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력곡선(Vitality Curve)'이라는 것이 있다. 이 개념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잭 웰치 전 회장이 침체에 빠진 세계적인 기업을 맡으면서 도입한 인사제도다. 인사제도라지만 정확하게 표현하면 한국의 조직사회에서 근로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력 구조조정 제도'다.
웰치 회장은 매너리즘과 무사안일에 빠진 GE의 총수가 되면서 기업의 새로운 도약을 목표로 직원들에게 자극을 주기위해 이런 새로운 제도를 시행했다. 그는 전 임직원을 상위 20%, 중위 70%, 하위 10% 세 범주로 나눠 그에 합당한 당근과 채찍을 구사한 것이다.
성과가 탁월해 상위 범위에 속하는 구성원들에게는 임금인상이나 승진, 그리고 스톡옵션을 부여하며, 중간 범주 계층에게는 상위 등급이 되도록 교육 훈련이나 격려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하위에 속하는 부류는 과감히 퇴출시켰던 것이다. 그는 계속 직원들을 독려해 모든 임직원들이 좋은 성과를 내도록 다그치며 ‘해고도 경영의 일부’라고 정당화 시켰다.
잭 웰치의 경영철학에 대해서는 가혹하다는 평가도 있다. 개인의 성과를 중시하기보다 조직 전체의 구성원들이 열정을 갖고 팀워크를 통한 시너지로 활력을 창출해야 된다는 반론도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든 조직은 구성원들의 역량을 통해 성과를 내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핵심은 경쟁력을 갖춘 인력이야 조직이 어떤 인사제도를 시행하던 상관이 없다. 하지만 경쟁에서 뒤처지는 구성원들에게 활력곡선과 같은 성과 중심의 평가는 고용 신분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한국 조직사회에서는 1990년대 후반 IMF를 맞아 구조조정이 일반화되면서 고용 신분이 불안정해지게 되었다. 민간기업에서의 정년은 별 의미가 없이 기업의 여건에 따라 퇴출이 보편화 되었다. 그러면서 법적으로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나 공기업이 가장 안정된 직장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것이 지금 한국사회에 ‘공시족’이라는 유행을 가져왔다.
물론 지금까지 공무원이나 공기업에서 성과급제도를 통해 실적을 평가해 왔지만 그 제도가 고용상태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공직사회를 두고 “철밥통”에 “영혼이 없는 집단”으로 비하하는 말까지 생겨나지 않았는가. 요즘 심하게는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직에 들어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할 신세대 공무원들이 뿌리 깊은 구태적 관료주의에 갈등을 느끼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국가적으로 인력의 낭비나 다름없으며 공직사회의 혁신이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기사 관료적인 체계를 두고 미국의 행정학자 랄프 험멜은 “공무원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하지만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정부 첫 업무보고 자리에서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2006년 미국의 포천지는 오히려 ‘능력보다는 영혼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새로운 경영원리를 제시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영혼’이란 사명감, 책임감, 주관성, 자긍심, 열정, 패기, 헌신, 봉사, 창의성 등을 두루 포함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잭 웰치는 활력곡선이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구성원들에게 이러한 영혼을 가져줄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제도가 그 시대적 상황에서 성과도 냈지만 비판도 받은 것이다.
이제 우리사회는 첨단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4차 산업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새로운 기술혁명의 시대에 웰치 회장의 활력곡선이나 공직사회의 철밥통 사회도 시대적 한계를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도 근래에 불어 닥친 고용 불안의 사회적 현상에만 주목하여 인재들이 공무원 시험에만 매달리는 것은 미래를 크게 보지 못해서이다.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월가의 전설로 통하는 짐 로저스는 ‘명견만리’에 출연해 공시 열풍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청년들이 도전하지 않고 안정을 취하는 사회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이다. 로저스는 “호기심을 갖고 세상을 보며 모두가 미쳤다고 하는 특별한 일을 찾아 나서라”고까지 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사회 젊은이들은 과거나 현재의 사회문화체계로 미래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 미래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면서도 그 속에는 새로운 도전거리들이 얼마든지 잠재되어 있다는 냉철함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세상을 읽어가는 인문학적 학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빠른 변환기에는 ‘직장’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평생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꾸준하게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뚜렷한 공직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정년 보장이라는 그 매력만으로 공직을 희구한다면 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 매력거리들이 시대상황에 따라 어떻게 변경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민간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좀 더 여러 조직 환경에서 경험을 하는 것이 유익할 수도 있으며, 또 우리사회가 선진사회가 될수록 고용시장의 유연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래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 하면 평생 일자리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호주 교육단체인 ‘호주청년재단(FYA)'에서는 현재의 학생들은 미래에 평생 동안 5개의 직업을 갖게 되고 17곳의 직장을 옮겨 다녀야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FYA의 부로린 니 부대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 때문에 일자리 시장은 무서운 속도로 변한다. 지금의 아이들은 평생 배우고 변화하는 게 당연하다는 마음가짐으로 미래설계를 해야 한다.”(중앙일보 ’달라지는 미래‘/2017년 10월 3일 14면 참조)
세상이 바뀌고 있다. 지금 사회문화체계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있다. 모든 분야의 사업들이 전과 같지 않다고들 한결 같이 하소연하는 것은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재에서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은 과거의 틀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 특히 조직인들은 현재를 보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달라질 불확실성의 미래설계를 위해 꾸준한 배움으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
■ 이인권 논설위원장 / 커리어컨설턴트
중앙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 문화사업부장과 경기문화재단 수석전문위원과 문예진흥실장을 거쳐 2003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CEO)를 역임하였다. ASEM ‘아시아-유럽 젊은 지도자회의(AEYLS)' 한국대표단, 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FACP) 국제이사 부회장,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부회장,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부회장, 국립중앙극장 운영심의위원, 예원예술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아트센터의 예술경영 리더십> <예술의 공연 매니지먼트> <문화예술 리더를 꿈꿔라> <경쟁의 지혜> <긍정으로 성공하라> 등 13권을 저술했으며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우수 모범 예술 거버넌스 지식경영을 통한 최다 보임으로 대한민국 최초 공식기록을 인증 받은 예술경영가이다. 한국공연예술경영인대상, 창조경영인대상, 대한민국 베스트 퍼스널 브랜드 인증, 2017 자랑스런 한국인 인물대상, 문화부장관상(5회)을 수상했으며 칼럼니스트, 문화커뮤니케이터, 긍정성공학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