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저명 시인이었던 위스턴 휴 오든은 ‘음악은 우리가 시간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힘들었던 2020년에 대한 절묘한 격담이다. 대중가요가 르네상스를 맞은 한해였기에 그렇다.
이제 올 한해도 어느새 세월은 덧없이 흘러 달력 두 장을 남겨놓고 있다. 하기야 금년이야말로 역대 겪어보지 못했던 코로나19로 모두가 칩거로 보낸 시간이 많았다. 과거와 달리 일상생활이 외형적으로는 정적(靜寂)인 모양새였지만 누구에게나 심리적으로는 가장 다사다난했던 경자년이었을 것이다.
방안퉁수로 보내며 새로운 일상을 보내는 가운데 소견거리를 제공한 것이 다름 아닌 ‘트로트’였다. 단계별 거리두기 방역으로 사회경제 모든 분야가 침체를 겪었지만 그 틈새를 헤집고 중장년층의 노래로 치부되던 트로트가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용설란, 가시연꽃, 토란꽃, 소철나무꽃, 대나무꽃, 소나무꽃 등 100년 만에 피는 꽃에 더해 한국 전통가요 100주년의 해에 트로트도 만개했다. 그 만큼 보기가 쉽지 않아 모두에게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100년만의 꽃들처럼 올해 트로트는 코로나19로 우울한 대중들에게 행운을 듬뿍 안겨줬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더욱 코로나19 돌풍에 휘말려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공연장이 폐쇄되고 지역축제가 취소되면서 예술가들은 설 자리를 잃었다. 그나마 감염증이 장기화 되면서 비대면 온라인 공간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에는 역부족이었다. 역시 문화예술은 공연이든 축제든 현장에서 생생한 감흥을 체험해야 제격이다.
이런 여건에서도 안방을 파고든 TV방송 매체와 랜선을 통한 시청자의 참여는 구세대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트로트를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등장시켰다. 오히려 새롭게 시도된 비대면 디지털 영상 라이브 중계는 초 첨단 시대에 걸맞게 참신한 감동을 선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 여파로 새로운 도전의 트로트 프로그램은 과거의 형식이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오히려 기존의 관성을 뛰어 넘는 파격적인 착상으로 ‘신(新) 트로트’를 선보인 것이다. 이전에도 일부 방송채널에서 한국 전통가요의 방송프로가 있기는 했지만 천편일률적인 편성으로 식상감이 있었던 터였다.***
그렇지만 올해 선보인 트로트 오디션은 역동적인 무대와 박진감 넘치는 승부 판정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들였다. 여기에 시청자가 직접 우승자 선정을 가름하는 심사위원단 방식과, 모든 연령대의 감성을 아우르면서 시대적 코드인 ‘융합성’을 제작기획에 녹여냈다.
이 신시대 트로트는 가요 장르 간 결합과 타 예술 및 스포츠 분야 등 다양한 구성으로 과감한 콜라보를 모색해 ‘패밀리 가요’의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그렇게 해서 한 특정 프로그램은 역대급 시청율과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를 기록했다. 이제는 거의 모든 방송매체들이 앞 다퉈 다양한 트로트 프로를 내세우며 자웅을 겨루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 전통가요 센테니얼에 ‘트로트 셀럽문화’(Celebrity Culture)가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경연에서 상위를 차지한 가수들에 대한 국민의 ‘집착적 관심’(CWS · Celebrity Worship Syndrome) 현상까지 나타났다.***
올해에 조성된 트로트 열광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단할 수 없다. 또한 현재 방송계가 선도하는 트로트 질주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방송에 넘쳐나던 K-팝과 아이돌 음악을 포함 다른 예술 장르는 방송 프로에서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작금 트로트에 치우친 대중문화 프로그램 편성에서 합리적 균형성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특히 TV방송 경연을 통해 배출된 신예들이 기존 가수들의 명곡을 재탕 삼탕하는 예능프로에 심취하는 것도 짚어볼 일이다. 진정 자신들의 창의적인 대표 곡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중견가수로서의 입지를 확보케 돼 한국 전통가요 아티스트로 확고하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방송사로서도 시청률과 수익성에 영합해 특정 등용 가수들을 예능급 프로그램에 과도하게 집중 출연시키고, 중복 편성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방송 전파는 대중의 공리(公利)를 구현해야하는 공공재이기에 객관성·공익성·균형성을 유지해야 한다.***
어쨌든 코로나19 시국에 “방콕”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트로트는 한 움큼 청량제가 됐다. 하지만 무슨 일에서든 의욕과 열정은 갖되 과유불급을 항상 마음에 새겨야 한다. 또한 각고의 노력과 열정으로 인기를 거머쥔 신참 트로트 셀럽들도 현재의 평면만 봐서는 안 된다.
전문 가수로서 활동해 나가야할 긴 행로를 입체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선견지명도 갖춰야 한다. 가요 경연의 승자로 우뚝 서게 했던 피땀 어린 긴장의 과정을 거쳐 지금 누리는 인기와 영예에 안주할 것이 아니다.
젊음과 잠재력을 바탕으로 긴 호흡으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넓혀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녀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올해 거머쥔 스타의 자리를 잘 관리해 더욱 더 성장하는 발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철학자 프레드리히 니체는 ‘성숙이란 어릴 때 놀이에 열중하던 진지함을 다시 발견하는 데 있다’라고 했다. 더욱 꾸준히 진지하게 노력해서 올해의 열정이 계속 이어져 심연이 알찬 트로트 아티스트로 완숙해지기를 기대한다.***
이인권 문화경영미디어컨설팅 대표는 문화커뮤니케이터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소리문화의전당 CEO 대표와 예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 역임과 ‘예술경영리더십’, ‘문화예술리더론’, ‘긍정으로 성공하라’, ‘경쟁의 지혜’, ‘석세스 패러다임', 영어로 만드는 메이저리그 인생' 등 14권을 저술했다.
- N. B. : The writer gives a shout-out to those photographers and Unsplash for permitting use of the above images. 필자는 이미지 사용에 대해 사진작가님들과 Unsplash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