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정권 입맛에 맞는 ‘별’ 돌려막기… 무원칙 군 인사, 곪은 게 터졌다
[박성진 안보전문기자 ] “군 상층부 것들이 막대한 돈을 받아먹고 불량 군수품을 사들이도록 한 결과 괴뢰 군부대들에서 전투기술기재(무기)들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거나 각종 사고들이 련발(연발)하고 있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이 지난 17일 5면에 실은 기사 내용이다. 우리 군의 방산비리를 조롱한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다음달로 예정된 군 정기인사를 앞두고 장군들을 둘러싼 각종 ‘설’과 투서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실제 확인되거나 영향력을 발휘했다.
해군은 ㄱ사령관(중장)이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중 경기보조원(캐디)에게 춤과 노래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정책연구관으로 보직을 변경한 뒤 징계위에 회부했다. ㄴ중장도 보직이 변경됐다. 해군은 5명의 중장 중 2명이 공석이 됐다.
현직 고위 장성이 관련 업체로부터 상품권을 받았다는 설도 끊이지 않고 있다. 당사자는 터무니없는 ‘음해’라며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이다. 그러면서 그가 책임자로 관여했던 전력증강사업에 대한 타당성 여부까지 따지고 있다.
인사철 때마다 반복되는 이런 분위기는 군의 원칙 없는 인사도 한몫했다는 데 대부분의 군 장교들은 동의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장성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유력자와의 인연에 따라 진급이 좌우되는 줄서기 풍토가 확산된 지 이미 오래”라며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입맛에 맞는 대상자들을 발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통상 진급 적기인 3차 심사를 넘어 4∼8차에서 발탁된 군인들 상당수는 실력자와 인연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전문성이 고도로 요구되는 직위에도 정권과의 친소관계나 지역·출신 등을 따지면서 ‘마스터’급 전문가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양이 사라졌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전력 분야는 전문가 양성과 보직 관리 원칙이 일관성 있게 적용돼야 최고 전문가가 배출될 수 있음에도, 자리만 거쳐가다 보니 방위사업 비리에 노출되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그동안 국방부는 장관이 바뀔 때마다 나름의 인사 원칙을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 때 이상희 국방장관은 ‘전문성에 기초한 인사 관리’를 앞세워 행정과 관리에 물든 관료주의적 군 인사를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장관 의지와 상관없이 육군참모총장은 임충빈 대장(18개월), 한민구 대장(9개월), 황의돈 대장(6개월) 등 군 인사법의 2년 임기를 채운 사람이 없었다. ‘대장 돌려막기’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고, 각군 사령관들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잇달아 교체됐다.
천안함 사건 후 임명된 김관진 국방장관은 “야전형을 우대한다”는 실체가 애매한 명분을 내세워 군 인사를 쥐락펴락했고, 2013년 8월에는 장관의 인사관행을 비판한 장경욱 기무사령관이 퇴임식조차 하지 못한 채 경질됐다.
이번 4월 인사에서 육사 37기 출신 중장급 지휘관 8명 중 대장이 나올 것인가에 군 안팎의 관심이 쏠려 있다. 만약 육사 37기에서 대장이 나올 경우 그 여파는 최근 바뀐 해군총장을 제외한 육·공군 참모총장은 물론 합참의장 거취로까지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동생인 박지만씨의 동기생들인 육사 37기는 통상 다른 기수가 5~6명 정도 중장으로 진급하는 관례에 비춰볼 때 두드러지게 약진했다. 국방부는 군 안정 차원에서 4월 대장 인사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ㆍ방산비리·군기 문란 신뢰 추락에 시대 뒤처진 ‘5년 단위 증강계획’
ㆍ‘첨단 무기’도 구형된 뒤 실전 배치 유지 비용으로 나라 재정만 악화
군(軍)이 절체절명의 위기다. 방위사업 비리에 장병들 안전이 위협받고, 일부 전·현직 장성들은 그들만의 부패 사슬로 연결됐다. 성폭행·성추행 등 성추문도 끊이지 않는다. 최고위 별들부터 전투력의 근간인 병사들까지 어디 한 곳 성한 곳이 없다.
