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문맹
지난 한글날, 성균관대 전광진 교수님과 ‘조선 닷컴(chosun.com)’의「漢字 알고 ‘한글 전용’ 해야지, 모르고 하면 맹탕… ‘현대판 文盲 확산」이라는 인터뷰기사에 많은 공감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아야 될 것 같아 이를 요약 정리해 봅니다.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의 전공(專攻)은 중국어입니다. 하지만 전 교수는 한글 세계화 관련 논문과 ‘우리말 한자어 속뜻사전’으로 더 알려져 있는 분입니다, 사실 저도 거의 매일 <덕화만발>을 쓰면서 알듯 모를 듯한 단어는 꼭 괄호 안에 한문을 병기(倂記)하고 있습니다. 저만 절실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생각해 보시지요.
<漢字 알고 ‘한글 전용’ 해야지, 모르고 하면 맹탕… ‘현대판 文盲' 확산’>
【-우리 사회에서 ‘漢字’ 얘기하면 시대착오적 수구주의자로 여겨집니다. 지식 전달과 수용의 영역인데 세대 · 이념 논쟁처럼 변질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포장지만 아는 사람과 속까지 아는 사람 중 어느 쪽이 지력(知力)이 더 뛰어나겠습니까? ‘한글날’에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한글 전용(專用)으로 ‘현대판 문맹(文盲)’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한자를 알고 한글 전용을 하면 괜찮은데, 모르고 하면 맹탕이 됩니다. 무식한 사람이 더 무식해집니다.” “한글 전용을 하면 읽기는 쉽습니다. 읽고는 단어의 뜻을 대충 짐작해버립니다. 사실은 그 뜻을 모르는 게 대부분인데, 안다고 착각하고 지나가는 겁니다. 이게 한글 전용의 폐해입니다.”
-한글 전용과 한자 혼용(混用)을 두고 70년간 대립해왔습니다. 한글 전용은 이미 대세이고 되돌릴 수 없다고 봅니다. 더 이상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일지 모릅니다.
“1948년 미 군정청 훈령이 한글 전용의 발단이 됐습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저도 느낍니다. 하지만 한글 전용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정확히 따져보지 않습니다. 우리말의 70%가 한자어로 되어 있습니다. 의미 있는 알맹이는 거의 모두 한자어입니다. 한글 전용은 한자어나 외래어라 하더라도 24개 한글 자모(子母)로만 표기하는 방식입니다. 속(내용)이 무엇이든 한글로 포장하자는 것입니다.”
―한글 전용으로 문맹률은 거의 제로가 됐지 않습니까?
“세종대왕은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 있어도 자신의 뜻을 글로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날로 쓰기에 편리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종의 이런 이상(理想)은 이제 실현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글 전용으로 전반적인 ‘지력하락(知力下落)’ ‘지식의 하향평준화’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지력하락’으로 단정하는 게 맞을까요?
“글을 읽을 줄만 알지, 독해력과 어휘력, 이해력, 사고력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한 학생이 ‘교수님 새해를 맞이하여 명복을 빕니다.’라고 연하장을 보내왔습니다. 어떤 학생은 ‘우리 아버지는 향년 64세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사용하는 겁니다. 한자어가 암호(暗號)처럼 된 것이지요.”
―조금 과장된 사례 같군요.
“제가 초 · 중 · 고교생을 대상으로 애국가 1절에 나오는 한자어 10개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조사를 해봤습니다. 평균 30~40점밖에 안 나왔습니다. ‘동해’는 동쪽에서 뜨는 해, ‘백두산’은 백 개의 산, ‘삼천리’는 자전거 상표로 알고 있습니다. 한글은 읽기는 쉽지만 뜻을 알게 하지 못합니다. ‘눈 뜬 소경’ 격입니다. 이런 사례는 학생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전체 문장의 맥락에서 단어의 뜻을 통상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문장 속에서 뜻을 알게 되는 게 ‘문맥접근법’입니다. 이는 밥을 꼭꼭 씹지 않고 그냥 삼켜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소화불능이 됩니다. 가령 기자들은 의례적으로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는 식의 사건 보도를 합니다. 보도는 그렇게 하지만, ‘전치’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기자나 독자들도 잘 모릅니다. ‘완전할 전, 다스릴 치(全治)’라는 한자를 알면 ‘아 그렇구나!’ 합니다. 이게 ‘단어형태분석법’입니다. 단어에서부터 분석적 사고를 하게 되지요.”
―중국어 전공 교수가 왜 사전 작업까지 하게 됐습니까?
“제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수학교과서에 나오는 ‘등호’ ‘타원’ 같은 용어를 질문해왔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둘 이상의 수나 식이 서로 같다는 것을 나타내는 기호’ ‘평면 위의 두 정점으로부터의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을 이루는 위치’라고 나옵니다. 그런 정의가 아이에게 이해될 리 없지요. ‘등호(等號)는 같을 등, 표지 호이니 같음을 나타내는 표지다’ ‘타원(楕圓)은 길쭉할 타, 둥글 원이니 길쭉한 원이다.’ 라고 설명하면 더 잘 알아들었습니다.”
―결국 한자를 상용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인가요?
“옛날처럼 한자를 쓸 줄 아는 것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 한자로 변환되니까요. 이제는 한자 형태를 보고 뜻이 무엇인지 알면 됩니다. 고교 졸업까지 2000자(字)만 배우면, 한자끼리 결합으로 400만개 단어를 알 수 있습니다.”
―괄호 속의 한자 병기(倂記)까지 반대하는 것은 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한자를 배워야 한다고 하면 시대착오적인 수구주의자로 여깁니다. 이는 지식 전달과 수용의 영역인데도 세대 · 이념 논쟁처럼 됐습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한자 얘기를 꺼내면 ‘보수꼴통’으로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사대주의자’로 공격합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자어도 우리말이라는 점입니다. 한글이 숟가락이면 한자는 젓가락과 같은 겁니다.”】
어떻습니까? 공감이 가는 주장이 아닌가요? 한문도 우리 조상인 동이족(東夷族)이 만든 글자라고 합니다. 옛날 서당처럼 전문적으로 한문을 가르칠 필요는 없겠으나 어휘의 뜻 정도는 정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초 ‧ 중 ‧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이 말 한 번 하고 글 한 줄 써가지고도 남에게 희망과 안정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말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구사(驅使)할 수 있도록 '현대판 문맹'을 벗어나는 한문공부를 조금 하면 어떨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0월 27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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