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29재보선 여야 확 뒤바뀐 ‘심판론’
4·29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이 세월호 참사 1주기와 겹치면서 여야는 이틀째인 17일부터 본격 선거전에 돌입했다.
[연합통신넷= 김현태기자] 공식 선거운동 시작 1주일 전 터진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재·보선의 결과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 등장했다. 이번 재·보선의 '1번 변수'이자 사실상 '유일 변수'라는 평가도 나온다.
당초 변수로 꼽혔던 야권 주도권 경쟁 등은 '성완종 블랙홀'에 빨려들면서 이제 큰 변수가 되기 어려워졌다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이번 재·보선 구도를 급격히 요동치게 만들었다. 지난 10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여권 핵심 인사들에 대한 금품 제공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재·보선 판세는 급변했다. 여야 모두 '2곳+알파' 승리를 목표로 했던 당초 판세는 무의미해졌다. 서울 관악을 보선에선 새정치연합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바짝 따라잡았고, 전통적 여당 강세 지역인 인천 서·강화을 재선거에서도 박빙의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특히 이완구 국무총리가 3000만원 수수 의혹으로 사퇴 직전에 몰리면서 여당의 선거는 더욱 어려워졌다. 이 총리가 사퇴를 거부하며 버티는 상황에서 금품수수 정황이 계속 드러나면서 새누리당 지지율은 연일 추락하고 있다.
선거 지원에 나선 당내 거물들이 "이런 상태에선 선거 자체가 어렵다. 표를 달라고 할 면목이 없다"(김문수 전 경기지사)고 비명을 지를 정도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지난 16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는 당의 입장을 전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17일 "초기 선거구도가 완전히 틀어졌다. 성완종 리스트 파장으로 지지층은 불안해하고, 중도층은 여론에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성완종 리스트 파장으로 초기 야·야 대결 구도가 희석되고 여야 대결 구도가 복원됐고, 정부와 여당 심판·견제론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며 "이 같은 상황은 야당 지지층의 투표의지를 높이고 제3세력으로의 이탈표도 줄일 수 있어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윤 센터장은 다만 성완종 리스트에 야당 인사도 포함됐다는 여권의 여론몰이는 지켜볼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여권이 이번 게이트를 박근혜 정권 실세가 아닌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몰아가는 데 성공한다면 정권심판론은 희석되고 정치혐오를 키워 전반적 투표율 저하만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당초 핵심 변수로 주목받던 야권 분열, 야권 주도권 경쟁의 영향력은 약화됐다. 당장 야·야 대결의 상징이던 서울 관악을 선거에서 국민모임 정동영 전 의원의 제1야당 심판론은 주목도가 크게 떨어졌다. 여야 대결 정국이 급박해지면서 야권의 구심력이 강해졌고, 여론의 관심도 야당 간 경쟁보다는 정권 견제론 공방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이번 재·보선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치르는 첫 선거로 그 결과는 당 지도체제 안정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 파장이 갈수록 커지면서 문 대표 체제 시험대로서의 성격은 약화됐다. 정권 심판론 흐름이 약할 때 야권의 원심력과 야당 내부 갈등이 커질 수 있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신상진 후보는 46.11%, 야권 연대 후보였던 구 통합진보당 김미희 후보는 46.77%를 각각 얻어 불과 654표 차이로 당락이 갈렸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의 경기지사 선거에서 새누리당 남경필 후보가 당선됐지만, 이 지역에서는 5.73%p 뒤졌다. 성남시장 선거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이재명 시장이 여당 후보에 14.52%p 앞섰다.
16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세월호 추모 분위기와 소위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담한 반응까지 더해 선거 분위기는 썰렁했다.
성남동 성호시장에서 40년 넘게 채소가게를 운영해 온 김정숙(62·여)씨는 "지역에서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이라며 "성완종 리스트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사람보고 뽑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단독주택이 밀집한 은행1동에서 45년을 산 한모(75)씨는 성완종 파문에 대해 묻자 "국내 정치가 언제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있었냐"며 "낙후된 중원구를 빨리 재개발할 수 있는 추진력 있는 후보를 찍겠다"고 말했다.
1공단 주변에 있는 하대원동 자이아파트 주민 우모(43·직장인)씨는 "성남시 정책과 연속성있는 공약이면 실천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후보를 뽑겠다"고 말했다.
금광동 남한산성입구역 인근에서 만난 20대 후반의 한 직장인은 "후보 3명이 출마한 건 아는데 정국이 어수선해져 선거 쟁점조차 모르겠다"며 "1년짜리 국회의원 뽑는데 공약으로 판단하기도 그렇고 솔직히 관심이 안간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함께 있던 30대 직장인은 "성완종 리스트로 시끄러운데 돈을 준 사람이나 받은 사람이나 다 똑같다"며 "절차대로 수사해 보고 부족하면 그때가서 대안을 찾으면 좋을텐데 정치권은 우선 싸움부터 하면서 시작하니…"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신상진, 새정치연합 정환석, 무소속 김미희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첫날이지만 세월호 1주년과 겹친 점을 감안해 이날은 추모 분위기 속에 전통시장, 공단 등을 누비며 기선잡기에 정성을 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