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죽은者는 말이 없는가로 대답하여도 되는가?,.
현 정부 실세 8명 실명 적힌 '금품 전달 리스트' 메모 공개
언론 녹취에도 김기춘ㆍ허태열 거론, 당사자들 "황당하다" 의혹 부인
검찰, 필적 감정… 수사 착수 검토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해외자원 개발비리 수사를 받다 숨진 채 발견된 성완종(64) 전 경남기업 회장이 친박계 실세들에게 금품을 전달한 내역을 적은 자필 메모지가 공개됐다. 메모지에는 김기춘ㆍ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박근혜정부 핵심실세 8명의 실명이 적혀 있으며, 이들 중 6명에 대해서는 1억~7억원의 액수까지 기재돼 있다.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기자회견에서 "2007년 대선 경선과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주장한 것과 맞물려 정치권에 메가톱급 파장이 일고 있다. 검찰은 메모지의 적힌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수사 착수를 검토하고 있다.
당사자들은 "그런일 없다"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10일 오전 기자들과 만나 "어제저녁 서울 강남 삼성병원에서 성 전 회장을 검시하는 과정에서 고인의 옷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한장 발견했다"며 "메모지에는 대여섯명의 이름과 액수가, 나머지는 이름만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메모지에 적힌 글자(숫자 포함) 수는 55자이고, 성 전 회장이 숨지기 직전 언론 인터뷰에서 돈을 건넸다고 밝힌 두 사람(김기춘·허태열)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검찰과 경찰에 두루 확인한 결과,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10만달러,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7억원, 유정복 인천시장 3억원,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2억원, 홍준표 경남도지사 1억원, 부산시장 2억원'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는 금액 없이 이름만, 김기춘 전 실장의 이름과 액수 옆에는 '2006년 9월26일 독일'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인 지난 9일 새벽 <경향신문>과 한 통화에서 김기춘·허태열 전 실장에게 메모에 적힌 것과 같은 액수의 금품을 건넸다고 말한 육성 녹음파일도 이날 공개됐다. 이 파일을 들어보면 성 전 회장은 김 전 실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해 벨기에와 독일을 방문했던 2006년 9월께 10만달러를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직접 전달했으며,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던 2007년에는 서울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허태열 전 실장(당시 의원)에게 현금 7억원을 건넸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이날 공개된 메모가 여권 실력자들에게 건넨 '정치자금(또는 뇌물) 리스트'라는 추정에 무게를 실어준다.
검찰은 메모지의 필적을 감정해 성 전 회장이 직접 작성한 것인지를 확인하고, 장례 절차가 끝나는 대로 유족과 경남기업 쪽에 추가 자료 제출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또 경향신문 쪽에도 전체 통화 녹음파일 제출을 요청할 방침이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언급된 8명은 모두 금품수수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저는 성완종씨로부터 단 한푼의 돈도 받은 적이 없다. 일말의 근거도 없는 황당무계한 허위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허태열 전 실장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고인이) 최근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보도되기 시작했을 즈음 결백을 호소하며 검찰 조사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구해왔다"며 "(그에게) 검찰 수사에 당당하게 임하고 더 연락을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뜻을 전달했는데, 부탁을 거절당한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섭섭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완구 총리도 해명자료를 내어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유정복 인천시장도 "1원 한푼 받은 적이 없다"고 단호하게 부인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성 회장이 금품을 건넬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했고, 홍문종 의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여론과 권력 사이 눈치
대통령 측근 비리로 변질… 보도경위·후속 파악 분주
김진태 총장 지시 놓고 내부에선 엇갈린 해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임관혁 부장검사)가 MB정부의 자원외교 비리를 파헤치겠다며 첫 번째 타깃으로 성 전 회장과 경남기업을 겨냥했지만 성 전 회장이 목숨을 끊기 직전 돈을 건넨 대상으로 친박 실세 인사들을 지목해 상황이 180도 바뀐 것이다.
검찰이 성 전 회장 수사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도 충격파를 키웠다. 검찰 수사팀은 이날 오전 7시쯤 "경향신문 보도 관련,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의) 그런 진술이나 자료 제출은 없었다. 향후 수사 여부는 법과 원칙대로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국민적 의혹과 비판 여론이 들끓자 상황이 달라졌다. 수사를 촉구하는 야당과 시민단체의 성명 등이 쏟아지자 검찰은 수사 불가론에서 한발 물러서면서 보도내용을 뒷받침하는 정보를 스스로 공개했다. 검찰은 이날 오전 11시 언론 브리핑을 통해 "전날 성 전 회장 시신에서 김기춘·허태열 등의 이름과 금액이 포함된 메모지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지난 9일 성 전 회장 시신을 수습한 직후 금품 리스트 메모를 확보했으면서도 이 사실을 뒤늦게 알린 것이다. 검찰은 "(메모를) 수사 단서로 검토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우선 메모지의 필적이 성 전 회장 것이 맞는지 감정을 통해 확인한 뒤 성 전 회장 유족과 경남기업 임직원이 관련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또 경향신문이 확보한 성 전 회장의 육성 증언이 수사 단서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친박 실세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칼날을 들이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검찰 브리핑 후 수사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언론보도가 쏟아지자, 검찰은 "(성완종 폭로) 수사가 본격화된다는 식의 기사 분위기에 대해 우려가 있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서울지검에 '자원개발 의혹을 포함해 흔들림 없이 수사하라'고 지시했지만 성완종 건은 포함된 게 아니다" 등의 언급을 다시 내놓았다. 검찰은 핵심 관련자인 성 전 회장이 사망한 상태에서 사안의 진상을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면이 있다는 점과 공소시효 등 법리적인 문제를 꾸준히 거론하고 있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저거(MB 측 자원외교)와 제 것(배임·횡령)을 '딜'하라는데…"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 조사 때 동석한 성 전 회장 변호사들에게 확인해보라"고 반박했다.
