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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포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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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포기하지 마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11/09 07:29 수정 2017.11.10 09:34

포기하지 마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 칼럼니스트

한 때 제가 젊었을 시절 푸로권투사업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잊을 수 없던 일 중의 하나가 무하마드 알리(1942~2016)의 한국방문이었습니다. 1976년 5월 27일, ‘21세기 최고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이틀간의 짧은 방문 일정 중, 제가 한국권투위원회의 일원으로 안내의 일을 맡았습니다.

특히 알리는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권투협회의 환영대회에서 제 아우 김태호 선수와 ‘쉐도우복싱’을 하며 권투시범을 보인 일입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WBA 헤비급챔피언이자 세계적인 이슈를 몰고 다니는 알리의 방문에 한국권투위원회로서도 굉장한 사건이었지요.

무하마드 알리는 3번이나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유일무이한 권투 선수입니다. 프로로 전향해서 1964년 2월 25일 소니 리스턴에게 7회 KO승을 거두고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뛰어난 반사 신경과 멋진 손과 발의 조화, 그리고 잘 단련된 방어기술 등을 갖춘 알리는 1965~67년 9차례의 타이틀 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치렀지요.

그는 종종 엉터리 시구(詩句)로 자신이 무적(無敵)임을 주장했고, “내가 최고다”라는 개인적인 슬로건을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미국 블랙 무슬림 단체에 가입하고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본명을 이슬람교도의 이름인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습니다. 그 후, 그는 1974년 10월 30일 ‘죠지 포먼’을 8회에 KO시키고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그 즈음, 무하마드 알리의 권투시합을 보고 남몰래 의지를 불태운 한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알리에 못지않은 명성을 떨친 영화배우 ‘실베스타 스탤론(1946~)’이었지요. 스탤론은 1946년 뉴욕의 헬스 키친이라는 빈민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그 아이는 의사의 실수로 왼쪽 눈 아래가 마비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왼쪽 뺨과 입술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눌한 말투와 이상한 생김새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12번이나 옮기는 등 학창시절도 불행으로 얼룩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9살 때는 부모님이 이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탤론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꿈이었지요. 그러나 보잘것없는 그에게 돌아오는 배역은 별로 없었습니다. 단역 배우로는 먹고살기 힘들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영화관 안내인, 경비원,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보디가드 등등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서른 살이 된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직감적으로 느꼈지요. 그리고 1975년 3월 전설적인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무명의 복서 ‘척 웨프너’가 벌인 복싱 경기를 보고 비장한 각오로 각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완성한 시나리오를 들고 제작자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이 대본을 사용해 주시고, 저를 주연으로 써 주세요!” 그의 허무맹랑한 제안에 대부분의 제작자는 고개를 저었지만, 한 곳에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무명배우를 쓰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던 제작자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좋습니다. 대신 제작비를 최소한으로 줄이세요.” 영화는 불과 28일 만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개봉 후의 반응은 엄청났습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서는 예외 없이 우레와 같은 기립박수가 터졌고, 관객 중 태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로 극장 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해 미국에서만 제작비의 50배가 넘는 56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영화의 이름은 ‘록키!’ 그의 이름은 ‘실베스터 스탤론!’ 영화 주인공 록키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KO패를 당하지 않고 15회전을 버티는 것이었습니다. ‘포기하지 마!’ 그것이 그의 인생 드라마입니다.

영화 ‘록키’ 중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시합에서 져도/ 머리가 터져버려도 상관없어/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그러니 진정 바라는 것이 있다면/ 꿈이 있다면…/ 죽을힘을 다해 간절하게 매달리고 노력해보는 거야/ 놀라운 힘을 발휘할 것이니까」

어떻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변화를 선택하지 못합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변화를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바로 지금이 시작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다’라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열정이 있다면 자신의 삶으로 실험해 봐야 합니다. 실험해 보지 않은 목표는 나에게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못합니다.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지요.

하지만 도전하는 순간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그것이 나의 재능인지 아닌지도 실험해 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변화하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던져버리고 용기 있게 변화를 선택해야 합니다. 변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재능이 아닙니다.

저는 재능은 노력하면 얼마든지 계발(啓發)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이왕이면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저는 그걸 ‘서원(誓願)’이라고 표현합니다. 더 많이 노력하면 충분히 성취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그래야 더 많이 배우고 재능을 더욱 계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이 우주에는 할 수 있다고 믿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자신이 간절히 원하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진리가 있습니다. 변화의 기로에서 ‘용기’와 ‘실천’을 선택하면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의 전환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서원이 지극하면 부처도 될 수 있습니다. 그 서원 ‘포기하지 마!’ 바로 이것이 성공의 열쇠이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1월 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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