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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 김덕권 칼럼] 인간의 길흉화복..
오피니언

[덕산 김덕권 칼럼] 인간의 길흉화복

김덕권 기자 duksan4037@daum.net 입력 2017/11/21 08:50 수정 2017.11.22 09:53
김덕권 전 원불교문인협회장,칼럼니스트

인간의 길흉화복

도대체 운명(運命)이란 무엇인가요?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일체를 지배한다고 생각되는 초인간적인 힘을 운명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살아가야 할 길이 정해진 것일까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타고난 사주팔자는 못 속이는 법이라며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이미 모두 정해져 있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정답일까요? 윤회 론(輪廻論)은 깊은 정신적 수행을 통해 통찰해 낸 심안(心眼)이 열려야 볼 수 있는 인간 최고의 존재론적 직관이자 통찰이라고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이생만 살다가 죽는다면 얼마나 허망(虛妄)할까요?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길흉화복은 절대로 바꿀 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많은 생을 윤회하면서 내가 짓고 맺은 업연(業緣)으로 인해 현생의 삶에 대한 업보(業報)를 받아 태어났지만 이것은 다만 기본 조건일 뿐 나의 행동과 사고에 의해 그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타고난 운명의 업보인 사주팔자를 안다면 좋은 일을 좋은 대로 당연히 받지만 안 좋은 일에 대해서는 내 마음자리와 행을 바꾸면 당연히 운기(運氣)의 흐름도 달라집니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영원히 변화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떠한 것도 반드시 탄생, 존속, 파괴, 사멸을 반복하면서 끊임없이 변화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주괴공의 성(成)이라는 것은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고 성장해 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고 주(住)는 성장의 과정이 끝나고 난숙기에 들어가 그것이 존속해 가는 과정입니다. 또한 괴(壞)란 것은 난숙기를 지나 노쇠기에 들어가는 상태를 말하고, 공(空)이란 것은 일정한 생명활동이 끝나서 우주 속에 용해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의 원리(原理)에 따라서 지구는 춘하추동(春夏秋冬)으로 돌고, 인간은 생로병사(生老病死)로 돌며, 만물은 생주이멸(生住異滅)로 그리고 인생은 흥망성쇠(興亡盛衰)로 돌고 도는 것입니다. 일찍이 부처님은 ‘자아(自我)’가 무엇인가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자아’란 ‘참모습’ 혹은 ‘진정한 나’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이 고통스러운 것은 바로 ‘자아의 참모습’을 모르기 때문이며, 사실 인간이 나고 병들고 죽는 것은 고통이지만 이보다 더 큰 고통은 그것을 모르는 것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그 어떤 확신도 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자체도 하나의 고통임이 틀림없습니다. 부처님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통해서 인간이 깨달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은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덧없기 때문에 ‘나’와 ‘나의 것’에 대한 모든 집착이 사라지면 마음의 고통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에게 주어진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그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명(明) 나라 때 관료였던 원료범은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를 위해 의학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역학(易學)에 정통한 공선생이라는 분을 만났더니 다음과 같은 예언 하는 것입니다.

“자네는 의학공부를 그만두고 곧 학문을 해서 벼슬을 할 운명이다. 자네가 과거를 보면, 초시에서는 14등으로 합격하고, 그 다음 시험은 71 등으로 합격한다. 마지막 시험에서는 9등으로 합격 할 것이다.” 몇 해 후에 원료범이 과거에 응시했는데, 시험의 등수가 세 번 모두 적중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도 공선생의 예언은 계속 되었었습니다.

“자네는 관직에 나가 처음에는 공생(貢生)이 되고, 그 다음에는 사천성의 대윤(大尹)이 된다. 그러나 대윤에 부임 한지 삼년 반이 지나면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살다가 53세 되는 해, 8월 14일 축시(丑時)에 거실에서 죽는다. 아깝게도 슬하에 자식은 없도다.....”