성 전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상황에서 검찰이 금품거래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는데 이 메모가 중요한 단서
◇성완종 필체 여부 = 검찰은 이 메모가 성 전 회장이 작성한 것이 맞는지부터 따져 보기로 했다. 필적감정을 의뢰하기로 한 것이다.
메모의 글씨는 성 전 회장의 평소 필체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메모는 성 전 회장이 적었다는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메모를 수사단서로 삼을 만한 사유는 더 있다.
메모는 세간에 떠도는 풍문을 담은 게 아니라 금품을 건넸다는 당사자의 주장에 해당하고, 성 전 회장의 일부 언론과 나눈 인터뷰 내용과도 부합한다.
◇부족한 수사 정보량 = 반면 이 메모만 갖고 수사하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다.
당장 메모가 너무 간략하다는 지적이 있다. 검찰이 밝힌 메모 속 글자 수는 55자로, 금품거래 의혹 사건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정보량이 매우 부족하다.
검찰이 성 전 회장의 유족과 경남기업 측에 메모 관련 자료가 있는지, 제출할 의향이 있는지를 타진해 보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품 전달시점은 9월26일, 김기춘 출국날짜는 9월23일? = 그러나 이 메모는 기초적 사실 관계부터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메모 속에 등장한 것으로 거론된 8명의 정관계 인사 중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금품 액수(미화 10만 달러)와 더불어 유일하게 '금품 전달 시점'이 기재돼 있다. '2006년 9월26일'이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이 공개한 전화 인터뷰 녹취파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독일을 방문할 때 김 전 실장에게 10만 달러를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이날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 독일로 9월23일에 출국했기 때문에 서울에 없었다"며 "해당 헬스클럽 회원이지만 이처럼 사람 많은 장소는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름만 적은 사람은 왜? = 메모에는 금품을 건넸다는 시점과 장소는 물론 액수마저 적히지 않은 이름도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이병기 현 청와대 비서실장이 해당한다.
나머지 6명의 인물은 최소한 액수까지는 적어놓은 반면 권력의 정점에 있는 현직 인사인 이 총리와 이 실장에 대해서는 이름만 적어 놓은 배경을 두고 추측이 분분하다.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 수사로 구속위기에 몰렸던 성 전 회장이 개인적 불만으로 인해 분풀이 차원에서 근거 없이 두 사람의 이름을 적었을 가능성부터 어딘가에 이들과의 금품수수 의혹을 뒷받침할 자료를 남겨놓은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검찰은 메모가 성 전 회장이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되면, 관련 자료들을 더 모아 수사에 착수할지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성 전 회장은 검찰 수사과정에서는 이들 정치인들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왜 친박실세들만 집중 거론? = 공교롭게도 성완종 메모에 이름이 거론된 8명의 여권 핵심인사들은 홍준표 경남도지사만을 제외하고는 현 정부의 유력한 친박 핵심 인사들이다.
성 전 회장은 2007년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섰지만 경선이 끝난후 이명박 후보를 위해 뛰었고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도 일했다. 친이계쪽과도 인연이 있고 계파를 가리지 않고 친분을 쌓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권 관계자는 "메모는 친박만 표적으로 하고 있어 진정성이 의심이 된다"며 "100% 앙심을 품고 얘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도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요청을 거절당한에 대해 섭섭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당발'의 선별적 메모? = 성 전 회장이 김기춘·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2007년 대선경선을 전후한 때는 당시 한나라당이 야당인 때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은 기업인이기 때문에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험을 들었다는게 정설인만큼 당시 여권 인사들에도 줄을 댔다"며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쪽으로 가까이 한 것은 정권교체에 미리 대비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두 차례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번 검찰수사에서도 회삿돈을 빼돌려 정치권에 전달한 혐의 등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가 2007년말 특별사면 과정에서 정관계 고위 인사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도 대상이었다.
여권의 다른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은 여야를 넘나드는 마당발로 알려져 있는데 2007년 당시의 문제를 거론하며 당시 야당이었던 친박들만 꼭 집어서 메모한 것도 궁금한 대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