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와이티엔(YTN) 신임 사장에 조준희 전 아이비케이기업은행장이 내정됐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첫째는, 수많은 언론인 출신들을 놔두고 언론사 경력이 전무한 사람을 방송사 사장에 앉히려는 발상의 당돌함이었다. 하기야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엔비시(NBC) 등도 바다 건너 영국에서 사장을 ‘수입’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언론 종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조 사장의 내정 경위를 놓고는 여러 관측이 분분하다.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제대로 일을 챙기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경제부처 쪽의 여권 실세 장관이 재빨리 나서서 조 사장을 밀었다는 이야기도 그럴듯하게 나돈다. 정확한 경위야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밀실 인사, 낙하산 인사가 분명한데도 와이티엔 내부의 반발이 예상만큼 격렬하지 않은 것은 두번째 놀라움이었다. 그만큼 언론계 출신 역대 사장들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사장 물망에 오르내리는 선배들에 대한 반감이 컸다는 뜻이다. 언론인들이 자신들의 밥그릇도 챙기지 못한 게 자업자득 아니냐고 다른 업종 사람들이 비꼬아도 할 말이 별로 없게 된 셈이다.
뒤이어 연합뉴스 사장이 선임됐는데 이번에는 다행히(?) 언론 문외한이 아니었다. 신임 박노황 사장은 연합뉴스에서 잔뼈가 굵은 기자 출신이다. 그러면 비언론인과 언론인 출신 중 과연 누가 더 사장을 잘할까? 두 사람을 바라보며 이런 호기심이 생겼다. 언론인의 자존심 수호 차원에서라도 기자 출신이 더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내심 있었다. 하지만 초반의 판세를 보니 예상이 영 빗나가고 있다. 와이티엔 사장은 해직자 문제 등에서 한계를 보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 반면에 연합뉴스 사장은 초장부터 주변의 우려와 실망을 자아내는 행보를 연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취임하자마자 국기게양식을 강행한 것부터 그렇다. 국기게양(강하)식이 ‘애국심 함양’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1989년 1월 폐지 당시 확인된 ‘국민적 합의’ 사항이었다. 실제로 연합뉴스 국기게양식 사진을 보니, 실례의 말씀이지만, 차렷 자세로 근엄하게 서 있는 간부들 얼굴 어디에서도 절절한 애국심은 전해져 오지 않았다. 기자들의 속성상 이런 형식적 행사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 동네의 공통적 기질인 점을 고려하면 강제동원식 애국행사의 황당함은 더욱 커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한 뒤 국기강하식을 두고 “애국심의 산물”이라고 말했다는 것도 연합뉴스의 ‘애국 코스프레’와 겹쳐져 다가온다. 이런 식의 ‘나라 사랑’이 결국은 ‘정권 사랑’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편집권 독립 보장을 위해 도입한 편집총국장 제도를 무력화시키는 것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길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방송 철학’이 없다는 언론 문외한 사장도 아직 그런 문제로 마찰을 빚지 않는데 기자로 잔뼈가 굵었다는 사람의 ‘언론 철학’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물음만은 던지고 싶다. 전임 경영진 임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는 소식도 그렇다. 다른 회사의 경영적 판단에 대해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고, 봐주기식 ‘온정주의’의 폐해도 인정하지만, 도에 넘치는 ‘비정주의’가 과연 조직의 앞날을 위해 바람직한 선택일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뇌리를 맴돈다.
며칠 전 몇몇 언론인들의 식사 자리에서 포스코의 경영 실패 문제가 화제에 올랐는데, 참석자 한 사람이 정준양 전 회장의 선임 자체가 잘못됐다며 이런 말을 했다. “유사 이래로 권력은 자격이 충분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을 놔두고 자격이 모자라는 사람을 중용해 왔다. 왜냐? 자격이 충분한 사람은 자신이 그 자리를 맡은 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위의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박장대소하며 일리 있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을 이렇게 한번 뒤집어 보면 어떨까. ‘권력의 마음에 들기 위해 오버하는 것은 자신의 자격 부족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이다.’ 직종 불문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신 분들이 한번쯤 음미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