군기강도, 신뢰도, 명예도 모두 땅에 떨어졌다. 심지어 북한 노동신문까지 조롱에 나서는 판이다. 국민들에게서 ‘이적행위’라는 비판과 함께 ‘이대로는 안된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방위사업 비리 수사는 우리 군 장성·장교들의 적나라한 부패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 전직 해·공군 총장의 방산비리 연루, 공군 장성 출신의 조종사들 목숨을 담보로 한 전투기 부품 바꿔치기, 육군 지휘관의 부하 성추행 등 장성급 지휘관인 소위 장군들의 몰지각한 군기 위반이 전투력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군의 미래 청사진인 전력증강 사업은 마치 건설 현장의 ‘난개발’처럼 체계적이지 못한 채 천문학적 예산만 잡아먹고 있다. 심지어 2020년까지 무기도입비 30조원이 부족하다는 잠정 전망까지 제기된다.
그 원인으로는 군이 매년 마구잡이로 신규 사업을 끼워넣거나 대형 무기도입 사업 예산을 최초 계획보다 수조원씩 늘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덩달아 ‘첨단’으로 포장한 미제 무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유지비용으로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차기·한국형 전투기 도입 사업에 수조원씩 투입한다는 청사진은 나오는 반면 당장 띄워야 할 전투기는 모자란다. 공군에선 유사시를 대비한 적정 전투기 대수 430대를 유지하기 위해 미군이 F-35를 실전 배치한 후 여유가 생기는 F-16을 ‘렌트(임대)’해 운용하거나 전투기 한 대에 조종사를 여러 명 배치해 ‘소티(출격)’ 횟수를 늘리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상황이다.
한 장성급 야전군 지휘관은 “당장 시급한 즉시 전력의 필요성을 합참에 보고하면 ‘중기계획에 포함시키겠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러면 전력 배치는 10년 후를 기약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첨단 스마트폰은 5년 사이 ‘갤럭시 S’에서 ‘갤럭시 S6’로 진화하는 판에 5년 단위 중기계획에 따른 전력화 결과물이 실전 배치되면 ‘구닥다리’ 취급을 받기가 일쑤다. 대표적인 것이 차세대 군전술통신체계(TICN) 사업이다.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방산비리는 무기 납품 단계만이 아니라 그런 무기를 도입하게 하는 정책 결정 단계, 즉 무기의 소요결정 자체를 조사해야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리에 추락한 ‘별’들
▲ 무기중개·통영함 사건 등
방산비리로 떨어진 별만 대장 3명 등 총 21개
‘군피아’ 군 인사까지 개입… 처벌 수준 약해 악순환
대법원은 지난 1월 김상태 전 공군참모총장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역 후 무기중개업체를 설립해 2004년부터 6년 동안 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JSOP) 등 군사기밀을 빼내 미국 록히드마틴 측에 넘기고 25억원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였다. ‘포 스타(대장)’가 군사기밀을 빼돌린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통영함 사건’이 촉발한 방위사업 비리에서 계급은 ‘돈’ 버는 수단에 불과했다.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이 지난해 11월 출범한 이후 29일 현재까지 대장 3명 등 해·공군에서 비리 의혹으로 떨어진 별만 21개다. 한 전직 해군 소장은 검찰 수사 도중 한강에 투신해 목숨을 끊기도 했다.
기밀이 유출되고, 전투함 부품이 바꿔치기 되고, 전투기 정비대금이 사라졌다. 모두 전장의 군인들에겐 생명줄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 군이 북한의 10배가 넘는 한 해 36조원을 국방비로 쏟아붓고도 ‘전력 열세’ 논란을 면치 못하는 한 이유다. 최고위 장성들부터 악취가 진동하는 ‘총체적 비리·유착’ 속에 첨단무기는 맹탕무기로 전락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마치 패망 직전 ‘월남군’을 보는 것 같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 비리 로비스트가 된 장군들
2009년 10월 MBC <PD수첩>은 ‘한 해군 장교의 양심선언’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김영수 해군 소령이 해군 납품비리 의혹과 작동하지 않는 내부 정화시스템을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당시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은 국정감사에서 “군인 신분을 망각하고 일신을 위해서 그런 책임 없는…, 그런 사람 말을 빌려 마치 사실인 양 해군이 매도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 달 후 해군 간부 4명이 구속기소되고, 이후 형사처벌 대상은 31명까지 늘었다.
