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4·16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으로 만들어졌다. 특별법은 특조위를 정부조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로 구성하도록 했으며, 특조위 업무의 독립성을 명시적으로 규정했다. 정부가 특조위의 구성이나 운영에 개입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정부의 무능한 대처,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비롯해 기업의 돈벌이를 위해 안전규제를 축소해 온 정부 정책, 이 모든 사항이 특조위의 조사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특조위는 정부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 보장이 그 핵심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3월27일 해양수산부가 입법예고한 특별법 시행령안을 보면 이런 취지와는 정반대다. 시행령안은 사무처 산하의 기획조정실장이 특조위 업무를 총괄·조정하도록 했다. 기획조정실장은 해수부 고위공무원이 맡게 된다. 진상규명 업무를 총괄할 조사1과장도 정부 파견공무원이 담당하도록 했다. 특조위의 조사대상인 정부가 특조위의 핵심 직위를 파견공무원에게 맡김으로써 특조위를 장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대목이다.
더구나 시행령안은 위원회 직원 수를 120명에서 85명으로 축소하고 직원 중 파견공무원이 차지하는 비율도 늘렸다. 당초에 특조위에서 마련한 안은 직원 120명, 민간 대 공무원 비율을 70 대 50으로 하는 것이었다. 특조위의 활동기간이 1년(6개월 연장 가능)으로 제한돼 있는 상황에서 특조위는 법이 정한 최대한의 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부는 특조위 인원 규모를 일방적으로 축소했다. 지난 1월 김재원의 '세금도둑' 발언이 일종의 정부 지침이었던 셈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시행령안이 특별법에 규정된 위원회 업무 범위마저 축소시켰다는 점이다. 진상규명 업무에 관해 시행령안은 "정부 조사결과의 분석 및 조사"라고 규정해 특조위의 주된 업무를 그동안의 검찰 수사나 감사원 감사결과 등 정부 조사결과를 검토하는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있다.
특히 안전사회 업무의 축소는 명백히 특별법에 반하는 것이다. 특별법은 "재해·재난의 예방과 대응방안 마련 등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을 위원회 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시행령안은 세월호 참사와 같은 해양사고의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대형 재난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요인을 살펴보고 '종합적 안전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 특별법의 요청임에도 정부 시행령안은 근거도 없이 이를 해양사고의 재발방지 대책으로 축소한 것이다. 게다가 시행령안에 의하면, 안전사회 업무는 거의 국민안전처에서 파견된 공무원들이 담당하도록 돼 있다.
정부는 특조위의 안전사회 업무가 국민안전처의 업무와 중복된다고 말해 왔다. 단언컨대, 그렇지 않다. 국민안전처는 정부 조직 개편으로 과거 안전행정부의 안전 업무와 해경의 구조구난 업무를 통합한 정부기관이다. 세월호의 침몰 과정에서 골든타임을 놓치고 배 안에 있던 승객을 1명도 구조하지 못한 게 안전행정부와 해경이었다. 국민안전처야말로 엄혹한 조사를 받아야 할 기관이다. 그리고 국민안전처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조사하고 안전사회를 위해 필요한 대책을 마련해 국민안전처에 요구하는 것이 특조위의 업무인데, 국민안전처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그 업무를 담당한다는 것이니, 그냥 '어이없다'가 아니라, 아연실색 수준이다.
참으로 간악한 정부다. 이런 시행령이라면 특조위는 독립기구가 아니라, 정부의 하위조직으로 전락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특조위의 활동을 방해하자고 작심한 모양이다. 시행령 가지고 농간질하는 정부의 사악함이 도를 넘었다.
3월20일에는 특조위 임시지원단에 파견나온 해수부 공무원이 위원회의 내부 업무와 계획 등의 자료를 청와대, 새누리당, 방배경찰서 등에 비밀리에 보고하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파견공무원을 시켜 특조위의 내부 동향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것만으로도 특조위의 독립성을 뒤흔드는 중대 사건이건만, 정부는 한술 더 떠서 특조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시행령안까지 들고 나온 상황이다.
한 가지 분명해진 게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는 것. 정부는 기어코 국민과 싸우자고 한다. 국민과 유가족의 뜨거운 가슴과 열망으로 만든 특별법이다. 우리가 함께 살려야 한다. 정부는 특별법과 특조위를 무력화하려는 시행령안을 당장 철회하고 특조위의 독립적 활동을 보장하라.
<이호중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