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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팔자와 운명..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 칼럼] 팔자와 운명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11/20 07:55 수정 2017.11.21 08:58
▲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팔자와 운명

사람이 일이 잘 안 풀리고 고단한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공연히 팔자타령을 하거나 운명 탓을 하기 쉽습니다. <팔자(八字)>는 사람이 타고난 운수나 분수 또는 사람이 태어난 년(年), 월(月), 일(日), 시(時)를 간지(干支)로 나타내는 여덟 글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운명(運命)>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을 말함이지요.

그리고 <인연(因緣)>은 결과를 산출하는 내적 · 직접적 원인과 결과의 산출을 도와주는 외적 · 간접적 원인을 합한 말입니다.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주된 것이 인(因)이며, 보조적인 것이 연(緣)이라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 생겼다가 인연에 의해 멸(滅)합니다.

제 2의 부처님으로 추앙될 만큼 불교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인물이 용수(龍樹 : AD약 150~250)보살입니다. 그의《중론(中論)》에 의하면 이와 같은 존재의 생멸은 진실한 모습이 아니므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며, 나아가 그 인연마저도 실재성이 부정되므로 모든 존재는 <공(空)>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세상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보다는 요행수로 살려고 하는 그런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은 자기 뜻대로 잘 안 된다 싶으면 곧잘 돈타령, 인연타령, 운명타령, 팔자타령 등, 매사가 타령만 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제나 조상 탓, 부모 탓, 남편(부인) 탓, 자식 탓, 환경 탓, 남의 탓을 하며 팔자와 운명의 굴레에서 헤어나질 못합니다.

이러한 타령꾼은 늘 부정적인 사고(思考)로 비관적이며 또한 의지가 빈약함으로 정서가 불안하고 초조하기 마련입니다. 자나 깨나 운명에 의존하고 기대면서 노력은커녕 말만 앞서고 하는 일마다 흐지부지 끝맺음이 없습니다.

‘팔자와 운명!’ 이렇게 타령만 하는 사람은 그 무서운 팔자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팔자와 운명’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차동엽 신부님이 제시하는 ‘무지개 원리’가 그것입니다.

<무지개 원리>

1. 빨강 :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2 .주황 : 지혜의 씨앗을 뿌려라

3. 노랑 : 꿈을 품어라.

4. 초록 : 성취를 믿어라

5. 파랑 : 말을 다스려라.

6. 남색 : 습관을 길들여라.

7. 보라 :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어떻습니까? 팔자나 운명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팔자에 대한 집착이 팔자가 됩니다. 과연 팔자라는 게 있는가요? 이 물음에 관련하여 <세치 혀가 백만 군사보다 강하다.> 라는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 올려 봅니다.
「옛날에 아주 영험한 도사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점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느 날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수재 3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누가 과거에 합격될지 알고 싶어 도사에게 복채(卜債)를 내고, 향을 피운 후 절을 올렸다.

도사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그들에게 손가락 하나를 내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도사는 먼지떨이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 보세요, 그때 가면 자연히 알게 될 거요. 이것은 천기라서 누설할 수가 없습니다.” 3 명의 수재는 궁금했으나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지요.

수재들이 돌아간 후에 도사의 상좌가 호기심이 나서 물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손가락 하나 내민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한 명이 합격된단 말입니까?” “그러니라.” “그들 가운데 둘이 합격되면요?” “그럼, 하나가 합격되지 못한다는 뜻이니라.” “그들 셋이 모두 합격하면 어떻게 하지요?” “그때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합격된다는 뜻이니라.” 상좌는 그때서야 깨닫고 나서 말했다. “아 이것이 바로 ‘천기’였군요!”」

본래가 정해진 팔자나 운명은 없는 것입니다. 팔자니 운명이니 하는 것은 바로 ‘녹피(鹿皮)에 가로 왈(曰)’입니다. 사슴 가죽은 부드러워 잡아 다니는 대로 변합니다. ‘날 일(日)’자의 팔자나 운명은 잡아 다니는 대로 ‘가로 왈(曰)’자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팔자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금 여기뿐입니다. 지금이 영원이며 영원이 지금입니다. 우주의 진리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생사와 고락을 초월합니다. 바로 여기가 이미 광대 무량한 낙원이지요.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으며, 전생과 내생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팔자와 운명은 모두 나의 생각 속에 있는 관념이고 존재하지 않는 허상(虛像)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점이나 보러 다니고, 있지도 않은 팔자나 운명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며, 헛 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불행하지만 다음 생에는 행복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지금 불행하면 내생도 불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바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 행복이라는 것은 지금 여기를 극락으로 알고 조금은 바보처럼,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해 맨발로 뛰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팔자도 고쳐지고 운명도 개척이 되는 것이지요. 지금 여기가 극락이고 천국입니다. 그런데 어찌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가 지옥이고, 고해(苦海)이며, 스스로를 어리석고 부족한 중생이고 죄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지금 서원(誓願)을 세웁시다. 팔자를 초월하고 운명을 바꾸고야 말겠다는 자신과 진리와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원(願)은 크게 세우고, 공(功)은 작은 데에부터 쌓으며, 대우에는 괘념(掛念)치 말고 공덕(功德) 짓기에 노력하면, 자연 큰 공과 큰 대우가 돌아와 팔자와 운명이 활짝 열리지 않을 런지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1월 20일

덕 산 김 덕 권(길호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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