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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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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장유감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20/11/29 22:06 수정 2020.11.29 22:09

완장(腕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팔에 감거나 붙이는 휘장(徽章)이지요. 그런데 사람이 갑자기 완장을 차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일종의 권력이 생기거든요. 팔에 감는 완장은 크게 눈에 띄기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구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완장은 ‘권력,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읽은 윤홍길의 ‘완장’이라는 소설이 생각이 납니다. 이 소설 속에서 저자는 권력을 둘러싼 인간 본성을 풍자와 해학으로 잘 그려 내 주었지요. 특별한 기술도 없고 부르는 곳도 없어서 백수건달로 사는 주인공은 어느 날 동네의 저수지를 지켜달라는 청을 받습니다.

폼도 나지 않고 보수도 마땅치 않은 일이지만 주인공은 딱히 할 일도 없는 처지였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처음에 저수지 지키는 일을 대충 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저수지감독’이라는 완장을 차게 되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그의 권위를 인정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권력의 맛을 느끼며 점점 안하무인이 되어갑니다. 별 볼 일 없던 그는 처음에 주눅이든 표정으로 저수지기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완장은 신기하게도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권위를 높여주는 힘이 있었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 진영 논리에 빠져 있습니다. 이러한 진영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확증편향, 이중 잣대 등을 동원하여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야당 시절에 무조건 결사반대했던 정책을 자기들이 여당이 되고 나서 추진하거나, 여당 시절에 자기들이 추진해놓고 야당이 되자 결사반대하는 경우도 빈발합니다.

자기들 입맛대로 행동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아니하면 적폐라고 치부해 난도질을 합니다. 즉, 진영에 따라 같은 주장이라도 자기 진영의 것이라면 옳고 상대 진영의 것은 틀렸다는 이중 잣대, 내로남불로 이어지기가 다반사(茶飯事)입니다.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귀한 일을 좀 해 달라고 감투를 씌워주고 완장을 달아 주었더니 제 본분을 잊고 엉뚱한 일에 감투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착한 국민들을 힘들게 만들고 괴롭게 만드니 우리는 언제까지 그런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나하고 한숨만 나옵니다.

우리말에 ‘거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물을 마구 써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 사람 거덜 났네!” 그런데 원래 ‘거덜’은 조선시대에 말을 관리하던 관청인 사복시(司僕寺)의 하인을 가리킵니다. 그 거덜이 귀인의 행차가 있을 때 그에 앞서가며 길을 틔우는 것입니다. 즉,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갈 때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기 위하여 이렇게 외쳐대던 하인을 말합니다.

“쉬~~물럿거라~ 물럿거라!! 대감마님 행차시오.” 지체 높은 지배자의 곁에서 “쉬~~ 물렀거라!” 하고 외치는 거덜은, 단지 권마성(勸馬聲)을 외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길거리에서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 고관들의 주요 통로였던 종로 길의 백성들에게 이로 인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또한 높은 관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굽히며 예를 갖춰야 했고,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계속 구부리고 있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일일이 예를 갖추다 보면 도무지 제 갈 길을 제 시간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를 갖추지 않았다가는 현장에서 바로 거덜의 발길질에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었지요.

그래서 생겨난 것이 ‘피맛골’입니다. 이른바 ‘힘없는 백성들, 즉 ’아랫것‘들은 아예 구불구불 하지만 지저분한 뒷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것입니다. ‘피맛골’은 높은 사람의 말을 피한다(避馬)는 데서 온 말입니다. 사실은 그 말 옆에 따르거나 앞장서서 거들먹거리는 거덜을 피하는 것이었지요.

낮은 신분이었지만 지체 높은 사람들을 직접 모시다 보니 우월감에 사로잡혀 몸을 몹시 흔들며 우쭐거렸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이 몸을 흔드는 것을 가리켜 ‘거들먹거린다.’ 하고, 몹시 몸을 흔드는 말을 ‘거덜마’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한 거덜들의 횡포가 심하여 그들에게 착취를 당했을 때 ‘거덜 났다.’는 말을 썼다고 하네요.

기록에 남은 ‘거덜’은 관직 상 명칭은 ‘견마배(牽馬陪)’로 종7품의 잡직(雜職)을 말합니다. 그리고 ‘피맛골’은 지금 종로의 먹자골목입니다. 어쨌든 완장을 차면 자신도 모르게 우쭐해지면서 남을 누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즉 권세가 생기는 것이지요. 주로 자신은 아무런 능력이나 권한이 없음에도, 권력자인양 행세하는 것이 ‘완장의 폐해’인 것입니다.

지금 완장을 둘러찬 높은 분들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완장은 국민을 위해 차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완장 찬분들은 그 완장의 위력을 잘 써야 합니다. 완장은 잘 쓰면 복을 지을 수도 있고, 잘못 쓰면 자신의 몸이 베일 수도 있으니 아주 조심할 바가 아닌 가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11월 3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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