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박원순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말을 남기고 연락두절에 빠진 지 7시간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야간 장비까지 투입해 대대적인 수색에 나선 끝에 10일 새벽 0시쯤 북악산 일대 숙정문 부근에서 박 시장의 시신을 발견했다.
마음이 참 복잡하다. 박원순 시장의 인생을 담은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 사인회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받았을 때가 어제만 같은데 말이다. 그의 저서만큼 그의 삶을 제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의 표현으로 그의 걸어온 길을 다시금 반추해본다.
▶ 시민운동을 하기까지 : 박원순은 서울대 법대생 시절, 운동권도 아닌데 무리에 휩쓸려 투옥돼 4개월 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런데 이 감옥살이에서 오히려 많은 것을 얻었던 것 같다. 옥중에서 그는 사상서, 불교·기독교 서적까지 다양한 독서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갔고, 또 소년수 방에서 각종 범죄자 딱지를 단 친구들을 사귀게 됐다. 이들과 함께 하며 박원순은 개인의 잘못은 개인의 악한 본성이 원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됐고, 개인의 불행에 대한 책임은 사회에 있다고 여기게 됐다. 인간 대 인간으로 그 친구들을 만나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감하리라 믿는다. 즉각적 ‘감시화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 성숙한 조건과 사회 제도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신념은 분명 그 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후 시민 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의 경험 때문인지 모른다.
▶ 참여민주사회와 인권을 위한 시민연대 ‘참여연대’ : 20대 중반에 사법고시에 합격, 변호사가 된 후 한창 성공의 가도를 달리며 ‘부자아빠’로 성공해가던 그는 ‘탐욕’에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 1991년 모든 걸 정리하고 유학을 떠났다. 돌아와서 그는 ‘가난한 아빠’가 되었지만, 참여연대에서 부패 척결 운동을 하면서 사회에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1994년 9월 이후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참여연대는 사회과학자와 운동가, 법률가가 함께 모여 시민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참여연대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로 고발하는 등, 합법적 소송 방식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여 주목받았다. 2000년 총선 당시 낙선운동도 큰 이슈를 낳았는데, 이로 인해 박원순은 많은 스트레스와 고뇌를 겪었을 것이다. 낙선운동은 후보등록을 마친 인사 중 부적격 인사를 탈락시키는 운동인데, (현재 합헌 판정을 받았으나) 당시 선거법 위반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의 모든 것으로 참여연대를 세워나갔고, 사회에서 단체의 영향력은 커져갔다. 그는 참여연대를 목숨보다 사랑했단다.
▶ 진정한 행복과 기쁨을 맛보게 한 ‘아름다운재단’ : 그러나 2002년 어느 일요일 오전, 그는 짐을 싸서 홀연히 사무실을 옮겼다. ‘아름다운재단’으로. 재단법인 아름다운재단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 만든 기금으로 사람들을 돕는 재단이다. 유산, 수입, 재능 등 무엇이든 가진 것의 1%를 나누자는 1% 나눔 운동, 재활용품을 서로 나눠 쓰고 그 이익으로 어려운 이들을 돕는 아름다운가게 등, 역시 내 마음에 드는 기부 프로그램들을 깨끗하고 공정하게 운영하는 곳. 이 곳 간사들은 100만원 정도 되는 박봉으로 일한다. 물질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위해 투신하는 사람들은 아름답다.
▶ 아름다운 재단에서 운영하는 아름다운 가게 :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쌀 한 가마니를 보내는 사람, 바닷가에서 커피 떡볶이 판돈의 1%를 기부하는 사람, 평생 모은 오천만 원을 기부하는 할머니 등, 정말 사회의 작은 사랑의 씨앗들이 모이는 곳이 이곳이다. 물질적 가치보다 더 큰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곳이다. 사회 통합을 기대하게 하는, 우리사회에 남은 희망을 보여주는 곳이다. 이런 나눔의 모임이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더 맞았나 보다. 날마다의 행복을 고백하는 그의 모습.
▶ 박원순의 꿈, 나눌 청년들과 함께 :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시절 박원순 변호사는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다며, 21세기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을 항상 이야기했다. 그는 “NGO는 겉보기엔 기업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회적 기업”이라며 “개인이 NGO에 참여하는 것은 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보람이 더 크다”고 말해왔다. 또 그는 “남들보다 더 큰 사회적 책임이 있는데도 남들이 가려는 편한 길로만 가려 한다”며 “새로운 실험과 도전이 필요한 분야에서 사회적 책임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 그래서 시작한 정치, 서울시장 : 비로소 다시 땅이 녹고 꽃이 피는듯 했다. 본래 정당 정치의 목표는 해당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대표자들을 국회에 보내 계급의 이해를 추구하기 위함인데, 계급이 아닌 ‘세대’, 그 중에도 ‘청년 세대’의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청년 실업이나 등록금 문제 등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화두를 선점한다는 것은 곧 청년 지지층을 확보해 정당의 지지를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대의 힘’은 지난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단적으로 드러났는데, 박원순 후보는 20~30대 표를 압도적으로 얻어 당선됐다.
▶ 박원순의 길과 책임 : 박원순 시장은 인생철학이 뚜렷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평소 “시대와 국민과 역사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그는 먹고사는 일 같은 사소한 고민 보다는 고통받는 사람들을 평생 돕겠다는 큰 꿈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또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할 것을 당부하며, ‘적게 버리면 적게 얻고, 많이 버리면 많이 얻는다’는 자신의 인생철학을 매번 말해왔다. 박원순 시장의 ‘경청’에 대해 설명하면서, 서울시 사업의 대부분이 시민의 민원과 이에 대한 전문가의 토론을 통해 시행된다고 시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덧붙여 서울시 앞에 귀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해 시민의 민원을 실시간으로 받고 온라인 소통을 위해 SNS를 활성화했다. ‘개방’과 ‘협업’을 강조하면서 서울시가 진행한 심야버스 사업과 ‘서울시 나무 입양 제도’ 등은 소통의 결과물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뭔가 모를 착잡함이 다시금 감돈다. 그가 걸어온 길을 여기서 멈추지만,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소외된 이 하나없이 모두가 공평하게 살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그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