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양손에 아들 사진을 쥐고 있었다. 까까머리에 군복을 입은 앳된 얼굴에는 영정사진임을 말해주는 검은 띠가 둘려 있었다. 마주보고 앉은 재판부의 시선이 닿을 곳에서 아들 고 윤 아무개 일병(21)의 사진을 품에 안고 있었다. 윤 일병의 어머니를 비롯한 아버지와 누나 두 명은 재판이 있을 때면 늘 경기도 용인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의 가장 앞자리를 채웠다. 선고가 있던 10월30일도 마찬가지였다. 멍이 든 윤 일병의 주검 사진까지 손에 든 유족들은 오후 2시30분 피고인 6명이 법정에 들어서자 소리를 질렀다. '살인자' '너희들은 살아 있으니까 좋냐!' 피고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북받치는 감정에 매번 내지르게 되는 고함이 멈추지 않았다.
[연합통신넷= 김현태, 임병용] 군복을 입은 윤 일병 또래의 청년들이 고개를 숙이고 피고인석에 앉았다. 결심 공판까지 자리를 채웠던 군 검찰관 3명은 보이지 않았다. 방청석에는 100여 명이 앉았다. 군대에 아들을 보낸 중년 여성이 많았다. 난생처음 군사법원에 와봤다는 일반 시민이 대다수였다.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도 법정을 취재했다.
곧이어 법복을 차려입은 재판부가 등장했다. 주심판사인 김송이 소령이 양형 이유를 먼저 읽었다. 살인죄 등으로 기소되어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주범 이 아무개 병장(26)과 공범 하 아무개 병장(22), 이 아무개 상병(21), 지 아무개 상병(21)에 대한 살인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살인의 미필적 고의에 대한 합리적 의심의 정황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인정할 만한 충분한 증명이 어렵다.' 재판부는 군 검찰이 살인의 고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살인죄에 버금가는 중형을 선고했다. 군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예비적 혐의로 올려둔 상해치사죄를 인정했다. 죄질이 불량하고, 대체 불가능한 생명을 침해했으며, 유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줬다는 이유였다. 이 병장에게는 징역 45년, 하 병장은 징역 30년, 이 상병과 지 상병은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특히 이 병장은 2010년 유기징역형이 최대 50년으로 늘어난 후 이뤄진 선고에서 최고형을 받았다. 심판관인 문성철 준장이 징역형을 읊자 지 상병의 온몸이 계속해서 떨렸다.
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군 간부 유 아무개 하사(23)는 군 검찰의 구형보다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았다. 구형은 징역 10년이었지만 선고는 징역 15년이 나왔다. 간부로서 폭행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러지 못해 사망 사건까지 낳은 책임을 엄히 물었다. 폭행·직무유기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아무개 일병(21)만 유일하게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징역 3월에 집행유예 6월이 나온 이 일병 또한 윤 일병이 의무대에 전입하기 전까지 부대 내 가장 말단으로 폭행 피해자(<시사IN> 제361호 '그 내무반은 지옥이었다' 참조)였던 점 등이 감안되었다.
선고가 끝나자 재판정으로 흙이 솟아올랐다. 윤 일병의 매형이 미리 준비해온 흙을 담은 종이컵을 법정을 향해 던졌지만 법정을 지키던 군인들에 의해 제지당해, 흙은 방청석에 흩뿌려졌다. 중형이 선고되긴 했지만 살인죄가 무죄로 판단된 탓에 유족들은 1심 결과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법정을 나온 윤 일병 어머니는 '그래도 조금 기대를 했는데…. 이 나라를 떠날래요. 여기서 안 살아요. 항소하면 뭐해요. 거기서 또 깎아줄 텐데'라며 울부짖었다.
'부실'과 '분노' 사이에서 갈팡질팡한 재판부
윤 일병 유족의 법률대리인인 박상혁 변호사는 군 검찰이 공소 유지에 성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살인죄 혐의를 중간에 첨가했지만 그에 걸맞은 고의성 입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었다. 재판에 참석했던 또 다른 변호사도 '이번 재판의 살인죄 무죄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군 검찰은 구형만 사형이라고 세게 했지, 공판 과정을 통해서 살인을 입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윤 일병이 숨지기 직전에 이 병장이 마지막 가격을 했던 게 결정적으로 보이는데도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캐묻지 못했다. 오히려 부주심판사가 더 신문을 잘했다'라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려 공소장 변경만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재판을 지켜본 변호사들이 꼽은, 살인 혐의 입증을 위해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할 상황은 4월6일 사건 당일 오후 4시 무렵이다. 윤 일병은 전날부터 계속해서 이어진 구타에 수액을 맞기까지 했다. 그러다 분대원들과 같이 냉동만두 등을 먹던 중 이 병장에게 다시 얻어맞기 시작했다. 인상 깊은 이야기를 해보라는 질문에 이 병장의 아버지가 깡패였다는 게 기억에 남는다는 대답을 한 이후부터 폭행의 강도는 절정을 향했다. 하 병장은 망을 봤고, 이 상병과 지 상병도 폭행에 가담했다. 계속 맞다 목이 마르다는 윤 일병에게 물을 마시러 60초 안에 다녀오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이를 지키지 못한다며 다시 때리자 윤 일병은 오줌을 쌌다고 말하면서 쓰러졌다.
