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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세월호 1주기 이후 정부, 변하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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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세월호 1주기 이후 정부, 변하는 건 없었다

김현태 기자 입력 2015/04/19 03:45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유가족 및 시민 측과 경찰의 격렬한 현장
[뉴스프리존=김현태기자]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1년을 넘어 367일이 되는 날이다. 박근혜 정부는 '제2의 세월호'를 막겠다며 국가안전처를 신설했지만, 1년이 지난 오늘 어떤 업무를 하는지조차 국민들은 알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300여 명이나 되는 생명의 불꽃이 꺼졌고, 박근혜 대통령은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던 국민과의 약속은 누구와 한 약속인지 의아하다. 16일 세월호 1주기 추모제와 18일 열린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에서 기자의 눈으로 본 현장은 정부의 태도에 대한 분노와 국민들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1년 전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대국민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반드시 만들겠습니다"라고 발표한 것을 국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그렇다면 1년여가 흐른 지금 무엇이 바뀌었는지 되묻고자 한다. 1년 전 자식들과 가족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직도 거리에 남아있다. 유가족 측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지, 세월호 진실규명을 주장하지만, 정부 및 정치권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 대신 유가족과 시민들의 얼굴에 캡사이신 최루액을 뿌리고, 물대포를 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진도를 찾아 대국민담화를 마치고 중남미로 떠난 지 이틀, 변하는 건 없었다. 

박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지 이틀째 되던 4월 18일 오후 3시 '세월호참사 범국민대회'가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렸다. 이 날 서울 곳곳에서는 세월호와 관련한 집회들이 열렸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대한민국 엄마들' 주최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고, 광화문 광장에서는 '청소년공동체희망'주최로 세월호 1주기 416인 청소년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신대방에서 왔다는 A모씨(45)는 "세월호 1주기 추모제 때 국화 한 송이 헌화하기 위해 참여했다. 그런데 왜 경찰이 시민들을 막는지 이해할 수 없다. 1주기 추모제에서 경찰이 뿌린 캡사이신 최루액을 맞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과연 누구를 위해 경찰이 존재하는가? 왜 이런 상황이 공공언론에 보도가 되지 않는 것인가, 너무 화가 나고,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오늘 또 나왔다"고 전했다.

또한 물대포를 맞은 한 여학생은 너무 놀라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는 "경찰이 왜 우리한테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저 고등학생이란 말이예요. 죄송해요"라는 말과 함께 울음을 터뜨렸고, 주변의 어른들은 그녀에게 '미안하다'며 다독이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모인 3만여명은(경찰추산 1만여명) 서울 시청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이 후 광화문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수차례 격렬한 충돌이 발생했고, 경찰은 물대포를 쏘면서 대응했다.

오후 10시 20분경 광화문 누각에 있던 유가족이 광화문 북쪽에 있는 시민들과 합류하면서 정리 집회를 하고 이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수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79명의 시민을 연행했다. 오후 2시~5시경 유가족과 광화문 북쪽에서 연행된 21명을 합치면 이날 연행된 유가족과 시민은 100명이다. 또한 집회 참여자와 경찰 간의 충돌로 인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집회는 왜 격렬해졌는가?

다른 때의 집회와는 다르게 18일 집회가 격렬해진 것은 16일 세월호 1주기 추모제를 마치고 광화문 누각 앞에 격리된 유가족 및 시민들을 오후 2시경부터 연행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소식을 듣고 모인 유가족과 시민들은 광화문 누각 맞은 편(광화문 광장 북측)에서 농성을 시작했고, 경찰은 인도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오후 1:00 ~ 2:00경

사진= 오후 2시경 버스 위에 올라가 차벽설치 반대를 외치며 농성하던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연행되고 있다.

유가족 가운데 16명이 연행되었고,경찰은 동아일보 앞, 이순신 동상 앞, 세종대왕 앞, 광화문 광장 북측과 누각 쪽을 봉쇄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는 광화문과 경복궁 방향의 차량통행이 가능했다.



사진= 삼청동 삼거리부터 경복궁역, 지하도로, 세종대왕 동상 등 많은 곳에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통제하고 있다.@박정익

▶오후 3:00 ~ 6:00

사진=연행 소식을 듣고 모인 유가족과 시민들, 일부 시민은 도로에 막혀 있었다.

경찰은 관광객을 제외한 이동하는 시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불편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발생했다.  경찰이 통행을 제한하는 상황에서 연행자 소식을 듣고 모인 시민들은 경찰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오후 4시 10분 경찰은 법집행을 경고하고 15분 검거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경찰 측과 유가족 및 시민들은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며 대치했고, 시민들 몇 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시민들이 연행되면서 몸싸움은 한층 더해갔다.