정 전 총장은 2008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27차례에 걸쳐 해군 복지기금 5억2670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는 2008년 8월 STX그룹으로부터 7억700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최근 다시 구속됐다. 아예 본인이 먼저 뇌물을 요구하고 액수 흥정까지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도 지난 23일 구속됐다. 통영함 음파탐지기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부하 직원들이 시험평가서를 조작해 성능 미달 장비가 납품되도록 사실상 지시한 혐의다. 공교롭게도 정 전 총장은 통영함 납품비리 발생 당시 해군참모총장, 황 전 총장은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으로 통영함 도입 실무 책임자였다.
두 전직 총장을 포함해 통영함 비리와 관련해 구속된 전·현직 해군 장교만 7명으로 모두 해군사관학교 출신 선후배다. 이 때문에 주요 보직을 해사 출신들이 장악한 해군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가 조직적인 방산비리를 만들어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합수단 관계자는 “해군의 전력 사업은 탑재될 장비 하나하나를 선정하는 과정을 해군이 주도하기 때문에 선후배들끼리 뜻만 맞추면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세월호 참사만 없었다면 통영함 납품비리가 묻혔을 것이라는 게 방위사업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밖에 해군에서는 한때 해상작전헬기 도입 사업을 놓고도 전직 해군총장들 간에 로비전이 벌어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천모 예비역 공군 중장은 후배들이 조종하는 KF-16과 F-4 전투기 정비대금 24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공사 출신인 그는 공군기술고등학교 출신 예비역 중사가 세운 회사에 취업해 공군 후배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 돈 앞에서 공군 중장과 중사 출신이 연합해 ‘군피아’(군대+마피아)를 결성한 셈이다.
장군은 아니지만 육군은 불량 방상외피와 방탄복 납품 과정에 연루된 현역 대령 2명이 기소됐다. 이들은 북한군 AK-74 소총에도 뚫리는 부실한 방탄복의 시험성능 결과를 조작한 후 특전사에 납품되도록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 인사·인맥으로 영향력 행사하는 ‘똥별’들
방산비리의 대표적 유형은 납품업체로 선정되기 위한 과정에서의 범죄다. ‘정부 무기체계 도입 계획 등 군사기밀 탐지’ ‘각종 시험평가에서 유리한 평가를 받기 위한 뇌물수수’ ‘자격요건을 가장하기 위한 시험성적서 위·변조’ ‘민간업체에 재취업한 퇴직 군인들의 알선 금품수수 행위’ 등이 이뤄진다고 검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군에서 추진하는 전력증강 사업은 일정한 주기로 반복되고 작전요구성능(ROC) 역시 큰 틀에서 유지된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무기중개업체에 취업한 예비역 장성들은 후배인 현역 장교들에게 밥·술자리를 통해 유대관계를 유지하다 전력증강 사업 정보를 주기적으로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현역 장교들은 기밀을 ‘통째로’ 복사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건네기도 했다.
문제는 군피아들이 협조를 거부하는 내부 인사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쓴다는 점이다. 예비역 장성 출신 로비스트가 실무 장교에게 동기생인 참모총장이나 주요 직위의 장군들 이름을 들먹이며 은근히 ‘진급’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압박을 가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이도저도 통하지 않으면 사실상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는 게 관련자들 증언이다. 방위사업청의 한 간부는 이규태 회장이 구속된 일광공영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지난 정권 때 청와대 지침에 따라 일광공영이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는 상황을 일광공영과 관련된 외국 무기업체에 고지했는데, 일광공영 측이 “업무방해 등을 했다”며 5개월간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다. 일광공영은 전직 방위사업청장 2명을 한때 영입했고, 기무사령관 출신 김모 예비역 중장을 그룹사 대표직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방산비리의 창궐 원인 분석 보고서에서 ‘폐쇄성과 정보 독점’ ‘전문성 부족’ ‘획득비용 절감 치중’ ‘처벌 수준 미흡’ 등 4가지를 꼽았다. 특히 ‘처벌 수준 미흡’은 최근 방산비리로 구속된 현역 다수가 군사법원에서 보석 또는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던 데서도 쉽게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