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O Henry : 1862~1910)’를 잘 아시지요? 본명이 ‘윌리엄 시드니 포터(영어: William Sydney Porter)로 작가이자 소설가입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마지막 잎 새>, < 크리스마스 선물> 등이 있습니다. 10년 남짓한 작가 생활 동안 300여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고 하네요.
이 ‘오 헨리’의 소설 <현자(賢者)의 선물>에 다음과 같이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의 얘기가 나옵니다. ‘돈 리’라는 사람이 추운 겨울에 직업을 잃었습니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는 굶주림에 지쳐 할 수 없이 구걸에 나섰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고급 식당 앞에 서서 한 쌍의 부부에게 동정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습니다. 그때 함께 가던 부인이 남편이 퉁명스럽게 거절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추위에 떠는 사람을 밖에 두고 어떻게 우리만 들어가 식사를 할 수 있겠느냐”며 1달러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이 1달러로 음식을 사 드시고 용기를 잃지 마세요. 그리고 당신이 직업을 곧 구하도록 기도 할게요” 라고 말했습니다. ‘돈 리’는 “부인! 고맙습니다. 부인은 저에게 새 희망을 주셨습니다.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은 “당신도 복 많이 받고 좋은 일 많이 하세요.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과 새 희망을 주는 데 노력하세요.” 라고 다정히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돈 리’는 우선 50센트로 요기부터 하고 50센트를 남겼습니다. 그때 마침 한 노인이 부러운 듯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돈 리는 남은 돈 50센트를 꺼내 빵을 사서 노인에게 주었습니다. 이 노인은 빵을 조금 떼어 먹다가 남은 빵조각을 종이로 쌓습니다. 돈 리가 “내일 먹으려고 합니까?” 하고 묻자 이 노인은 “아닙니다. 저 길에서 신문을 파는 아이에게 주려고 합니다.” 노인이 소년에게 다가가 빵을 건네자 이 아이는 좋아하며 빵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길 잃은 강아지 한 마리가 빵 냄새를 맡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습니다. 이 소년은 조금 남은 빵 부스러기를 개한테 주었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기쁜 마음으로 신문을 팔러 뛰어갔고, 노인도 일감을 찾아 떠나갔습니다.
돈 리는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이렇게 있을 순 없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강아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돈 리는 길 잃은 개의 목걸이에 적힌 주소를 보고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주인은 매우 고마워하며 10달러를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당신같이 양심적인 사람을 내 사무실에 고용하고 싶소. 내일 나를 찾아오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돈 리도 안정된 직장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나가는 한 여인의 1달러가 나누어지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나는 가진 게 없어서, 남에게 나눌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돈 리는 구걸하는 처지에서도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눔으로써 하늘이 주는 기쁨과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굶주리는 사람, 가난한 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무엇이든지 가지고만 있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나눌 때 소중한 가치를 발휘합니다. 나눔은 행복의 시작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나누어 줄때 느끼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귀한 나눔은 사랑입니다. 주는 자, 나누는 자는 진리께서 더욱 더 큰 것으로 보상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머무는 봐 없이 마음을 내라’ 하셨습니다. 베풀고도 베푼다는 마음 없이 베풀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머물지 않는 마음이란 애착과 집착이 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의 흔적이 남고, 좋아하면 좋아하는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선물을 하면 선물의 흔적이 남고 욕심을 부리면 욕심의 흔적이 남습니다. 그 남는 흔적으로 인해 섭섭함이 생기고 밉고 싫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 주었다는 그 마음을 상(相)이라고 합니다. 그 상 때문에 인생이 늘 괴로운 것입니다. 은혜 입은 사람이 몰라주면 섭섭한 마음이 생기고 그 마음 때문에 또 상극의 인연으로 화하는 것이지요.
상이 없는 마음이란 새가 허공을 날아도 흔적이 없듯이 사랑하고 베푸는 일에 흔적 없이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올바른 보시인 것입니다.
금은보화를 태산같이 가져도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면 그는 부자가 아닙니다. 흔적 없이 사랑하고 바람 없이 베푸는 관계가 바른 사랑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나누면서 마음을 허공과 같이 비울 줄 알고, 마음을 허공과 같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덕화만발의 덕인이 아닌지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8월 26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