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채성은 애춘을 빈정대듯 물었다.
“왜요? 예쁜 나의 모습에 자신감이 생기고 주변의 남자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더군요. 남자가 당신 하난 줄 아세요?”
채성은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키며 괴로운 듯 소리쳤다.
“그만해! 그런 유치하고… 미친 소리!”
애춘은 그만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전 피곤해요. 씻고 자야겠어요.”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고 애춘의 등 뒤에서 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튼 이번 달까지 결정하도록 해요. 계속 이런 상태로 있을 순 없고 이혼을 하든지 아니면 회복할 것인지….”
채성은 싸늘하게 돌아서서 나갔다. 술이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았다. 정말 자신이 하기 어려운 말을 했는데 그녀의 반응에 자신이 없어지고 허탈해졌다. 애춘은 피곤해 욕실로 들어갔다. 배수구를 막고 탕 속에 더운물을 틀었다.
“이혼할 것인가, 회복할 것인가?”
채성의 말이 귓가에 쟁쟁거렸다. 거울 앞에선 애춘은 자신의 나체를 바라보았다. 모처럼 세밀하게 얼굴도 살펴보았다. 사십대 중반인데 피부가 탄력을 잃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몸의 여기저기가 수술자국으로 부자연스러웠다. 방망이로 두드려서 이지러진 듯했다. 자신의 옛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 내 모습이 어디로 갔지?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어졌어!’
유방 확대수술을 한 자국이 지금도 푸른 핏줄을 타고 엿보였다. 지방제거 수술을 한 아랫배는 울퉁불퉁하니 더욱 흉측해 보였다. 자신이 이 부분들을 성형한 것은 전문의와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황혜란의 멋진 모습에 현혹돼 그녀를 모델로 도려내고 잘라낼 것 자르고 붙이고 했지만 나체는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얼굴 성형은 외부로 노출되어 남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지만 이 부분들은 감추어져 타인들이 몰라보아 다행으로 여겼다.
체중은 결혼할 때에는 포동포동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알콜과 과민성, 신경증, 불면증 등으로 매우 말랐다. 살이 빠지니까 지방 제거 수술한 부분이 바람 빠진 풍선의 모양으로 유방과 함께 쭈그러진 모습으로 더욱 흉측해 보였다. 황혜란을 모델로 한 육체의 성형은 자신을 더 망가뜨리고 말았다. 아! 늙은 창녀의 모습처럼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수술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내가 미쳤어.’
자신의 흉측한 나체를 바라보니 괴롭고도 깊은 절망이 밀려왔다.
“아…, 내가 왜… 이렇게… 무엇 때문에 흐흑흑….”
목욕탕에는 어느 덧 증기로 가득 찼다. 더운물이 목에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애춘은 푹 잠긴 자신의 육체를 쭉 펴면서 피로한 근육을 풀기 시작하였으나 마음속에는 분노로 들끓었다.
‘자식, 못난 자식! 저는 얼마나 잘 났어! 애정을 돈으로 팔아버린 파렴치한 자식이! 예전의 나의 모습이 보고 싶다고? 그럼 왜 예전의 나에겐 그렇게 냉담했지? 모성애가 부족한 여인이라구? 그럼 혜란과 결혼은 왜 안하고 이제 와서 엉뚱한 소리를 해. 다 망가진 나의 모습을 희롱하고 싶었나…?’
뜨거운 증기가 물방울이 되어 천장에서 뚝뚝 떨어졌다. 정확히 그녀의 정수리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기분 나쁘게 채성의 손바닥 같이 여겨졌다.
뚝딱 철썩… 철썩…
‘나의 심장을 때린 남자….’
몽롱한 증기 속에서 증오감과 인생의 실패감이 싸늘하게 그녀의 심장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애춘은 절망과 함께 울음이 복받쳤다.
“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구나! 흑흑흑….”
절규하면서 그녀는 욕탕의 몽롱한 증기 속에 떠 있었다. 수증기 속에는 자신의 방탕한 삶이 영화필름처럼 스쳤다. 남편의 냉담함과 애정결핍 속에서 직장동료의 남자들에게 애정을 구하는 자신의 가련한 모습이 보였다. 그들에게 술과 호화로운 음식을 제공하면서 남성의 기운을 마음껏 흡입했던 그녀였다. 남자들의 사랑을 구하기 위하여 화려하게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여자였다. 모든 남성에게 여왕이고 싶어 하는 애증의 도착증이었다. 콧대를 세우고 턱 선을 깎아 성형에 자신의 마지막 보루인 양 집착했다. 그러나 더 깊은 허무감과 공허감이 가슴 속으로 밀려왔다. 그녀는 술에 취하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녀 간의 내밀한 부분까지 적나라하게 지껄여댔다.
“아! 난 외로운 여자야! 남편은 있으나 마나야. 밤 생활이 외로워서 말이야. 그가 날 쓰다듬고 애무를 해준다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왜 허둥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