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프리존 시론=이인권]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컨설턴트인 피터 코닝은 150년간 인류 사회의 근간이 되어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공정사회로 대체해야 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공정사회란 무엇인가’에서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규범 곧 인간의 기본 욕구와 관련된 평등성, 공로에 대한 완전하고도 공정한 인정, 비례적인 상호주의 사이의 균형을 강조했다.
이러한 균형점이 결여되어 있다 보니 현실은 불공정사회가 되어 있다. 달리 말해 사회문화체계는 혁신되어가는 데도 공정, 평등, 정의와 같은 사회 공동선을 위한 본질적 가치는 좀처럼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요구는 인류 역사와 함께 비롯된다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찍이 철학의 선각자들은 공정사회의 정립에 대한 통찰을 보여줬다. 구체적으로 플라톤은 가진 것이 가장 적은 사회가 이상적으로 공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리고 사회가 물질적으로 부유해지고 정치세력이 부각되면서 불균형과 불평등에 의해 사회적 갈등과 대립은 시작되고 공정은 희박해진다고 했다. 그의 논리에 대입해보면 한국사회는 단기간에 압축 성장을 이루면서 불공정사회가 배태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진영을 떠나 역대 어느 정권이나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지만 여전히 구현되지 못하는 영구불변의 국민적 염원이 되어 있다. 과학기술은 시대 따라 첨단으로 끊임없이 발전되어 오지만 공정사회의 가치만큼은 한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1963년 스테이시 아담스가 ‘공정성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은 한마디로 동등한 노력을 했는데 상대적인 기준에서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을 때 불공정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곧 개인의 투입과 결과의 비율을 다른 사람의 것과 비교해서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되면 이는 긴장이나 불만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그런 긴장은 사회적 갈등이나 반목으로 비화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10년 전, 연이어 2014년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됐었던 적이 있다. 이는 불공평이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공정과 공평을 갈구하는 국민들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공정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고,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하며,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는 사회’라고 정의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모든 부문에서 공정한 방향성을 띠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국사회를 혼란케 하고 있는 이른바 ‘부동산 블루’는 정상적인 사회가 보여주는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다. 코로나19로 경제가 극심하게 침체돼 민생이 난국에 처한 상황임에도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있는 것은 공정사회의 대척점에 있는 사회적 병폐다. 게다가 사회를 이끌어가는 세도가들이 그 중심에 있다니 더더욱 그렇다.
분명 공정사회는 모든 국민이 바라는 사회 공동체 가치다. 그렇지만 다양한 특권에 의해 공정성이 상실된 사회가 되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그렇기에 한국사회의 왜곡되고 굴곡된 세상(世相)을 바르게 잡아야 하는 절박감이 여기에 있다. 곧 부와 권력에 의해 인간의 가치가 재단되는 물질만능의 현상을 척결할 때 참다운 공정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공정사회란 단순히 물량적인 수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공정성과 평등성이 담보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요소들은 기회 불이익의 철폐, 사회로 부터의 소외 해소, 사회경제적 격차의 해결, 합당한 삶의 가치 향유, 사회적 소통과 포용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없이 공정을 이야기 하지만 그것은 수사(修辭)가 아닌 행동으로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사회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공정사회지수를 높여가야 된다. 지금처럼 특권의식, 패권주의, 승자독식이 팽배하는 불공정한 세태에서 공정성과 사회 정의는 반드시 이룩해야할 지상 과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