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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찌라시에 말려버린 이데올로기..
사회

신앙, 찌라시에 말려버린 이데올로기

김현태 기자 입력 2015/03/29 13:35

진정한 기독신앙
목사, 성직자들 세금을 내라,.
'은혜만 된다면'… 우상을 넘어 정직으로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지하철 출입구 양옆의 광고 액자에는 작은 종이 전단들이 흔히 끼워져 있다. 대출이나 구인광고, 그리고 가끔은 교회 전단지와 군화도덕(!)의 유인물이 틀의 모서리에 끼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광고물은 그 자리에서 가져온 것이다.
 

내용이나 채용 조건을 보면 다른 구인 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물론 “기독교인 특별채용”과 사장이 장로님이라는 것. 나는 노동 시장이라는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세계에서 ‘기독교인’이란 언어가 어떤 울림을 갖는지도 모른다. 기독교인이라는 끈이 사람들을 얼마나 모을 수 있는 신뢰감을 제공하는지, 장로님께서 운영하는 이 업체가 그의 기독교적 마인드에 의해 운영되는 곳인지, 아니면 기독교라는 색깔로 사람들을 모아서 혹사시키는 그런 곳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교회 연수입 17조 중, 약자 구제에 4%만 쓴다~ 
기사보기 : http://hani.co.kr/arti/opinion/column/666313.html?_fr=mt2    다음은 기사의 일부

교회의 수입은 연 1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신의 뜻에 부합하는, 곧 가난한 이웃이나 곤경에 처한 이들에게 쓰이는 사회복지 분야 사업비는 개신교의 경우 4% 정도뿐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부동산을 사들이거나 교회를 증축하는 데 쓰이거나, 국가에 부담을 주는 이슬람 국가 등의 선교비 혹은 교역자 사례비(목사들 월급)로 쓰인다. 컴컴한 곳에서 돌아다니는 돈도 있다. 철면피가 아니라면 신의 뜻에 따라 쓰인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종교인의 근로소득에 대해 납세의 의무를 부과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나아가 종교법인에 대해 법인세, 상속세, 부가세, 지방세, 취득세, 재산세 등에서 온갖 특혜를 주는 것도 거의 유일하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납세의 의무를 지우고 있으니, 이 나라 종교인 특히 개신교계는 신성가족이다. 이들은 이 나라를 신정일치의 중세시대 혹은 온갖 잡신들이 설치는 고대부족사회로 회귀를 꿈꾸는가 보다.
 
강 위원장은 반대자가 ‘개신교계 일부’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과 거리가 멀다. 천주교는 이미 1994년부터 주교회의의 결의로 소득세를 납부해왔다. 불교계의 맏형뻘인 조계종도 종단 차원에서 납세에 동의했다. 개신교의 경우 일부 목회자들이 개별적으로 납부하고는 있지만, 성공회를 제외하고는 교단 차원에서 과세를 받아들이는 곳은 없다. 지난 9월 잇따라 열린 4개 교단 총회를 참관했던 교회개혁실천연대는 예장 합동, 예장 통합, 예장 고신,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등 어느 교단에서도 종교인 과세에 미온적이거나 배타적이었다고 발표했다.

 

기독교의 탈을 쓴 이데올로기
'은혜만 된다면'… 우상을 넘어 정직으로

 

기자는 신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언젠가 학교 채플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화로 사용하기 위해 벤허(Ben Her)의 작가 월레스(Lewis "Lew" Wallace, 1827–1905)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벤허’는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만든 영화입니다.
월레스가 1880년에 발표한 ‘벤허’(Ben-Hur: A Tale of the Christ)라는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월레스를 소개하는 문헌을 보면 그는 변호사·주지사·정치인·장군·역사소설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미국 남부에 월레스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언젠가 그는 유명한 무신론자 잉거솔(Robert G. Ingersoll)을 만났는데 그는 월레스에게 기독교의 가르침은 다 거짓말이고 쓸 데 없는 것이며, 기독교는 믿을 수 없는 거짓 종교임을 증명하는 책을 쓰면 대단한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웰레스는 성경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파헤쳐서 성경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거짓임을 밝히고, 인류를 신에게서 해방시키기로 작정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 성경을 자세히 읽어서 거짓된 내용을 찾아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읽어가는 가운데 성경 속에서 거짓을 발견하기는커녕 도리어 성경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했다. 성경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는 마음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으며, 마침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가 예수를 부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양심은 "아니야, 그렇지 않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성경은 진리야!"라고 부르짖는 것 같았다.

