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여자, 어리석은 여자, 착한 여자 이야기
[뉴스프리존=박상봉 기자] 시집『무서운 여자』는 초설 김종필 시인의 세 번째 작품집이다. 이 시집에는 생활에서 우러나오고 속에서 깊이 삭여져 나오는 인간미와 서정의 깊이가 있다. 여기에 가정, 직장, 사회 안팎으로 부딪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애쓰고 추스르는 내면을 깊이 파고들면서 이를 응축해 낸 시편들을 엮었다.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오십 지천명(知天命)에 첫 시집을 낸 늦깎이 시인 김종필의 첫 번째 시집은 『어둔 밤에도 장승은 눕지 않는다』(북인, 2015)다. 이른 바 시인 자격증이라고 할 수 있는 등단 절차를 밟지 않고 시집을 바로 냈다. 이에 대해 시집 뒷부분에 덧붙인 시인의 말에 이런 견해를 밝혀놓았다.
“이제 용기를 내어 당신들에게 내가 묻는다. 등단을 해야 좋은 시를 쓸 수 있고, 발표를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아니다. 비록 좋은 시는 아닐지라도 누구나 시를 쓰고 발표할 수 있다. 이제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다”
정식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시가 좋아 시를 쓰고 있는 김종필 시인은 누구보다 가열차고 야무지게 시를 빚어왔다. 불과 3년만에 다시 두 번째 시집 『쇳밥』(한티재, 2018)을 내어놓았다.
김수상 시인은 “자신의 몸 근처에서 일어난 노동의 편린들이 시의 곳곳에 아프게 박혀있었다”며 『쇳밥』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 한 바 있는데 『쇳밥』이 “낮은 자들과 함께하며, 노동의 눈으로 대상을 더 깊게 들여다본” 시라면, 『무서운 여자』는 평생 그의 곁을 지켜준 아내에 대한 눈물의 헌사다.
아득한 사랑 말랑한 생각, 아내에 대한 눈물의 헌사!
술 마셨다고 눈 흘기지만 / 아침이면 콩나물 해장국과 분홍 입술 내미는 여자 // 먼 길을 떠나는 날에 / 언제 오느냐고 묻지도 않고 지갑을 채워 놓는 여자 // 사는 동안 잊지 않고 / 미역국을 끓여 주며 미워 죽겠다 호들갑 떠는 여자 // 아주 심심한 저물녘에 / 늙지 마요 타박하며 얼굴 주름 살살 닦아주는 여자 // 어쩌다 설거지해놓으면 / 정말 착해요 하며 아들인 양 엉덩이 토닥이는 여자 // 빈 통장인 줄 뻔히 아는데 / 아직은 정말 괜찮다 능청스럽게 거짓말하는 여자 // 눈물겹도록 슬픈 날에도 / 왜 그래요 묻기보다 어떤 식으로든 웃겨주는 여자 // --「무서운 여자」전문
알고보니 ‘무서운 여자’는 다름아닌 그의 아내다. ‘무서운 여자’는 또 ‘어리석은 여자’이고 ‘착한 여자’이고 ‘저린 나의 왼팔’이다. 아내가 많이 아픈가 보다. 아니 둘 다 아프다. 서로가 아픈 삶을 보듬어주며 “함께한 시간 만큼, 꽃피웠던 사랑”을 노래한 시인은 또 아내에 대한 가열한 사랑과 이웃을 사랑하는 소박한 마음으로 “바람, 햇살, 비, 눈, 꽃, 나무살아온 만큼의 존재”들과 자신의 지나온 삶을 차분하게 돌아본다.
『무서운 여자』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인 심장으로 살아온 ‘노동자 시인’의 섬세하고도 진정성 있는 실존적 고백을 담은 결실이다. 평등하지 않고 한쪽으로 많이 기운 세상을 ‘기울지 않는 사랑’으로 균형을 잡고자 애쓴 흔적이 뚜렷하다. 더불어 우리는 이 시집에 실린 “어떤 그리움을 향해 자유인으로 사는 법, 심장이 뛰는 대로 사는 법”을 독학으로 배운 한 사내의 간결한 자전(自轉)을 듣게 된다.
그는 고교 졸업 이후 10년 넘게 직업군인으로 복무하였고, 제대와 함께 방화문 공장에 들어가 지금까지 쇠를 만지는 노동자로 살고 있다. 말하자면 쇠판을 ‘펀칭 프레스’로 찍을 때마다 튕겨 나오는 쇳조각을 ‘쇳밥’이라고 하는데 그 ‘쇳밥’을 먹고 살았다.
지난 25일 도서출판 학이사 도서관에서 열린 출판 기념회 자리에서 누군가 우스게 소리로 “일은 안하고 페이스북만 한다”고 농을 걸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매일 너댓개 글을 ‘초설’이라는 필명을 간판으로 내건 자신의 페북에 끊임없이 올리며, 세상과 소통하는 페이스북 마니아다. 그러면서 투철한 직업의식으로 온몸을 던져 재난으로부터 이웃을 보호하고, 참된 세상의 문을 여닫는 일에 땀을 흘리고 있다.
이 시집을 말한다!
초설이 세 번째 내놓은 시집『무서운 여자』는 가정, 직장, 사회 안팎으로 부딪치는 여러 상황 속에서 사랑하고 미워하고, 애쓰고 추스르는 내면을 깊이 파고들면서 이를 응축해 낸 시편들이 많다. 소재 면에서는 첫 번째 시집에 가깝고, 내용에 따라 형식 변화를 자유롭게 시도한 게 눈에 띈다. 일정한 틀이 없다는 건 그 안의 주물도 제각기 다른 형상을 갖고 ‘세상에 처음 내놓은 말’처럼 설렘을 줄 개연성이 크다는 뜻도 된다. 실제 , 초설의 언어와 언어를 통해 그리는 풍경은 여느 시인의 그것보다 일상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면서도, 미묘한 생기와 긴장을 간직하고 있다. -이동훈(시인)
초설 시인은 글로 사람 마음을 달구어 벼림질 하는 이 시대 불매쟁이다. 정 위에 부조리와 편견에 막힌 현실을 얹어놓고 메로 사정없이 두들기고 담금질 하여 뜨겁거나 날카롭거나 부드러운 사랑과 그리움의 시를 만들어 냈다. 그런 불매쟁이가 어떤 벼림질을 했는지, 그를 살게 하는 ‘무서운 여자’를 만나고 싶다. -김준호(국악인)
김종필 시인은 누구인가
김종필 시인은 1965년 대구 조야동 복숭아밭에서 태어났다. 대구 삼영초등학교, 계성중학교를 거쳐 1984년 2월 대구공업고등학교 55회, 옥저문학동인회 8대로 졸업했다. 같은 해 2월 육군 하사관으로 입대하여 1995년 국군보안사에서 잡힌 간첩 구경만 하다가 전역했다. 현재 대구에서 세상으로 통하는 모든 문을 만드는 노동자로 살고 있다. 시집으로 『어둔 밤에도 장승은 눕지 않는다』『쇳밥』등이 있다. 초설은 김종필 시인의 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