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한 모텔에서 A양(14)이 숨진 채로 발견된 지난달 26일. 누리꾼 반응은 대체로 '분노'였습니다. 10대 소녀와 성관계 후 목을 졸라 살해한 김모씨(38)를 향해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10일 후. 김씨가 "조건만남에 성의가 없었다"며 살해 동기까지 언급하는 등 사건도 일단락되는 듯합니다. 그러나 "바람 쐬고 오겠다"던 14세 소녀를 이렇게 보내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습니다.
A양의 죽음 뒤에는 가출청소년을 이용해 성매매를 알선하는 조직이 있었습니다. 김모씨(27) 등 3명은 총책과 여성 보호책, 운전책으로 역할 분담했습니다. 이들은 사건 당일 A양이 숨지기 직전까지도 함께 PC방에 머물다 10대 소녀의 모텔행을 지켜봅니다. '1시간 13만원'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같이 A양이 성매매에 이용된 배경에는 조건만남으로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려는 남성들이 있습니다. A양은 김씨와 성매매 관계 직전에도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12명에 달하는 남성들과 조건만남에 대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11월말 가출한 A양은 지난해 12월부터 다수의 남성들과의 조건만남에 동원된 것입니다.
범행 장소로 사용된 모텔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해당 모텔은 A양에 대한 미성년자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곳만이 아닙니다. 머니투데이가 지난달 31일 서울 서울대입구역 인근과 신촌, 강남 일대 모텔 17곳을 취재한 결과 입실 시 미성년자 여부를 확인하는 곳은 단 1곳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대 중반만 돼도 무조건 신분증 검사한다"는 한 모텔 업주 말과 달리 실제로 신분증을 확인하는 업소는 없었습니다.
또 범죄에 사용된 마취제 클로로포름도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실제로 김씨는 지난해 10월 인터넷에서 클로로포름을 구입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김씨는 클로로포름이 담긴 음료수병 1개와 거즈 2~3장을 위생팩에 넣고 다니면서 여성들을 기절시킨 뒤 돈을 챙겨 달아나는 수법을 썼습니다. 김씨는 A양 외에도 서초구와 성북구 모텔에서도 각각 B씨(23·여)와 C씨(34·여)에 대해 유사 범행을 저지릅니다.
가출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관리에도 구멍이 드러났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 18세 미만 아동·청소년 신고건수는 3만8695건으로 이 가운데 375명이 보호자에 인계되지 않은 채 미발견 처리되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치매환자를 제외하더라도 255명의 아이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쉼터는 전국 10여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출청소년은 문제아"라는 사회적 시선 속에 아이들은 더욱 어두운 곳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한 듯 아동·청소년 성범죄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3년 20세 이하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는 모두 8136건으로 2011년 7064건, 2012년 7616건과 비교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라면 조만간 '아동청소년 범죄 1만 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건발생 10일 후. 김씨는 강도살인죄가 적용되는 등 중형을 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온라인 채팅에선 조건만남 대화가 오가고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크로로포름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며 가출 청소년들은 거리를 떠돌며 모텔 등을 전전하고 있습니다. 분노를 거두고 냉정한 눈으로 사건을 돌아보는 일. 또 다른 10대 소녀의 죽음을 막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