결국 월레스는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다. 기독교를 파괴할 목적으로 2년 동안 열심히 자료를 찾으며 연구하던 그는 끝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다.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들었던 펜을 꺾고 그는 만인의 심금을 울리며 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한 불후의 명작 ‘벤허’를 썼다.

정말 설교에 사용하기는 너무나 좋은 예화였다. 특히 성경은 믿을만한가를 의심하는 사람들, 성경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감동적인 얘기이다. 하지만 저는 월레스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 동안 설교 예화로 그렇게 많이 인용되던 위 얘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월레스는 ‘벤허’의 원저자일 뿐 아니라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장군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남아있다.

문헌들에 의하면 그는 처음부터 무신론자도, 반기독교적 성향의 인사도 아니었다. 열정적인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일평생 감리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성경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고, ‘벤허’를 쓰기 전에도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까지 가는 얘기를 소설로 쓰기도 했다. 자서전 ‘나는 어떻게 벤허를 썼는가’와 1899년에 발표한 ‘첫 성탄’ (The First Christmas) 서문에서 그는 ‘벤허’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당시 세계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들”(religious and political conditions of the world at the time of the coming)을 그렸다고 했다. 그는 글을 쓰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a conviction amounting to absolute belief in God and the divinity of Christ)을 갖게 되었지만 원래 기독교를 파괴하기 위하여, 혹은 성경을 부정하기 위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벤허’를 썼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월레스 얘기를 이렇게 왜곡했을까요. 월레스는 미국인이고 영어 자료들 중에는 어디에도 그런 얘기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아마 한국에 있는 어떤 분이 왜곡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왜곡한 ‘범인’을 찾는다는 것은 ‘자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별 의미도 없는 일이다.  다만 사실이 아닌 그런 얘기가 어떻게 별 검증도 없이 그렇게 오랫동안 수많은 설교자들에 의해 한국 강단에서 인용되었는가 하는 점이 이상할 뿐이다. 혹 많은 설교자들이 감동만 된다면 과장이면 어떻고, 거짓이면 어떠냐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예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월레스 얘기는 왜곡된 줄도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인용해서 생긴 헤프닝이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때 ‘냉동권사’라는 분이 전국을 다니면서 간증 집회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죽어서 병원 냉동실에 사흘간 있다가 다시 살아났는데 그동안 천당과 지옥에 가서 많은 것을 보았다고 간증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냉동권사란 분의 얘기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이 들통 난 후에 냉동권사라는 분이 한 말이 가관입니다. “거짓말이건 참말이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교인들이 은혜 받고 헌금 많이 바치면 되는 것이….”









내용은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문맥의 얘기를 지금도 가끔 듣습니다. 몇 년 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서울의 어느 보수 교단 목회자는 회교권에 선교의 문이 열릴 것이기 때문에 부시의 전쟁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얘길까요. 아무리 성경책을 읽고 싶어도 남의 성경책을 훔쳐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무리 예배당 건축을 위해서라고 해도 건축법을 어기면서 건축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무리 선교를 위해서라도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런 주장을 한다면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을 악하고 불의한 분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은혜만 된다면 사실을 왜곡, 과장, 거짓말 할 수도 있고, 선교를 위해서라면 남의 나라를 침략할 수도 있다. 이것은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주장이다. 아무리 목적이 선해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까지 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것은 “진리는 총구에서 나온다”고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나 하는 얘기이다. 목적만 선하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의 탈을 쓴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하우츠바르트의 말처럼 이데올로기는 우상숭배이고,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하게 여기는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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