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시신 주머니에 있던 메모는 검찰에 의해 세상에 공개되지 않을 뻔 했다. 하지만 경향신문 인터뷰로 세상에 공개됐다. 경향신문은 성 전 회장과의 50분간 통화 내용 중, 아직 7분밖에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박 대통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언론사는 없다. 성완종 전 회장의 추가적인 폭로 가능성 때문이다. 주요 신문방송은 보수진보를 떠나 ‘성완종리스트’에 거론된 인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지상파3사는 10일자 메인뉴스에서 ‘성완종리스트’ 이슈를 상세히 보도했다. 과거 정부쪽에 불리한 이슈를 축소 보도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KBS는 “고 성완종 전 회장의 쪽지에는 현 정부와 여권 핵심실세들 이름과 돈 액수까지 줄줄이 거론돼 있다”며 “성 전 회장의 인터뷰 이후 뒤늦게 쪽지의 존재를 밝힌 검찰의 의도를 놓고도 뒷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이에 검찰은 "메모지 수거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된 것”이라 해명했다.
MBC는 ‘성완종리스트’관련 리포트를 여덟 꼭지나 배치했다. MBC는 “대검찰청 디지털 포렌식 센터에서 (메모 필적을) 정밀 감정 중인데 메모지의 글씨가 성 전 회장의 평소 서체에 가까운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으며, 검찰이 50분 동안 통화를 한 경향신문 쪽에 전화 녹음 전체 분량을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어 “검찰은 오늘(10일) 오전 김모 경남기업 전 대표를 극비리에 소환해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TV조선은 “친이계에선 이명박 정부를 흠집내기위한 기획 수사가 부른 비극이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인 반면에 친박계는 숨죽이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새누리당 내 반응을 보도했다. TV조선은 이어 “성 전 회장의 일방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모든 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전제한 뒤 “청와대 관계자는 구체적 내용도 없는 표적 메모를 가지고 대통령과 청와대를 끌어들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보도했다.
반면 JTBC는 “성완종리스트에서 눈에 띄는 건 박근혜 정부의 전·현직 비서실장 3명의 이름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사실관계 확인 과정 없이 당사자 입장을 전달하기에만 바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JTBC는 이어 “성완종 전 회장은 이완구 총리의 부정부패 척결 선언 직후 본보기처럼 수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성 전 회장의 폭로로 지난 정부를 겨눈 사정의 칼날이 마치 부메랑이 돼 현 정부를 겨누는 형국이 됐다”고 분석했다.
향후 ‘성완종리스트’로 이어질 검찰수사에 대해서는 방송사마다 전망이 엇갈렸다. KBS는“성완종 리스트 수사는 가능하겠지만 당사자가 숨진 만큼 입증은 쉽지 않다”고 전망했다. MBC는 “1억 원 이상 뇌물은 특가법의 적용을 받아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나지만 (성 전 회장이) 10만 달러를 줬다고 주장한 김 전 실장은 당시 환율로 1억 원이 안 되기 때문에 수사 대상에선 벗어난다”고 보도했다.
SBS는 “(성완종 메모는)본격적인 비자금 리스트라기보다는 경향신문 기자와의 통화에 참고하기 위해 기록해둔 것으로 보인다”며 “성 전 회장이 보다 상세한 내용의 비자금 기록을 남겼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JTBC 또한 “리스트를 적어 놓은 사람이 고인이 되는 바람에 (수사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 싶겠지만, 성 전 회장의 운전기사와 수행비서 재무담당 임직원 등은 단서를 갖고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주요 신문은 주요 방송과 마찬가지로 성완종 전 회장의 주장과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의 입장을 전달하는 가운데 사태의 추이를 신중히 지켜보는 모양새다. 성 전 회장의 경향신문 인터뷰가 50분간 진행됐고 현재 공개된 내용은 7분여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폭로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 언론사 입장에서도 섣불리 상황을 예단하기 어렵다. 주요 언론은 성역 없는 검찰수사를 주문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11일 사설에서 “청와대가 하명하고 검찰은 하명대로 수사에 나서는 잘못된 관행이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리스트 내용이 사실이면 정권 전체의 도덕성 문제와 연결된다. 의혹의 당사자들도 특검 수사를 피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누구도 버릴 수 있다는 각오로 측근들 비리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번 수사는 박근혜 정권이 ‘레임덕’으로 가느냐 아니냐를 가를 것”이라 전망했다.
박근혜정부는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채동욱 검찰총장 낙마로 돌파했다.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은 통합진보당 해산 등을 통한 국면전환으로 돌파했다. 하지만 2015년 ‘성완종 리스트’는 양상이 다르다. 일단 박근혜정부 핵심인사 6명이 리스트에서 거론됐고, 2007년과 2012년 불법정치자금 수수라는 의혹의 실체도 명확하다. 박 대통령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차별화 된 유일한 강점이었던 ‘청렴성’마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중앙일보는 11일자 사설에서 “친박 실세들이 등장하는 이번 사건을 대하는 청와대와 여권의 대응은 극히 실망스럽다. 하루 종일 우왕좌왕할 뿐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지금은 철저하고도 조속한 진상 규명이 급선무다. 지난 연말 정윤회 문건유출사건 때나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초동단계 대처에 실패해 불필요한 비용을 치렀던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설사 박 대통령이 몰랐다고 해도 도의적 책임까지 피해 가기는 힘들다”며 “박 대통령 스스로도 이와 관련해 국민 앞에 상세히 소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검찰은 정권의 역린을 건드려야 할 처지가 되었으니 고심이 깊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며 좌고우면하기에는 의혹이 심각하고 관련 정황이 구체적이다”라며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정부를 겨냥해 포스코건설경남기업에 대한 표적수사에 나섰다가 현 정부 권력자들의 부패 추문이란 부메랑을 맞았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미 박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있다. 최근 유승민 원내대표의 국회연설내용이 상징적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10일 “메모지 작성 경위 등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라”고 말했다. 도저히 덮을 수 없는 증거가 나오면 검찰도 VIP의 ‘가이드라인’ 대신 ‘출구전략’을 찾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팩트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