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교회는 무엇인가?
[이현주목사의 교회란] 이 영광스런 교회의 일원으로 이 땅위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는 특권과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께서 세우신 이 거룩한 교회의 바르고 풍성한 모습을 이 시대에 우리들이 속해 있는 구체적인 교회가 잘 드러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모든 시대의 교회가 자신들에게 되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교회에 대하여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먼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라고 표현 합니다. (고전 12:12-27) 이것은 일종의 비유법 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셨으며 그리하여 그의 몸은 하늘에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몸은 하늘에 있으면서도 또 이상스럽게도 예수께서는 신령한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것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이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올라가신 이후에 그 다음 비로소 소위 신약시대의 교회가 생겨났는데, 바로 이 신약의 교회를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부터는 우리가 모이는 교회의 건물을 생각하시면 안 되고 다른 것을 생각하셔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을 교회로 세우셨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그 우리가 서로 거룩히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인지, 그리스도와 신비한 일체를 이루고 있는지, 하는 것과 우리 옆에 있는 형제들과 하나인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하면서 여기에 덧붙여 그리스도께서 우리 몸의 머리가 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에베소서 1:15-22)
이것은 교회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아 나아가는 기관이며 그리스도의 다스리심과 상관없는 개인이나 공동체는 이미 교회의 표준에서 벗어났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께 순종해 나아가고 있는지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 주며 증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결국에는 온 세상이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고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만물 중에서 기꺼이 그리스도께 복종하여 나아가는 공동체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의 흥미로운 모습은 교회를 ‘성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과거에 교회공동체가 모이는 장소인 ‘예배당’또는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것은 교회 건물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아니고, 구약 성경이나 신약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성전에 대한 바른 이해도 아닙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이름을 그곳에 두시겠다고 하신 , 즉 하나님이 친히 임재해 있다고 말하신 성전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을 때는 요한복음 2:13-22절에 나타나듯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고 바울은 우리를 성령이 거하는 전, 즉 우리들을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독특한 표현중 하나는 교회된 우리가 성장해 나아간다는 것입니다.(에베소서 2:20-22) 이것은 우리가 신앙 안에서 잘 성장하여 갈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성전이지만 또 아직 아닌 면이 있어서 점진적으로 성전의 모습을 드러내어 가야 함을 뜻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과연 어떠한 속성들을 가지고 있을 까요. 이 부분은 교회가 교회됨을 드러내거나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정하는 데 있어서 기준이 됩니다.
먼저 교회는 단일성을 가진 하나인 교회입니다. (요한복음17:20-26) 이것은 하나님이 하나 되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하나 됨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는 속성중의 하나는 보편적이라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3:23-29) 이 보편성의 의미는 교회에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다 들어 올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 말은 ‘온 세상에 다 널려 있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교회는 히브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교회가 하나의 특수성을 가진 공동체 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누구든지 믿음만 있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인종이나, 사상이나, 지역이나, 직업이나,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믿기 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성격이 파괴되면 교회의 교회다운 모습이 사라집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거룩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5:1-13) 이것은 세상과 같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구별되어져 있는 특징’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거룩성이 단지 교회 성원들의 윤리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을 포함하지만 교회의 거룩성은 더 근원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와의 생명적인 연관성을 통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그것만이 여기서 우리를 ‘거룩하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거룩성은 어떻게 나타나고 유지될까요?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 18:15-20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서로를 용서하는 노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안에서 서로를 세워주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를 용서하고 권고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본문에는 형제가 잘못한 경우에 그것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중심으로 말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 이상으로 나아가서 형제를 세우려는 노력에로까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어야만 합니다.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증표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보여지지 않으면 참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나타나는 증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교회가 바른 복음을 선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음을 철저히 밝히고서 전적으로 하나님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구원을 믿고 신뢰하도록 하는 이 복음은 모든 교회에 의하여 선포되는 것 같지만 잘못하면 이 복음을 가리우고 흐리게 하기 쉬운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은 갈라디아서 1:6-10에서 강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강하게 말합니다.