원료범이 18세쯤에 들었던 이 예언은 관직생활을 하면서 신기하게도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원료범은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정해진 대로 이루어지는 것 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53세가 되면 죽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매사를 그저 담담하게 생각하고 더 이상 무엇을 구하거나 취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원료범이 37세가 되던 해에, 우연한 기회에 남경(南京)에 머무르던 운곡선사를 만나면서 인생관이 확 바뀌게 됩니다. 사흘 밤낮을 운곡선사와 자신의 운명에 관해서 토론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원료범은 운명은 바뀔 수 있다는 새로운 신념을 갖게 되었지요. 운곡선사의 가르침의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지금 당장 ‘신념과 믿음을 바로 가지고, 생활 습관을 바꾸라’ 는 것이었고, 둘은 ‘주위의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가르침에 감명은 받은 원료범은 이전까지 자신의 호가 ‘학해(學海)’였었는데, 이 날 이후로 평범한 생활습관을 끝낸다는 뜻에서 호를 ‘요범(了凡)’이라고 바꾸었습니다.

그는 그 날 이후로 혼자 있을 때나 여럿이 같이 있을 때나, 항상 생각을 맑고 밝고 바르게 가지려고 노력하였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공덕을 쌓으려고 최선을 다 하였습니다. 원료범은 이전에 공선생이 예언 하였던 자신의 팔자를 고치려는 신념으로 3천 가지에 달하는 공덕을 쌓기로 결심을 합니다. 장부를 만들어 놓고 한 가지 선행을 할 때 마다 그 내용을 날마다 붓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음식을 보시(布施)하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산 물고기를 사들여 방생(放生)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하루에 많게는 열 개의 동그라미가 찍히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드디어 팔자에 없는 아들까지 도 낳게 되었지요.

나이 50세에 드디어 3천 개의 동그라미가 완성 되었습니다. 3천 가지 공덕을 쌓은 얼마 후에 원료범은 벼슬이 승진하여 현감이 되었습니다. 현감이 되고부터는 다시 1만 공덕을 쌓기로 목표를 세우고 실천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현감이라는 자리는 하루 종일 관아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집무를 해야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걱정으로 선행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하여 고심하던 차에, 하루는 꿈속에서 수염을 하얗게 기른 신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자신이 선행 발원을 해놓고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고충을 여쭈었지요.

그랬더니, 그 신선이 말하기를 “그대가 현감이라는 자리에 있으니 백성들에게 물리는 세금을 조금만 감 해 주면 1만 가지 선행이 한꺼번에 완성 될 것이다.” 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당시 세금은 토지 한 마지기 당 2할 3푼 7리를 거두었는데, 신선이 일러준 대로 이를 대폭 줄여서 1할 4푼 6리로 낮추어 세금 을 징수 하였습니다.

벼슬이라는 자리가 한 방에 1만 가지 선행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지요. 원료범은 이렇게 스스로 정신수양을 하고 공덕수행을 하여, 일찍이 공선생이 예언 하였던 53세 라는 운명의 한계를 넘어 73 세 까지 천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흥망성쇠는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을 말합니다. 곧 어떤 사물 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과정을 이르는 말이지요. 그리고 만물의 생주이멸(生住異滅)은 모든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하는 네 가지 현상이나 상태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길흉화복도 생기고, 머물며, 변화하고 소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도 노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팔자를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팔자와 운명을 고치는 것이 우리가 정당한 원(願)을 세우고 끊임없이 공덕을 지어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날이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지의 일기도 어느 때는 명랑하고 어느 때는 음울(陰鬱)한 것과 같이, 사람의 기운도 어느 때는 상쾌하고 어느 때는 침울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일생도 어느 때는 순하고 어느 때는 거슬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 또한 인과의 이치에 따른 자연의 변화인 것이지요. 그래서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 변화를 겪을 때에 수양(修養)의 마음이 여여(如如)하여, 천지와 같이 심상(尋常)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 변화에 마음까지 따라 흔들려서 기쁘고 슬픈 데와 괴롭고 즐거운 데에 매양 중도(中道)를 잡지 못하므로 고해(苦海)가 한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끊임없이 공덕을 지어 인간의 길흉화복이나 자신의 운명을 한 번 바꿔보면 어떨 까요!

단기 4350년, 불기 2561년, 서기 2017년, 원기 102년 11월 2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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