에서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이 너무 기쁘고 감사해 울컥했다”며 “이 결단이 검찰개혁의 시발점으로 진정성 있게 실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검찰의 과거사 반성은 여론무마용이거나 잘못을 희석하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과오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청산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법적으로 바로잡고, 명예를 회복시키고,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를 고쳐야 진정한 청산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이다. 이어 "그 사건 경찰관님께, 경찰관님이 그 수사지휘를 처리하느라 수사 순서가 밀려버려 수사 지연의 피해를 입은 경찰관님, 국민들에게, 저는 참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서울 북부지검 부부장검사로 승진한 임 검사는 지난 2012년 서울중앙지검에서 근무할 때 '과거사 재심 사건'에서 검찰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이 때문에 정직 4개월 처분을 받았고, 징계처분 취소 소송을 해 2심까지 승소한 상태다.

검사 임은정.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 합격, 2001년 제30기 사법연수원 수료, 2001~2009년 인천·대구·부산·광주지방검찰청 검사, 2009~2012년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검사, 2012~2017년 서울중앙·창원·의정부지방검찰청 검사, 2017년 8월부터 서울북부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임 검사는 사법연수원 동기들 중에서 가장 늦게 부부장검사가 됐다. 지난 8월10일 새 정부 들어 처음 단행된 중간간부 인사에서 부부장검사로 승진한 것. 그의 동기들이 이미 부장검사직에 오른 것에 비하면 2년이나 늦다. 그는 “상부에서 통제 안 되는 검사로 찍힌 탓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임 검사는 일종의 ‘내부 고발자’였다. 검찰의 잘못된 관행을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의 성희롱, 서울 남부지검 검사의 자살, 진경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검사장) 특혜성 주식투자 사건 등 검찰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날 때마다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일례로 그는 2014년 8월 검찰 내부망에 ‘사표 수리에 대한 해명을 요청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대로변에서 음란행위를 한 김수창 제주지검장이 사표를 내자 법무부가 신속히 수리한 일을 두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당시 그는 이렇게 물었다. “당당한 검찰입니까, 뻔뻔한 검찰입니까, 법무부(法務部)입니까, 법무부(法無部)입니까.” 그리고 요구했다. “공연음란죄는 징계 사안입니다.” 지난 4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땐 ‘국정농단의 조력자인 우리 검찰의 자성을 촉구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우병우의 공범인 우리가, 우리의 치부를 가린 채 우병우만을 도려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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