그러면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잘못되어져 있는가를 분명히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만 있으며
이 구원에 관해서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의지해서 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의존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이렇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께 감사해서 그를 위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복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를 철저히 기대어 사는 삶이교회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다음으로 교회에서 나타나야할 증표에는 성례가 있습니다. 성례란 세례와 성찬을 뜻합니다. 이 성례는 복음의 선포를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나타내어 보이는 것을 뜻합니다. 세례는 로마서 6:1-11에 근거해서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바깥으로 내보이는 것이며 그것을 공적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와 인호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즉 분명히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죄 씻음의 의미도 있으며 이것은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다는 것을 나타내어 보이는 것입니다. 성찬은 주님과 나와 그 생명적인 관계를 말해 주기 위해서 입니다. ‘나는 그냥 살지만 나는 그냥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생명적인 관계를 가지고 살게 된다. 우리가 밥을 먹어야 살듯이 우리 영혼이 주님과의 관계성 가운데서 그것이 내 영혼의 음식이고,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것이고 내 영혼을 상쾌하게 해주는 것이다’그런 의미 입니다. 또한 이것은 교회가 교회됨의 책임을 지게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교회의 성격들을 나타내기 위해서 교회에는 직분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직분에 대해서 살펴봄으로서 이제 우리가 어떠한 모습으로 교회를 교회답게 섬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가 ‘유지체적’이라는 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교회는 유기체이기도 하지만 ‘조직체’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조직체로서의 교회를 이제 말하고자 합니다.
먼저 교회를 만대에 세우시기 위해서 주님께서 세우게 하신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교회를 세울 때만 있었던 직원들입니다. 사도들, 신약교회의 선지자들, 그리고 복음전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려고 하는 교회의 직원들은 주님께서 교회에 늘 있도록 하신 직원들입니다. 먼저 장로입니다. 사도행전20:17-38에 보면 장로들에 대해서 나옵니다. 여기에서 누가는 장로와 감독자라는 표현을 번갈아 가면서 사용합니다. 즉 장로와 감독자가 같은 의미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즉 한 교회에 여러 명의 장로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장로들은 로마서12:8에서는 ‘다스리는 자’로 데살로니가전서5:12에서는 ‘다스리는 자와 권하는 자들’로 히브리서13:7에서는‘인도하던 자들’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물론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은 우리의 왕되시며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장로의 의미를 잘 알아 장로로서의 소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장로들을 두 종류의 장로들로 묘사 합니다. 즉 강도하던 장로와 치리하던 장로들 입니다. 강도하는 장로는 말씀을 가르치고 설교하는 자격을 허락 받은 분, 지금의 목사를 말합니다. 이 장로들의 직무는 교회를 정상적인 궤도에서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이고, 또 하나는 혹시 우리 가운데서 잘못된 교훈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생활을 잘못해 나가는 사람들 , 어그러진 길로 나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권면과 인내로서 모든 교회의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원리에 따라서 생활 하게끔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집사입니다. 사도행전 6:1-7에는 일곱 사람을 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는 집사라는 호칭이 사용되어지지는 않으나 그 선출의 기준이나 하는 일들이 디모데전서 6장에 나타난 것과 흡사하기 때문에 이들이 교회에 처음으로 세워진 집사님들로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구제와 교회를 섬기던 자들이었습니다.
다음은 목사 입니다. 성경에서는 가르치는 장로로 표현되기도 하며 에베소서 4:11에서는 목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우리들 가운데서 가르치기를 잘하는 자를 골라 바른 교육을 통해 우리와 다음세대의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무를 감당해야 하는 자들 입니다.
이렇게 교회에는 여러 가지 직무를 담당하던 교회의 직원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주께서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역자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은 모두 주님의 부르심에 의해서만 이 일을 감당해야 하고 이런 부르심이 있을 때 기꺼이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역자가 세워지는 과정은 모든 성도의 일이며 교회의 일임을 교회인 우리가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교회의 사명 입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을 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무리에게 가져다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하기 위해서 이땅 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여 왔다는 그것을 이 땅 위에 찬연하게 그 빛을 비추어 보이면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 보이는 공동체가 바로 이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통해서 확연하게 이 세상에 드러나도록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의 존재 이유는 이 세상 안에 하나님과 그의 진리가 현현되기 위해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타내어지심은 우리들의 아주 소박한 삶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원칙에 따라 살아갈 때 거기서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현현 하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이 모두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데서 나타납니다. 온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그를 높이는 이들이 있음을 웅변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여 드리는 것이며, 우리의 예배하는 자로서의 자의식을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며, 운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가 섬김과 교제의 공동체라는 것을 인식하여 이것을 적극 실천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섬김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섬김의 원리를 통해 세상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일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전파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적 사명을 잘 수행해 나아감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과 하나님의 현존하심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지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가득 차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성숙해 가는 교회는 동일한 신앙을 동일한 방식으로 믿어 나가며, 세상의 여러 교훈의 풍조에 밀려 이리저리 움직여 가는 요동하는 모습에서 벗어나는 교회로 성숙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고 행함으로 우리의 공동체가 사랑 안에서 참됨을 나타내어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서로를 통해 도움을 입음으로 서로 연결되고, 서로 합하여서 각각의 지체의 분량대로 힘을 써서 그 전체로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독서 보고
“존재”라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의식과 관념의 바운더리를 넘어서 독립적으로 외적 공간에 실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우리의 관념과 의식 안에서 갇혀져 있던 교회를 존재하게 만드는 책이다.