그럼에도 이 병장은 꾀병을 부린다며 배를 찼고 윤 일병은 의식을 잃게 된다. 당시 이 병장이 윤 일병의 상태를 어떻게 인식했는지, 분위기와 말투·행동은 어떠했는지 면밀히 살폈어야 했지만, 10월8일 이뤄진 피고인 네 명에 대한 신문에서 이 부분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게 재판을 지켜본 법조인들의 중론이다.
3군사령부 보통검찰부는 재판 결과가 나오자 즉시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군 검찰은 재판부가 사실을 오인하고, 양형 또한 부당하게 줬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에서는 사형과 무기징역이 내려지는 살인죄를 유죄로 인정받아 더욱 강한 처벌을 이끌어내겠다는 게 군 검찰의 설명이다.
피고인 쪽도 양형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하 병장 쪽 김정민 변호사는 '군사법원이 살인죄를 인정하자니 수사 부실을 감출 수 없고 낮은 형을 선고하자니 국민들의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던 탓에 양형 기준에 현저하게 벗어나는 중형을 선고했다'라고 반발했다.
게다가 사건 초기 수사를 담당했던 28사단 검찰부의 부실 수사 의혹도 밝히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일병 사건은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4월 군은 냉동음식을 먹다가 병사가 숨졌다고 발표했다. 지난 8월5일 결심 공판을 앞두고 윤 일병이 구타당한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군 헌병과 군 검찰의 수사 기록이 공개되면서 공분을 샀다. 사건이 알려진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가해자 변호인 중 한 명의 공이 컸다. 공범인 하 아무개 병장의 변호를 맡은 김정민 변호사(44)가 주인공이다. 김 변호사는 사건의 실체를 군 인권센터에 알렸다. 김 변호사는 지난 5월 첫 공판부터 주범인 이 아무개 병장을 살인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 검찰은 결국 지난 9월 김 변호사의 주장대로 살인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했다. 군 법무관 출신인 김 변호사는 이번 사건을 통해 군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한다. 선고를 이틀 앞두고 있던 10월28일 법무법인 ‘열린사람들’에서 그를 만났다.
이번 사건의 숨은 조력자 같다.
사인 규명에 앞장섰던 건 맞지만, 이 사건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건 국민이다. 국민적 공분이 꼼짝 않던 군을 움직였다. 이 사건이 공론화되기 전에 유족도 아들의 사인을 파헤치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 하지만 군 검찰은 피해자 가족에게 수사 기록을 보여주지 않았다. 내가 법정에서 윤 일병이 어떻게 맞았고 숨졌는지 말하자 몸을 떨며 놀랐다. 수사기관이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던 거다. 진실을 알아야 할 사람에게 전해지게 한 것뿐이다.
그래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변호인인데….
의뢰인인 하 병장 아버지의 결심이 없었으면 하지 못할 일이었다. 기록을 본 하 병장 아버지도 진실을 드러내서 각자의 행동에 맞는 죗값을 받는 게 사람 된 도리라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2심에서는 사건을 안 맡는 게 나을 거 같다. 나 때문에 하 병장이 군 당국의 미움을 받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 병장은 윤 일병이 숨진 사건 당일 망을 봤다. 그런데도 살인죄로 기소되어 군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잘못이 없다는 게 아니라, 한 일에 비해 너무 과한 처벌을 받았다는 생각을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1심 재판이 끝났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지난 9월 공소장이 변경되어 사인도 질식사에서 좌멸증후군 및 속발성 쇼크사로 바뀌었다. 수사가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국방부 대변인실이 브리핑하면서 사인 변경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초 질식사로 부검감정서에 기재한 부검의를 다시 한번 증인으로 세워보자고 공판 내내 주장했는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인 변경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원래 이런 건 검찰이 나서서 수사해야 할 상황인데, 변호사인 내가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누군가는 내가 검찰 같다고 하더라(웃음). 군사법원이 그 이유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하다. 필요하다면 구인영장을 발부해서라도 불러야 한다. 결국 군 당국이 초기 수사 실패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어물쩍 넘어간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왜 3군사령부 군사법원과 군 검찰은 28사단 군 검찰의 실패를 따져 묻지 못하게 할까. 같은 식구이기 때문이다. 군 검찰은 사단에 소속돼 있어서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부검감정서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밝히고, 28사단 군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했는지 점검해야 다시는 이런 경우가 안 나온다. 제2의 윤 일병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가해자 처벌만큼이나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도 중요하다. 군 당국이 다시는 사건을 은폐하고 왜곡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