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이렴
최근 한국당 윤리위원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서청원 · 최경환 의원에 대해 출당 징계를 의결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서의원이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거론하며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양상을 보며 고위공직자들의 청렴(淸廉)에 대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공직자는 사업가나 일반인과 다른 가치관과 인생관이 요구됩니다. '사업'은 사익을 추구하지만 ‘공직’은 공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공직자의 청렴은 공인의 본래 책무이자 의무입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 된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 김영란 법이 시행 된지 만 1년 만에 우리 사회에서 촌지와 접대가 많이 없어져, 청렴사회를 향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청탁금지법 인식조사 결과’에서 일반 국민은 89.2%가 찬성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대상기관인 공무원과 유관단체 임직원은 각각 95%의 찬성률을 보인 것입니다.
이를 보며 다산 정약용의 ‘지자이렴(知者利廉)’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목민심서(牧民心書)》에 나오는 이 말은 ‘현명한 사람은 청렴이 궁극적으로 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뇌물을 받지 않는다.’라는 뜻입니다.
원문을 보면「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염결(廉潔) 즉, ‘청렴이란 목민관의 기본 임무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지요.
다산은 청렴한 사람은 청렴을 편안히 여기고, 지혜로운 사람은 청렴을 이롭게 여긴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로 높은 지위에 오르고, 큰 권력을 휘두를 지위에 오르고 싶은 욕심쟁이는 청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높은 수준의 공직윤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청렴이 궁극적으로 이롭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지자이렴’을 보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래 전에 국무총리를 지낸 고건(高健 : 1938~)님이십니다. ‘지자이렴’에 대한 고건 전 총리의 말씀을 요약 정리해 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하지만 윗물이 맑다고 해서 아랫물이 반드시 맑은 것은 아니다. 윗물이 맑은 것은 아랫물이 맑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공직자들에게 ‘청렴 하라!’고 사명감을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다산 정약용의《목민심서》의 ‘지자이렴’을 찾아냈다.
나는 오랜 공직생활 동안 ‘지자이렴’을 수칙으로 삼아왔다. 다산은 ‘재물보다 왜 청렴함이 이롭다고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다.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려고 한다.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짧기 때문이다.’
난 공직생활을 하며 청렴했다기보다 이렴(利廉)했다. 서울시 공직자에게도 ‘지자이렴’을 강조했다. 그리고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인사를 했다. 부패한 공직자는 백벌백계(百罰百戒)했다. 일벌백계(一罰百戒)가 아니다. 과거엔 일벌백계가 관행이었다. 처벌받은 사람은 ‘아, 나만 운이 나빠서 걸렸다’는 인식을 갖는다. 처벌을 해도 큰 효과가 없었다.
부정을 저지르면 시기가 이를 수도, 늦을 수도 있지만 언젠가 반드시 적발된다. 인사도 부정부패를 막는 데 중요한 요소다. 물이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지금도 우리 사회엔 망국적인 부패가 만연해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 중심엔 파워 엘리트들의 부패 커넥션이 자리 잡고 있다. 국회의원, 로펌과 장관직, 금융 감독기관과 민간 금융사, 전관예우 등의 부패 커넥션부터 차단해야 한다. 단호한 의지와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 다산의 ‘지자이렴’ 중에 ‘육렴(六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목민관(牧民官)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려면 여섯 가지의 ‘염(廉)’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첫째, 재물에 청렴 하는 것입니다.
즉 일체의 뇌물을 받지 말고 청백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색(色)에 청렴 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 자기 남편 아니고는 거들떠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직위(職位)에 청렴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이나 권한의 범위에서만 공무를 집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넷째, 청렴은 밝음을 낳는 것입니다.
청렴해야만 투명한 공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청렴은 위엄을 낳는 것입니다.
청렴해야 공직자로서의 위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째, 청렴은 강직한 성품을 기릅니다.
청렴해야만 공직자로서 강직한 성품으로 공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여섯 가지의 ‘염’을 실행하면 누구든지 훌륭한 청백리가 될 수 있고, 큰 업적을 남기는 공직자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은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예전부터 도덕성을 스스로 폐기처분해 버린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특히 높은 지위를 갖고 있거나 얻고자 하는 인물은 합당한 ‘능력’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에 앞서 요구되는 덕목이 ‘도덕성’이지요. 무엇보다 깨끗하고 청렴한 인물에 대한 사회적 격려와 인정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부정과 비리가 없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대우를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도 분명히 생기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0월 25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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