교회라는 관념의 오류를 지적함에 있어서부터 -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지칭하는 것으로부터 - 교회의 교회다움과 그 존재의 이유에까지 광범위한 범위를 다루고 있다. 더욱이 조직신학이 가진 형이상학적인 부분을 넘어선 실천적이고, 실재적인 그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교회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교회가 가진 두 가지의 상충된 특성인 “교회의 유기체”적 요소와 “교회의 조직체”적 성격을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말해주고 있다. 각각의 개인들을 교회로 정의 하면서도 그 교회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교회로 성장되어져 가는 과정을 잘 그려 내고 있다.
이 책의 처음부터 끝맺음까지 면면히 흐르는 하나의 관점은 “하나님”과 “말씀”으로 귀결된다. 인간의 전적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의지로부터 시작한 글은 교회의 속성들을 이야기 하면서 그 특성들이 하나님의 특성임을 강조한다.
삼위가 하나이듯 하나인 교회, 외적 기준을 배재하고 하나님 기준에 세우신 보편적임, 그리고 하나님이 가지신 거룩성과 교회의 거룩성에 관한 이야기들 그리고 교회의 존재 목적과 그 안에서의 부르심 이 모든 것을 저자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기초로 세우고 있다.
이 개념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르네상스와 모더니즘을 지나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존중의 가치관은 언젠가부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그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얄팍한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을 분해하여 인식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만족하고, 안위하는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도 각각을 해체하여 버림으로서 그 안에 면면히 흐르는 하나님의 구속하심과 전능하심은 어느새 배제되었다.
그리하여 교회는 교회다움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편의와 인식 그리고 인간이 요구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위로로서 존재하게 되어져 왔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안에 성경과 하나님 말고도 여러 가지 필요한 새로운 기준들이 필요로 하게 되었고 새로운 지도가 필요로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은 교회는 다른 어떤 규칙이나 기준으로 이끌어지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교회가 다른 어떤 것을 생각해야할 그 어떤 자유로움도 소유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만으로 교회는 다스려져야 하고 그렇게 지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성경적 기준으로 교회는 판단 받아야 할 것이다.
교회에 대한 이렇듯 자세한 설명들은 어쩌면 혹자로 하여금 냉대를 받을 수도 있다. 즉 참된 영성의 마크가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교리를 부정하고 삶을 강조한다. 그것이 신앙이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교회를 빈약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증시 하고 이 땅위에 충만해야할 교회가 세상을 향해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간다.
교회가 그 존재 이유와 목적을 상실한다면 어찌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강력하게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보여 줄 수 있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서 이런 이상을 찾아 나가다 보면 “그것은 전혀 우리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인데“하는 묘한 불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제시하는 이상을 바꿀 수는 없으므로 결국은 우리의
현실을 성경이 제시하는 이상에 맞추어 가야만 합니다……."
그렇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순종하여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교리적이고 가볍다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삶만을 강조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것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끝으로 교회론에 대한 책 한권을 읽으면서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은
교회의 기준이 다른 곳에 있지 아니하고 성경에 있다는 것이며, 교회의 목적이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는 교회가 하나님이 주시는 원칙을 지키며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행의 나라라고 한다. 예전에 있던 건널목이 새로운 곳으로 이전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예전에 건널목이 있는 장소로 길을 건넌다. 이제 그곳은 건널목이 아닌데도 말이다. 혹 누군가 “왜 당신은 교통법규를 무시하는 겁니까?” 라고 묻는 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전부터 이리로 건넜는데요.”
우리나라는 법이 있으나 국민은 법보다 관행이 먼저이다. 이러한 국민성이 우리 교회에도 만연하다.
하나님이 주시는 원칙으로가 아니라 예전부터의 관행이 우선시 되는 교회가 많다는 것이다. “남들 다하는데. 다른 교회도 이렇게 하는데”라고 말하며 그러한 관행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도 고민하지 않는 교회가 이제는 줄어 갔으면 한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교회가 더욱 많아지길 기도하며 책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