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뉴스프리존

고통받는 이를 가벼이 여기던 나날이여 저주받으라..
사회

고통받는 이를 가벼이 여기던 나날이여 저주받으라

공지영소설가 기자 입력 2015/04/16 00:02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슬픔을 곁들인 따스하고 보드라운 토스트… 이깟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기를 겪으며 모든 것을 놓고 말았는데, 아 고통의 엄중함이란

엄마는 스무 살 무렵 우연히 광주 학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단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기로 되어 있던 광주 학살에 대한 외신들의 다큐멘터리였지. 국내에서는 입만 뻥긋해도 처벌받던 그 사안에 대해 외국에서는 이렇게 대놓고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했다는 충격은 그 내용 속에 들어 있는 잔혹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단다. 그래, 그걸 보던 그때도 4월 어느 날이었던 것 같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 광주

선배의 어두컴컴한 방에 모여 그것을 보고 나서 우리는 길거리로 나왔다. 4월의 노란 햇살이 아스팔트에서 튀어올라 눈이 부셨던 것 같은데 내게는 세상이 두렵도록 컴컴하게 느껴졌어. 그리고 나는 그때 얼어붙은 듯했단다. 내 인생이 다큐멘터리를 보기 전과 본 이후로 나누어지고, 이제 나는 다시 그 사실을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던 거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인터뷰 때 가끔 "당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이 이야기를 하곤 해.

"네, 광주입니다. 스무 살 때 그 사실을 접하고, 나는 내 인생이 영원히 돌이켜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해 부활절을 앞둔 성목요일. 엄마는 다른 해처럼 수도원에서 부활절 전의 성삼일을 지내려고 수도원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 후배가 함께 가겠다 해서 집으로 오라고 해놓고 후배와 함께 먹고 떠나려고 간단한 파스타를 준비하고 있었단다. 잠시 인터넷을 검색하는데 세월호 이야기가 나왔어. 배가 좌초되었다는 것, 구명조끼를 입고 있어서 전원 구조되었다는 것. 비행기도 아니고 배가, 요즘 세상에 그렇지 뭐 싶어 잘되었다 생각하고 잠시 기도한 뒤에 엄마는 수도원으로 떠났단다.

거기서 나는 인터넷 검색도 하지 않았고 뉴스도 보지 않았지. 그런데 어떤 스산한 공기가 느껴졌어. 인터넷을 보지 않아도 아주 간략하게, 다 구조되지 않았다는 것, 아이들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등등의 이야기가 들려왔던 걸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라 전체가 싸늘하게 식어가는 서늘함 같은 것을 느꼈단다. 그렇게 기쁘지 않은 부활절은 처음이었지.

그 서늘하고 기쁘지 않은 부활절을 보내고 엄마는 서둘러 영국으로 떠났단다. 행사가 둘이나 있어 거의 한 달을 머물러야 했지. 간간이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되고 상상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단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이런 글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말았단다.

"아이들을 왜 구조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보다, 그날 처음부터 죽일 작정이었다는 게 더 맞을 정도로 이상한 일이 연속되었군요."

이 말을 쓸 때 추호도 뒤편에 내 마음은 실려 있지 않았다. 너무도 이상한 우연의 남발이 작가로서 보자면 마치 거꾸로 작가가 꾸민 듯 일어났다는 안타까움의 표현 정도 되었다고 할까. 물론 나는 아직도 모른다. 실제로 살아보니까 정말 불행한 일, 정말 뛸 듯이 기쁜 일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몇 가지의 우연과 기연이 덮쳐온다. 이건 인정해야 해. 그걸 보고 인간은 가끔 불가항력이라고 하지.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 인간의 필연을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이 무엇이었고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밝히는 일은 다르다. 그런데 공식적으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고 계속 무성한 의혹과 뒷말이 난무하는 것을 보고 나는 무심코 광주항쟁을 떠올렸다. 이상하게도 모든 것이 참으로 비슷한 인상으로 내게 다가왔어. 다시 한번 오십이 된 내가, 이제, 내 인생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거라고, 생각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느껴버린 것까지, 그랬어… 그래, 그랬다.

2년 된 개를 잃어버리고

자고 나면 한 가지 의혹이 독버섯처럼 솟아 있더구나. 대체 언론들은 무엇을 보도하는 것인지, 정부는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무렵 엄마는 너도 아는 큰 시련을 겪는다. 엄마가 키우던 두 강아지 여름이와 겨울이를 잃어버린 것이지. 인간이 개를 잃어버렸을 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인간이 사랑하는 개를 잃어버렸을 때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겪고, 거기에 곁들여 조금 더 애썼고 조금 더 많은 슬픔을 겪어냈다. 울면서, 미칠 것 같으면서, 그러나 세월호 부모들을 떠올렸기에 나는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겨우 2년을, 그것도 개를 키운 내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일상이 마비될 정도로 슬픔에 압도당할 것 같은데 자식을 잃어버린 그분들은…. 아, 나는 감히 어떤 한 글자도 쓸 수가 없다.

오랜 기간 지녀온 신앙의 힘을 목발처럼 의지하며 나는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때 한 가지 생각했던 것은 슬픔은 죄가 아니지만 내가 그 슬픔에 휘둘려 이 삶의 한 자락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각성 같은 것이었어.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가며, 정신을 잃어서는 안 돼, 하고 다짐하는 조난자 같은 심정이라고 할까. 그 뒤로도 나는 세월호 부모님들의 눈물을 바라보며 그들과 함께 울어주는 일 외에는 아직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이번에는 부활절 이후가 그 이전 고난의 사순절보다 두려웠다. 왜냐하면 4월16일이 다가오니까. 그러고는 10여 년 만에 지독한 감기를 앓게 되었단다.

