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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즉다욕(壽則多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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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즉다욕(壽則多辱)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20/11/16 22:21 수정 2020.11.16 22:35

사자성어에 ‘수즉다욕(壽則多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다는 뜻입니다. 오래 살수록 망신스러운 일이 많이 겪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닐까요? 제 나이 이미 살만큼 살았는데 저를 만나는 사람마다 “장수 하십시오!” 아니면 “100세 상수하십시오!”하는 덕담을 하십니다.

물론 덕담이긴 하지만 저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정말 그리 살까 봐서요. 전국시대를 살다간 사상가 장자(莊子)의 저서 《장자(莊子)》 〈천지편(天地篇)〉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寓話)가 실려 있습니다.

그 옛날 성천자(聖天子)로 이름 높은 요(堯)임금이 순행(巡幸) 중에 화(華)라는 변경에 이르자 그곳의 관원이 공손히 맞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수하시오소서!” 그러자 요 임금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지요.

“나는 장수하기를 원치 않네.” “그러시면 부자가 되시옵소서.” “부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네.” “그러시면 다남(多男)하시오소서.” “그것도 나는 원치 않네. 다남하면 못난 아들도 생겨 걱정의 씨앗이 되고, 부자가 되면 쓸데없는 일이 많아져 번거롭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은 법이네[壽則多辱]”

이 말을 들은 관원은 실망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대듯 말했습니다. “요임금이 성인이라고 들어왔는데 이제 보니 군자(君子)에 불과하군. 아들이 많으면 각기 분수에 맞는 일을 맡기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재물이 늘면 는 만큼 남에게 나누어주면 될 텐데…‥.”

“진정한 성인이란 메추라기처럼 거처를 가리지 않으며, 병아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잘 먹고, 새가 날아간 흔적 없는 자리처럼 자유자재이어야 하는 법. 그리고 세상이 정상이면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그 번영을 누리고, 정상이 아니면 스스로 덕을 닦고 은둔하면 되지 않는가?”

“그렇게 한 100년쯤 장수하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그때 신선(神仙)이 되어 흰 구름을 타고 옥황상제(玉皇上帝)가 계시는 곳에 가 놀면 나쁠 것도 없지…‥.” 관원은 말을 마치자마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허를 찔린 요임금은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려 했으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하하! 그러고 보면 오래 살아 신선이 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신선이 되려는지 벌써 흰 눈썹이 휘날리고, 머리는 번쩍일 정도로 배코를 쳤습니다. 게다가 음식은 육류(肉類) 보다는 채식 위주로 아주 소식(小食)을 하며 살아갑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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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생에 대한 애착(愛着)‧탐착(貪着)이 떨어진지 오래입니다. 그냥 열심히 덕화만발 글이나 쓰다가 옥황상제님이 오라면 달려가 천상에서 놀고, 다시 내려가라면 어서 달려와 우리 덕화만발의 도반(道伴) 동지(同志)들과 어울려 살면 그 삶 또한 오나가나 최고의 인생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원불교 천도법문(薦度法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영가(靈駕)가 이 세상에서 선악 간 받은바 그것이 지나간 세상에 지은 바 그것이요. 이 세상에서 지은 바 그것이 미래 세상에 또 다시 받게 될 바 그것이다.」

그런데 「부처와 조사(祖師)는 자성(自性)의 본래를 각득(覺得)하여 마음의 자유를 얻었으므로 이 부처와 조사며 범부와 중생이며 귀천과 화복이며 명지장단(命之長短)을 다 영가가 짓고 짓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우주의 진리를 깨쳐 얻은 불보살(佛菩薩)과 범부 중생의 삶이 극명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가요? 그러니까 생사의 이치는 부처님이나 일체 중생이나 다 같은 것이며, 성품 자리도 또한 다 같은 본연 청정한 성품이며 원만 구족한 성품인 것입니다.

성품이라 하는 것은 허공에 달과 같이 참 달은 허공에 홀로 있건마는, 그 그림자 달은 일천 강에 비치는 것과 같이, 이 우주와 만물도 또한 그 근본은 본연 청정한 성품자리로 한 이름도 없고, 한 형상도 없고, 가고 오는 것도 없고, 죽고 나는 것도 없고, 부처와 중생도 없고, 허무와 적멸(寂滅)도 없고, 없다 하는 말도 또한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것입니다. 그 중에서 그 있는 것이 무위이화(無爲而化) 자동적으로 생겨나,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으로 변화하고, 만물은 생로병사를 따라 육도와 사생(六道四生)으로 변화하고, 일월(日月)은 왕래하여 주야를 변화시키는 것과 같이, 우리 인간은 육신이 나고 죽는 것도 또한 변화는 될지언정 생사는 아닌 것입니다.

이제 이 성품자리를 확연히 깨달으셨는지요? 이 자리를 깨달은 사람이 불보살이고, 이 자리를 깨치지 못한 사람은 영원히 범부나 중생을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행을 통해 불보살 세계가 승(勝)하면 불보살 세계에서 그 육신을 받아 무량한 낙을 얻게 될 것이요, 그 반대로 탐‧진‧치가 승하고 보면 그 곳에서 그 육신을 받아 무량겁을 통하여 놓고 무수한 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한 세상 살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오래 사는 것이 욕된 것이 아닙니다. 생사와 우주의 진리를 깨쳐 불보살의 위치에 올라서느냐가 문제입니다. ‘수즉다욕’은 진리를 깨치지 못한 중생들의 문제가 아닐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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