사진=연행되는 시민들과 이를 제지하는 시민과 경찰이 뒤엉켜 몸싸움이 일어났다.@박정익 

오후 5시 15분 시청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가 광화문의 소식을 듣고 남은 행사 일정을 취소하고 광화문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후 세종대왕-이순신동상 사이의 차량도 통제되고, 경찰은 동아일보에서 광화문 현판까지 5~6겹의 폴리스 라인을 설치했다.

오후 5시 45분 살수차가 등장하면서 근처에 있던 시민들과 경찰의 대치 및 몸싸움이 일어났다. 시민들은 살수차의 앞을 가로막아 진입을 막았고, 경찰은 이를 제지하면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진=살수차가 등장하면서 시민들이 모여 진입을 막고있다. 그리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경찰병력이 투입되었다.@박정익

▶오후 6:00 ~ 7:00
서울 시청광장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시민들이 세종문화회관 옆길을 따라 광화문 유가족 측으로 집입을 시도하였고, 이를 막는 경찰과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은 이동하는 시민들을 막기위해 캡사이신 최루액을 살포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격분한 시민들은 경찰과 맞서기 시작했다.

오후 6시 30분 최루탄이 터지면서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고, 경찰은 물대포를 시민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사진=캡사이신을 뿌리면서 대응한 경찰과 격분한 시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박정익


사진=최루탄이 터지자 격분한 시민들이 경찰에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박정익

사진=시위가 격렬해지자 물대포를 쏘며 대응하기 시작했다.@박정익

▶오후 7:00 ~ 11:00
서울 시청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 옆길을 거쳐 이동한 시민들에 의해 경찰의 저지선은 무너졌다.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로 뒤덮였다. 이후 경찰은 광화문 누각 맞은편을 향해 병력을 집중하기 시작했고, 차벽도 설치되었다. 경찰의 물대포 대응에 격분한 시민들은 경찰버스에 올라 농성을 하고, 줄지어 늘어선 경찰버스를 파괴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물대포, 캡사이신 최루액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일어난 것에 대해 "폭력경찰 물러가라", "어떻게 유가족에게 물대포를 쏘냐"고 외쳤다. 이후 몇몇의 시민들은 차벽을 없애기 위해 경찰버스를 미는 등 시위는 점차 격렬해졌다. 파괴되고 시민들에 의해 움직여진 버스 사이로 선두에 섰던 시민들이 도로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고, 경찰 측은 재차 최루탄 및 캡사이신 최루액을 살포하고 물대포를 쏘는 것으로 대응했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시민들과 경찰의 몸싸움은 격렬해졌다. 한 학생은 "언제까지 가만히 있을 거냐"며 주변에 앉아있던 집회 참여자들을 독촉했다. 경찰은 "물포2호 1시 방향 정조준하세요"라며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머리 위로 물대포가 뿌려지면 시민들은 잠시 물러났다가 다시 모여 차벽 무너뜨리기를 시도했다.



정작 유가족과 시민들이 찾아가려는 집 주인은 이 나라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남미 4개국 순방 중고, 그녀가 내치를 방치하고 있는 사이 정부에 대한 불신과 반감, 그리고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가 정치권에 태풍을 몰고 왔고,정부의 세월호 무대책에 비롯된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후 곳곳에서 시민들의 항의와 몸싸움이 지속되었고, 이날 충돌과정에서 광화문 광장 북쪽에서만 경찰버스 7~10여 대가 파손되었다. 또한 산발적인 시위와 몸싸움이 일어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규모는 줄었지만, 오후 10시 5000여 명의 시민들은 "유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구호를 외치며, 현장을 지켰다. 오후 10시 20분쯤 누각에 있던 유가족들이 광장 북쪽에 있는 시위대에 합류함으로써 이날 집회를 마무리했다. 유가족은 시민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현장을 지켜본 한 여고생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유가족들이 투사가 되는 현실이 비참하다"고 밝혔다.

유가족과 함께 격렬한 집회를 마다하지 않는 고마움 때문이었을까, 격앙된 모습으로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은 "여기 계신 분들이 물대포와 캡사이신 최루액을 맞고 고생하셨는데 저는 캡사이신만 먹었다"며 "제가 더 많이 당해야 하는데 죄송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유가족들은 경찰의 진압이 거세질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았다. 전 위원장은 "저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전까지) 국가를 상대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싸워보니 대한민국 국민들이 얼마나 핍박받고 살았는지 알겠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다면 국민들과 함께 안전하고, 인간의 존엄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오후 11:00 이후
유가족은 광화문 광장 북쪽에 모여 농성을 계속 하였고, 남은 시민들의 일부는 구호를 외치며 모여있었다. 시민들은 발생한 쓰레기를 자발적으로 치우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경찰 측도 현장 정리를 하며 마무리 작업을 하는 듯 보였으나, 11시 30분 경 광화문 광장 북쪽에 농성 중인 유가족을 둘러싸려는 행동을 보였다.

kimht10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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