앓으면서 다시 생각했다. 나는 예전엔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들이 많은 기도를 하고 가끔 시도 쓰고 하는 것을 보면서 어이없게도 이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

"누워 있는데 기도도 많이 하고 책도 보고 가끔 뭣도 하겠지, 뭐."

그런데 아파 누워 있으면서 짧은 기도조차 하지 못했다. 왜냐고? 아팠기 때문이야. 그래 이건 너무도 단순하며 너무도 절절한 이유이더구나. 누군가 고통은 결국 집중의 문제라고 했던 것도 떠올랐다. 오죽하면 고통에 '사로잡힌다'는 표현까지 있었겠니? 여름이와 겨울이를 잃고 정신줄을 놓지 말자, 고 다짐했던 나는 이깟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감기를 겪어내며 모든 것을 놓고 말았다. 아, 이것이 고통의 엄중함이라고나 할까. 고통은 그리도 힘이 세구나. 고통받는 사람들을 가벼이 여기던 나날이여 저주받으라.

시드는 꽃과 사라져버리는 양초 같은 것들

몸은 아프고 약을 먹기 위해 무언가를 먹어야 했기에 예전에 너희가 어릴 때 엄마가 해주곤 하던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토스트라는 단어가 있어 좀 딱딱한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단다.

우선 오래된 (주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식빵 두 조각, 달걀 하나, 우유 반컵(종이컵으로 말이야), 설탕 한두 스푼, 소금 반꼬집, 계핏가루(있으면 좋고 없으면 패스). 먼저 수프접시같이 약간 오목하고 넓은 접시에 달걀 하나와 우유 반컵을 넣고 포크로 저어 섞어내려므나. 그리고 여기에 설탕을 넣어. 한 스푼을 넣으면 조금 담담한 맛이 되고 약간 달게 먹고 싶으면 두 스푼을 넣으면 된단다. 엄마의 비법은 소금이야. 소금 반꼬집 정도가 들어가면 (아주 조금 더 들어가도 돼) 절묘한 맛이 된단다. 알지? 소금과 설탕의 그 상반됨이 서로를 더 강화해준다는 것을 말이야. 그러니까 프렌치토스트의 맛은 당연히 단맛인데 여기에 소금 맛이 겨우 느껴지는 정도가 이 맛의 포인트야. 그런데 이 둘은 아주 멋진 조화를 이룬단다. 이 묽은 액체에 딱딱한 식빵을 적셔라. 바로 적셔지지 않으니 여러 번 뒤집으면 돼, 조금 놓아둬도 좋고.

프라이팬을 약한 불에 올리고 버터를 두른다. 없으면 식용유도 상관없어. 잘 적셔진 빵 조각을 올려서 뒤집어본다. 빵맛이 많이 나길 원하면 너무 많이 적시지 말고 , 더 부드러운 걸 원하면 충분히 적셔라. 그리고 노릇하게 익으면 완성. 이 빵은 아주 부드러운 상태이므로 뒤집개로 빵을 대각선으로 프라이팬 위에서 잘라. 그리고 접시에 삼각형이 잘 보이도록 담는다. 그다음엔 계핏가루를 솔솔…. 비가 오고 추운 날이나 뭐 부드럽고 따스한 게 먹고 싶은데 없는 날 이 토스트는 아주 좋단다. 너희가 어릴 때 이유식으로도 엄마가 이걸 많이 해주었어. 죽도 아니고 빵도 아니고 그 중간 정도의 부드러움과 따스함.

어제는 감기가 조금 나았나 싶어 꽃시장엘 다녀왔단다. 엄마의 작은 정원에 심을 일년초들을 사러 갔지. 참 이상하지. 시간이 갈수록 사람보다 동물이, 동물보다 식물이, 나무보다 꽃이 좋아. 그중에서도 일년초들에 마음이 간다. 아마 엄마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지상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일까. 아니, 그것보다 이 세상에 내 것도 아닌 것에 붙박혀 떨어질 줄 모르는 내 욕심을 놓고 싶어서겠지. 시드는 꽃과 사라져버리는 양초 같은 것들을 사랑한단다. 프렌치토스트 속의 설탕과 소금이 그 충돌하는 요소가 서로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상승시켜주듯이 삶의 덧없음과 우리 모든 생명과 삶의 소중함은, 얼핏 보아 서로 상치되어 보이는 이 두 요소는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삶은 유한하고 덧없이 져버리는 것이기에 우리의 한순간 한순간은 그것이 나의 것이든 남의 것이든 아주 소중하다. 이걸 훼손하는 자에 대한 엄중함은 그러므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고 말이야.

이기적이라기보다는 무감각한 사람들

위녕, 노란 리본과 팔찌를 달고 깃발을 다는 것은 소중한 행동이다. 다른 이들의 슬픔에 가만히 격려의 깃발을 올리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지난번에 네가 물었지. 엄마, 사람들이 자기밖에 몰라, 남의 고통에 너무 무관심해, 하고. 위녕, 그런 일은 없어. 남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은 실은 자기 자신에게도 무관심하다. 그들은 이기적이라기보다는 무감각하게 사는 거야. 사는지도 모르고 흘러다니는 거란다. 만일 남의 고통에 잔인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을 가엾이 여기렴. 그들은 아무도 없는 밤, 실은 자신의 영혼에게도 조소를 퍼붓고 있는 사람들이란다. 오늘 밤은 모든 슬픈 이들을 위해 우리의 마음을 포개자. 그들에게 이런 토스트라도 한 접시 대접할 수 있다면 더할 수 없이 좋고. 자 오늘도 그렇게 따스한 밤!

공지영 소설가
저작권자 © 뉴스프리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