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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칼럼] 남편의 마지막 선물..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칼럼] 남편의 마지막 선물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10/30 08:55 수정 2017.10.31 00:32
▲ 덕산 김덕권 칼럼니스트

남편의 마지막 선물

저야 아들이 없어 걱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변변치 못한 자식을 둔 우리 노인의 입장은 정말 가슴조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여기 실화를 바탕으로 어느 작가의 픽션을 가미한 글이 남의 일 같지 않아 옮겨 봅니다.

「남편은 육군 대령으로 재직하다 예편한 충직한 군인 이었습니다. 정년퇴직 하고 시골에서 그렇게 해보고 싶어 했든 농장을 하며 그동안 힘들게 산 대가로 노년의 행복을 보상받으리라 늘 설계하며 살아 왔답니다.

저녁노을이 풀어놓은 황금빛 호수 같은 텃밭에 상추를 따서 저녁을 차리려는데 아들 내외가

퇴임을 축하드린다며 찾아 왔습니다. 모처럼 행복한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들 내외는 드릴 말씀이 있다며 응접실로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런데 아들 내외가 뜻밖의 소리 내놓습니다. 지금 하는 식당이 비전이 없다며 지인의 소개로 떼돈 되는 사업이 있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내외를 돌려보내고 깊은 시름에 빠진 내외는 서로 이리 뒤 척 저리 뒤 척 밤잠을 못 이룹니다. 몇날 며칠을 그렇게 밤을 보낸 뒤 아내의 간곡한 청도 있고 해서 아침 일찍 송금을 하고 들어오는 남편이 아내를 보고 “자식은 저승에서 온 빚쟁이라 더만...” “자식은 허가 낸 도둑놈이라고 하더니만.....” 한마디 하군 냉큼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번질나게 사들고 부모님 집을 드나들던 아들 내외의 발걸음이 뜸해지든 해, 밤늦게 빚쟁이들에게 쫓긴다며 도피자금을 달라고 아들놈이 쳐들어 왔습니다.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엄마를 붙들고 온갖 애원을 하는 아들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엄마는 “그래 밥은 먹었어?” “엄만 지금 밥이 문제야?” “날 밝으면 아버지 설득해볼 테니깐 어이 들어가 쉬어”

아들의 울음소리로 날을 지내고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아들과 아내는 처분만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만 숙인 채, 멀쑥한 눈빛으로 서로를 훑어볼 뿐입니다. “이 집은 절대 안 된다.” “네 할아버지 때부터 4대가 내려온 집이야” “절대 팔수 없다.” 단호한 아버지 말에 “아버지도 할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거잖아요” “저도 손자인데 권리가 있잖아요.” 라는 말에 뺨을 후려치는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안절부절 못합니다.

“아버지 죽어도 절대 안 올 거예요”라며 아들놈은 대문을 박차고 나가 버립니다. 아들이 그렇게 돌아간 뒤 남편은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 댑니다. 아내는 부엌 한편에서 애꿎은 그릇 나부랭이들만 닦아대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두 사람의 아픔에 스며든 다음날, 창백한 눈썹을 달고 며느리가 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옵니다.

“어머니, 어머니!” “애 아빠가 죽는다고 전화가 왔어요!” 어딘지 말을 안 하고 잘 살아라 며, 아이들 부탁한다며 전화를 끊더랍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이 집에 몫이 있잖아요?” “아버님한테 몫을 달라고 하셔요.” 한참을 울먹거리다 머뭇거리든 아내가 남편에게 악다구니를 피워 댑니다.

“당신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 이혼합시다.” “여보! 아니 어떻게 그런 말을....” “우리 이혼하고 내 몫 주셔요.” “그 돈으로 아들을 살리렵니다.” 방바닥에 고개를 묻고 있는 며느리 얼굴엔 알 수없는 미소가 번집니다.

사흘이란 시간이 일 년보다 길어 보입니다. 오늘도 며느리한테 온 전화를 받고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는 무슨 말인가에 강한 결심을 한 듯, 남편 앞에서 짙은 어조로 첫말을 띄웁니다. “주셔요! 내 몫!” “오늘 이혼하러 갑시다.” “당신 정말 이렇게까지....” 마음 맞춰 정 주고 잘살자든 아내가 정말 이럴 수가? 말없이 눈물을 훔쳐낸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옵니다. ‘인감도장과 신분증’ “갑시다. 법원으로!”

허망함을 속내로 감추고 지난날 회한의 정을 눈가에 이슬로 매단 채, 다른 길로 걸어가는 두 사람, 35년 결혼생활이 이렇게 허무하게 깨어지다니! 믿기지 않는 남편은 내 맘과 다른 무정한 당신이 빈 하늘로 남겨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허접한 선술집에 앉아 굳어가는 혀끝을 술로 적셔내며, 뜻하지 않은 이별 앞에 눈물과 절망을 술잔에 담습니다.

어머니를 기다렸든 아들 내외는 엄마가 건네는 돈을 건네받으며 “엄마 걱정 마!” “이것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장사는 대박이야” “어머니 저희가 생활비 섭섭지 않게 매달 보낼 게요” 처음 몇 달간은 아들 내외로부터 말 없어도 들어오든 생활비가 한 달을 건너뛰더니 이제는 들오질 않습니다. 공공 근로와 허드레 청소 일로 연명하며 딸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간신히 연명하듯 살아내기도 빠듯합니다.

오늘은 손자도 보고 싶고 아들 소식도 궁금해 아들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찾아가는 엄마, 행색이 남루한 시어머니를 가게 밖으로 등을 떠밀듯 나와서는 “왜 말도 없이 찾아오고 그래요” “장사 잘되면 보낼 테니 오지 마셔요” “아니다 아가-!” “손자 놈도 보고 싶고 아비도 보고 싶고 해서 온 거여!” “돈 때문에 온건 아냐”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습니다. “여보-!” 며칠이 흐른 어느 날 딸이 아버지를 찾아 왔습니다. 입원한 엄마의 병원비 때문입니다. 말없이 따라 나선 아버지는 병원비를 계산하구선 아내가 있는 병실로 들어옵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보자 타다만 상처가 떠오르지만 안도의 숨결을 먼저 내어놓습니다.

“여보-! 내가 그때 이혼에 응해 준 것은, 이렇게라도 해야 절반이라도 지킬 수 있었기에...” 남편의 그런 속내를 이제야 알아버린 게 미안한 딸과 아내는 눈물만 흘립니다. 오늘은 남편이 아내와 합치기로 한 날입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오질 않습니다. 딸이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아버지는 받질 않습니다. 두 사람은 황급히 남편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내를 찾다 끝내 누르지 못하고 펼쳐진 전화기를 손에 쥔 채, 남편이 죽어 있었습니다. 노란 봉투에 아파트문서를 남겨놓고요!」

어떻습니까? 남의 일 같지 않지요? 상생의 선연과 상극의 악연이 있습니다. 이쯤 되면 자식이 전생의 원수가 아니던가요? 이생에서 인연을 잘 맺어야 됩니다. 악연을 지으면 내생에서라도 빚 받으려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질기고 질긴 것이 인연입니다. 선악 간 인연을 지으면 그 과보는 받아야 하니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0월 3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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