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인생
누가 인생을 불공평하다고 하는가요? 저는 인생이 너무나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인생이 공평하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보다는 불공평하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로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 빈부의 격차가 왜 더 벌어지고 행복과 불행으로 왜 갈릴까요?
그러나 이상한 일은 처음에는 불공평한 조건들로 늘 피해의식을 갖고 살았는데 나이가 더 들수록 결국은 평등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빠삐용’은 아홉 번의 탈출 끝에 성공하여 그 소재를 갖고 영화로 만든 명화(名畵)입니다.
이 영화의 진면목(眞面目)은 감옥에 수감되어 구타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꿈속에서 저승의 심판자들에게 재판 받을 때 드러나지요. “전 억울합니다.” “그건 사실이다. 넌 살인하지 않았다.” “그럼 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 고생을 해야 합니까?” “너는 인간으로서 가장 중죄인 인생을 낭비한 죄다!” “그것이 살인보다 더 큰 유죄라고요?” 그는 잠에서 깨어나 다시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다시 살기로 결심합니다.
석가모니불의화신으로 추앙받았던 조선시대 중기의 고승 진묵대사(震默大師 : 1562~1633)는 많은 이적을 남기신 대 도인이었지요. 대사에게는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고, 누이동생이 낳은 외동아들은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조카가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복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스님은 7월 칠석날조카내외를 찾아가 단단히 일러주었습니다.
“얘들아, 오늘밤 자정까지 일곱 개의 밥상을 차리도록 해라. 내 특별히 칠성님들을 모셔다가 복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주마.” 진묵스님이 신통력을 지닌 대도인임을 아는 조카는 ‘삼촌이 잘 살게 해주리라’ 확신하고 열심히 손님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지요.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마당에다 자리를 펴고 일곱 개의 밥상을 차렸습니다. 자정이 되자 진묵스님이 일곱 분의 손님을 모시고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하나같이 거룩한 모습의 칠성님이 아니었습니다.
한 분은 째보요, 한 분은 곰보, 절름발이요, 곰배팔이요, 장님이요, 귀머거리들이었습니다. 거기에다 하나같이 눈가에는 눈곱이 잔뜩 붙어있고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것이었지요. ‘삼촌도 참, 어디서 저런 거지 영감들만 데리고 왔지? 쳇, 덕을 보기는 다 틀려버렸네’ 조카 내외는 기분이 크게 상하여 손님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쾅쾅 여닫고 바가지를 서로 부딪치고 깨면서 소란을 피웠습니다.
그러자 진묵스님의 권유로 밥상 앞에 앉았던 칠성님들은 하나, 둘 차례로 일어나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마지막 칠성님까지 일어서려 하는데, 진묵스님이 다가가 붙잡고 통사정을 합니다. “철없고 박복한 조카입니다. 저를 봐서 한 숟갈이라도 드십시오.” 일곱 번째 칠성은 진묵스님의 체면을 보아 밥 한술을 뜨고, 국 한 숟갈을 먹고 반찬 한 젓가락을 집어 드신 다음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때 진묵스님이 조카를 불러 호통을 쳤습니다. “에잇, 이 시원치 않은 놈! 어찌 너는 하는 짓마다 그 모양이냐? 내가 너희를 위해 칠성님들을 청하였는데, 손님들 앞에서 그런 패악을 부려 다 그냥 가시도록 만들어? 도무지 복 지을 인연조차 없다니 한심하구나.” 그리고 돌아서서 집을 나오다가 마지막 한 마디를 더 던졌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목성대군이 세 숟갈을 잡수셨기 때문에 앞으로 3년은 잘 살 수 있을게다.”
이튿날 조카는 장에 나갔다가 돼지 한 마리를 헐값에 사 왔는데, 이 돼지가 며칠 지나지 않아 새끼를 열두 마리나 낳았고, 몇 달이 지나자 집안에는 돼지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또 돼지들을 팔아 암소를 샀는데, 그 소가 송아지 두 마리를 한꺼번에 낳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진묵스님의 조카는 3년 동안 아주 부유하게 잘 살았지요.
그런데 만 3년째 되는 날, 돼지우리에서 불이 나더니, 불이 소외양간으로 옮겨 붙고 다시 안채로 옮겨 붙어, 모든 재산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3년의 복이 다하자 다시 박복하기 그지없는 거지 신세로 전락한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복을 지은 것이 있어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다소 전설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새겨볼 수 있습니다.
첫째, 복을 구하는 사람의 태도입니다.
복은 특별한 권능 자가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도 하느님도 그 어떠한 신도 무조건 복을 줄 수가 없지요. 이 복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입니다. 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갖추어져 있고, 또 정성을 다하면 저절로 다가오게 되어 있는 것이 복입니다.
둘째, 복진타락(福盡墮落)입니다.
모든 복에는 정해진 수명이 있습니다. 복이 다하면 기울기 마련인 것이지요. 요즈음 우리는 부자로 지내던 사람이 일순간에 파산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인연법에서 보면 부자로 살 연(緣)이 다하여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재물뿐만이 아닙니다. 명예도 권력도 수명도 인연이 다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모두가 인과응보입니다. 사치. 낭비. 거품. 정직하지 못한 삶,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선행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됩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인과응보의 원리 때문이지요. 인과응보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 까닭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뭔가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사는 사람은 전생과 이생에서 공덕을 많이 쌓은 사람입니다. 못 사는 사람은 복은 짓지 않고 복을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 복을 짓고 복 받을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 공평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공평한 인생은 내가 짓고 받는 인과의 이치를 굳게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 육신 물질로 계속 공덕을 쌓는 것이 아닐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0월 12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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