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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최명길 전 의원, "기본소득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최문봉 기자 happyhappy69@daum.net 입력 2020/06/15 13:26 수정 2020.06.15 13:40
사진은 최명길 전 의원 ⓒ뉴스프리존
최명길 전 의원/ⓒ뉴스프리존

[뉴스프리존=최문봉 기자] 통합당의 비대위원장을 맡은 김종인 대표가 ‘기본소득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고 밝히면서, 오래 이어질 큰 논쟁이 시작됐습니다.

기본소득은 좌파 아이디어라는 반대론과 우파 의제로 복지체계를 교란하는 것이란 경계론이 혼재합니다.

과연 기본소득을 둔 정치적 논쟁은 언제, 어떠한 맥락으로 시작된 것인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주마간산을 펼쳐드릴까 합니다.

① 기본소득(UBI)과 Utopia

기본소득은 영어로 U·B·I 보편·기본·소득입니다. U는 누구에게나(Universal) 조건 달지 않고(Unconditional) 준다는 것을 뜻합니다. B가 뜻하는 기본(Basic)은 공동체가 구성원에게 최소한으로 보장하는 정도란 의미이고, I는 소득(Income)이니까 정기적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현금이란 뜻이죠.

● 구성원에게 공동체가 보장하는 최소한의 소득

1만년前쯤 인간이 땅을 개간해 곡식을 파종·수확하면서 생겨난 所有와 富의 문제는 인류 역사, 모든 문명의 가장 어려운 숙제였습니다.

어떤 형태의 공동체든 구성원이 최소한 보장받아야 하는 물질적 향유의 수준을 두고 오랜 고민을 해왔고, 그런 고민의 한 갈래가 기본소득입니다.

서양 문명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소득이 일정하게 보장되는 이상향을 그린 대표적 사례로 토마스 모어(Thomas More)卿의 ‘유토피아’(1516)가 꼽힙니다.

책에 등장하는 여행가 히들로데이(Hythloday)가 묘사하는 꿈의 섬 유토피아에선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돈이 필요 없을 정도의 재화가 제공됩니다. 토지와 생산도구는 공동의 재산이고, 모두 하루 6시간만 노동하면 풍요를 보장합니다.

Utopia의 어원이 ‘아무 데도 없는 곳’이고, Hythloday는 그리스어로 ‘허튼소리’란 의미이니 현실로 인식한 건 아닌 게 분명하지만, 서양인들의 머릿속에 「공동체가 구성원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재화와 서비스」를 규정한 대표 사례로 남은 것입니다.

●‘유토피아’가 필요했던 시대

유토피아가 발간된 16세기 초는 유럽에 카톨릭에 대항한 종교혁명이 들불처럼 번질 때였습니다. 영국에선 농지에 울타리를 치고 대규모 목초지를 조성하던 ‘엔클로저’(Enclosure)의 시기로 대다수 농민이 가난한 도시 노동자로 바뀌어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동시에 ‘토지를 개인이 소유하는 것은 무한의 권리인가?’를 두고 다양한 철학 논쟁이 전개됐습니다.

유럽 각 나라는 새로운 토지를 찾아 신대륙 개척에 열을 올리던 시대였고 동시에 아시아에서 온 폐렴이 온 유럽을 휩쓸어, 거의 모든 사람이 감염되고 수백만명의 도시 빈민들이 길거리에서 기침하며 죽어가던 비극의 세월이었습니다.

조선에서는 中宗의 대사헌 조광조가 개혁정치의 칼바람을 휘날리다, 기묘사화로 숙청된 그때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제1차 산업혁명(증기기관·방직기), 제2차 산업혁명(석유·전기에너지), 제3차 산업혁명(컴퓨터·인터넷), 제4차 산업혁명(빅데이터·AI)으로 진행되면서 인간 노동의 가치는 점점 하락했고, 각 시대 각 나라는 다양한 형태의 기본소득 논쟁을 전개했습니다.

● 1, 2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본소득: Henry George(1839~1897)

유토피아가 남긴 이상사회에 대한 꿈은 17~18세기 유럽과 신대륙 미국에서 끊임없는 토론 주제였습니다.

그러나 서구 사회의 큰 흐름은 상업자본이 점점 커지고, 토지와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산업자본이 위세를 떨쳐가면서 Adam Smith의 ‘국부론’(1776)이 상징하는 자본주의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개인의 소유권은 자유의지에 반해 침해받지 않는 기본권이고,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와 기업가의 이익 추구를 위한 생산활동을 보장하는 사회 경제 체제가 정립되어 간 것입니다.

이런 자본의 광풍 속에서도 끊임없이 공동체 내에서 구성원이 보장받아야 하는 하늘이 준 금전적 권리가 있다는 理想은 끊이지 않았고, 그것을 상징하는 인물이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상가인 Henry George(1839~1897)입니다.

●‘토지가 생산하는 가치’는 분배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의 조그만 신문사 기자였던 그는 철도와 금광개발, 땅투기가 극성을 부리던 19세기 후반 미국을 관찰해 펴낸 책,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1879)을 발표합니다. ‘진보와 빈곤’은 출간 직후 미국과 유럽에서 3백만 부가 팔려 나갈 정도로 부의 불평등 문제는 이미 세계적 이슈였습니다.

헨리 조지의 주장은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술의 발전으로 창출되는 富(wealth)의 대부분이 토지소유자에게 地貸(rent) 명목으로 옮겨지는데, 바로 이 ‘무노동 소득’(unearned income)이 빈곤의 원인이면서 不義(Injustice)라는 것입니다.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가치는 모든 구성원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고, 후일 ‘공동체 구성원에게는 일정한 수준의 소득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됐습니다.

● Georgism과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소하는 한 방안으로 헨리 조지의 논리가 인용되면서, 그의 주장이 ‘Georgism’이란 시대적 조류를 형성했지요. 자본주의 모순은 해소될 수 없다고 믿었던 칼 마르크스는 헨리 조지의 주장은 ‘사회주의를 덧씌운 자본주의의 마지막 배수로’라고 비판했을 정도였습니다.

부의 원천이 공동자산의 성격을 가졌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부는 공동체 구성원에게 분배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개념은 정보화 혁명의 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빅데이터’는 공유자산 : Herbert Simon

1980대 중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서는 다양한 기본소득 실험이 펼쳐졌습니다. 일자리의 감소, 노동의 가치하락, 기술진보에 따른 부의 폭발 상황에서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도를 찾기 위한 논의의 과정이었죠.

헨리 조지가 토지를 공유자산으로 봤다면, 21세기 산업의 핵심 에너지源 데이터를 공유자산으로 주장한 대표적 인물이 197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심리학자 겸 경제학자 Herbert Simon(1916~2001)입니다.

수많은 저술 중 기본소득과 연관된 부분을 축약하면, 「데이터와 인공지능은 우리 모두의 공유자산이기에 거기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서는 1/n의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미래산업 부의 원천인 AI와 빅데이터는 ‘공유자산’이라는 창조적 관념을 정리하고 떠났고, 현재 서구의 많은 나라의 정부와 정치인 학자들이 이런 개념에 바탕을 두고 기본소득의 도입을 모색하고 있는 겁니다.

● BIEN(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1986년 기본소득의 개념을 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결사체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입니다.

세계적인 연결망을 가진 BIEN은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연차총회를 개최하면서, 보편적 기본소득이 수급자격심사(means-test)를 통해 저소득층 위주로 제공되는 복지 보조금에 비해 어떤 강점이 있는지 등을 맹렬히 홍보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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