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조문에는 '○○ 법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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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오늘(29일) 오후 2시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거행되는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국장에 참여합니다. 박 대통령의 해외 조문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역대 대통령으로 범위를 넓혀봐도 사상 두번째에 해당합니다. 박 대통령의 이례적인 해외 조문에는 과연 어떤 이유가 숨어있을까요.
◇ 만델라 대통령ㆍ압둘라 국왕 때는 "사례 거의 없다"며 불참
우리 대통령이 해외 정상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은 15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 사망 때 일본을 찾아 직접 조문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3년 11월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을 가긴 했지만, 대통령이 아닌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이었습니다.
사실 박 대통령에게는 이런 해외 조문의 기회가 더 있었습니다. 멀게는 2013년 12월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장례식이 있었죠. 노벨평화상을 받은 세계적인 지도자라는 명성에 걸맞게 그의 장례식에는 전세계 100여개국의 전현직 지도자가 몰려들었습니다.
가깝게는 지난 1월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의 장례식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중동의 맹주이자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었는데요, 인도를 방문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조문을 위해 일정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찰스 왕세자, 프랑스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등도 사우디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박 대통령이 참석하는 대신 각각 정홍원 국무총리와 황우여 사회부총리가 조문특사로 파견됐습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조문을 가지 않는 이유를 "현직 대통령이 직접 조문한 사례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개인적 인연 각별한 리콴유 장례식은 참석하기로
그랬던 청와대가 이번에는 리콴유 전 총리가 타계한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박 대통령이 고인의 장례식에 참석한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는 고인의 국제적 위상과 양국관계, 한국과 각별한 인연 등을 이유로 들었지만 아무래도 박 대통령의 개인적 인연에 무게가 실립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에서 "리콴유 수상 부부는 나에게 부모님 같은 정을 주시는 분들"이라며 고인과의 인연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리콴유 전 수상과 내 아버지는 1960~70년대 아시아를 이끌던 지도자로서 서로 맞수 같은 사이였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리 전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로 한 주요 이유는 다른 외국 정상과 달리 아버지 때부터 맺은 인연을 최근까지 이어온 사이였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설명했습니다.
◇ 1979년부터 세 차례 공식 만남으로 인연 쌓아
박 대통령은 1979년 10월 고인이 방한했을 때 '퍼스트 레이디'로서 첫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고인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불과 일주일 뒤 박 대통령이 서거하자 리 전 총리는 조전을 통해 "한국을 떠나면서 박 대통령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박 대통령 서거는 한국민에 커다란 손실이며 한국의 경제사회적 발전이 계속되길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박 대통령은 2006년 5월 20일 방한한 리 전 총리 부부를 다시 만났습니다. 서울 신촌에서 지방선거 유세를 하다 커터칼 테러를 당한 바로 그 날 오전입니다.
박 대통령은 리 전 총리 부부가 "유세 지원하려면 목을 보호해야 한다"면서 사탕 통을 주기도 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혔는데요, 고인은 고국으로 들어가 피습 소식을 듣고는 쾌유를 비는 편지도 보냈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2008년 7월에도 리 전 총리 등의 초청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싱가포르를 찾았습니다. 자신과 '닮은 꼴'인 고인의 아들 리셴룽(李顯龍) 총리를 만나기도 했죠. 부친들은 경제 발전을 이끌고, 자식들이 나란히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두 집안은 비슷한 면도 많습니다.
◇ 국내에서도 대를 이은 인연 보유한 빈소만 찾아
박 대통령은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조문할 때도 개인적 인연을 매우 중시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직접 빈소를 찾은 건 딱 두 번인데요, 모두 고인과 대를 이은 인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먼저 고(故) 남덕우 전 총리는 이른바 '박정희 시대'의 경제 정책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던 1969년 박 전 대통령에 의해 재무부장관으로 발탁돼 총리까지 지냈죠. 박 대통령과도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거나 의원 시절 후원회장을 맡으며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두번째로 김종필 전 총리의 부인인 고 박영옥 여사는 긴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바로 박 전 대통령 셋째 형의 딸로서 박 전 대통령은 조카인 박 여사와 김 전 총리를 맺어준 장본인입니다. 박 대통령에게는 사촌언니가 되는 거죠.
한 마디로 박 대통령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조문 대상을 결정할 때 개인적인 인연을 가장 중요시했습니다. 친분이 전혀 없는 만델라 전 대통령과 압둘라 국왕을 건너뛰고 '부모님 같은' 리 전 총리를 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부친과의 관계나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장관 등으로 발탁하는 평소 인사 스타일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