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39만원으로 한달 사는 사람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최저임금의 적용 제외 대상을 규정한다. 장애인 노동자는 최저임금법 제7조의 대상이 되는 집단이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하반기까지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 노동자는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돼도 될까. 장애인 노동자 최저임금 적용 문제를 둘러싼 각기 다른 입장들과 변화되고 있는 장애인 고용 정책 패러다임을 짚어 봤다. - 기자말
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정신장애나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자'에 대해서는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 조항이 모든 장애인 노동자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표현 그대로 근로능력이 현저히 낮은 장애인 노동자에 한해 고용노동부장관의 인가를 거쳐야만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가능하다.
인가 절차는 까다로운 편이다.사업장이 위치한 지방고용노동관서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지사의 평가·실사 과정을 통해 인가 여부가 결정된다. 인가 기간은 1년이다. 이 기간이 지나면 같은 절차를 반복, 재인가를 받아야 한다.
고용노동부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된 장애인 노동자(아래 적용제외인가 장애인)는 2014년 현재 5625명. 같은 자료를 보면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의 월평균 임금은 39만420원(
주 평균 33시간 근로 기준)이다. 장애인가구의 한 달 최소 생활비 154만원(<2011 장애인 실태조사>, 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2)에 훨씬 못 미친다. 보건복지부가 고시한 2015년 1인 가구 최저생계비 61만7281원보다도 적다.
무엇보다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의 10명 중 9명은 중증장애인이다. 필수적인 생활비가 비장애인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의 소득 수준은 어떤 계층보다도 열악한 현실이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장애인 월평균 임금 39만원▲ 적용제외인가 장애인 월평균임금 비교최저임금법 제7조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이 제외된 장애인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39만 420원(고용노동부 자료)이다. 이는 장애인가구 최소생활비, 1인가구 최저생계비에 한참 못 미치는 액수다.
현재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임금 지급 기준이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을 한참 밑도는 임금을 지급해도 합법이 된다.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노동자에 대해 감액 없는 최저임금 적용을 권고했다. UN장애인권리위원회 역시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의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1월 29일 <장애인 고용 종합대책>(아래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에 대한 임금 지급 기준을 마련해 이들의 소득 수준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의 직업 능력 수준을 평가하고, 이 기준에 맞춰 최저임금을 일정 비율만큼 감액 지급하는 '최저임금 감액 적용'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정부는 장애인 노동자 고용 감소 우려 때문에 최저임금 전면 적용 대신 감액 적용을 선택했다. 전면 적용보다 임금 인상폭이 크지 않아 사업주의 부담이 적고, 그만큼 장애인 노동자 고용 감소 우려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2009년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이 당시 노동부의 학술연구용역사업에 따라 작성한 <장애인근로자 근로실태 및 최저임금 적용방안 연구>(아래 연구보고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하향의 노동수요곡선 하에서 기업이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인상하면 미숙련 또는 경력부족 노동자의 고용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
연구보고서는 최저임금 감액 적용 역시 평균임금을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증가시키기 때문에 미약하게나마 장애인고용이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연구보고서는 실증분석결과를 토대로 장애인노동수요의 임금탄력성이 -0.580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장애인의 평균임금이 1% 증가했을 경우 장애인고용은 약 0.6% 감소한다는 의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저임금을 안 주려고 인가를 받는 건데 저희가 마련한 건 그런 사람들(적용제외인가 장애인)에 대해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평가해보고 그만큼 주자는 것"이라며 "최저임금 이상 받고 있는 (장애인)근로자도 능력을 다시 평가해서 그만큼을 다 줄이자 이런 의미는 아니다"라고 최저임금 감액 적용 방침의 취지를 설명했다.
심상정 "사용자 주관적 판단에 따라 최저임금 안 줘도 되나?"▲고용노동부는 '장애인 고용 종합대책'을 통해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인가를 받은 장애인 노동자의 임금 지급 기준을 마련, 이들의 소득 수준을 개선하고자 '최저임금 감액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의 직업 능력 수준을 평가해 임금 지급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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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종합대책 발표 이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지난 2월 2일 '장애인고용 종합대책인가? 장애인근로자 노예임금 종합대책인가?'라는 성명을 통해 정부에 종합대책 철회를 요구했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정책국장은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장애인을 (최저임금) 적용 제외 대상자로 두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조항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적용 제외 규정을 삭제한다는 내용의'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던 심상정 의원도 기자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이렇게 말했다.
"근로 능력에 맞도록 임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이면에는 사용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담겨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최저임금 자체를 위협할 수 있지 않을까 우려도 된다."
이러한 주장들은 변화된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다. 기존의 장애인 정책은 재활패러다임을 바탕으로 설계됐다. 재활패러다임은 전문가들의 조력으로 중증장애인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치료와 재활이 핵심인 것이다.
반면 최근 제기되고 있는 자립생활패러다임은 장애의 극복 등 장애인 개인의 차원을 넘어 장애를 둘러싼 환경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중증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직접 꾸려나갈 수 있도록 선택권과 역량을 보장하는 차원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즉, 장애인의 자립 지원으로 사회통합을 이루는 게 목적이다.
2014년 4월 11일, 중증장애인 인턴제 및 공공고용제 도입 토론회(중증장애인노동권공대위, 국회복지노동포럼, 한국장애학연구회, 해냄복지회 공동주최)에서 김재익 해냄복지회 상임이사는 주제발표문을 통해 "자립생활패러다임은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사는 것을 막는 환경적 장벽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Batavia & Schriner, 2001 참고 내용 재인용)고 설명했다.
자립생활패러다임에 따르면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등 고용 정책에 있어서 차별을 두지 않아야 한다. 장애인 고용 정책을 장애인 복지와 같은 맥락에서 살피기 때문이다. 즉, '일을 통한 소득'으로 '일을 통한 복지'를 구현함으로써 자립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고용지원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일자리가 곧 복지'라는 정부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심상정 의원은 "최저임금은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최소한의 금액을 말하는 것이며, 국가가 최소한의 금액을 보장하고 각 개인의 업무 성과에 따라 급여(를) 더 받고, 덜 받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고용지원패러다임 '일을 통한 소득으로 장애인 복지 구현'장애인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해 사회와의 통합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장애인 정책의 방향성과 고용지원패러다임은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의 근로자성 논란'을 기회의 평등과 자립 기반 형성이라는 이름으로 매듭지어 버린다. 근로자성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이 되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기 때문에 장애인 최저임금 적용 여부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의 대다수는 직업재활시설에 소속된 중증장애인이다. 이들은 고용 시장(경쟁고용)으로 진입할 수 있는 직업 훈련을 위해 특별한 환경을 제공 받아 노동의 기회를 갖는다(<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별표4 참고). 이른바 '보호고용'이다. "보호고용 영역의 장애인이 노동자라고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국립한국재활복지대학의 연구보고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최저임금법은 원칙적으로 법적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므로 장애인의 경우도 최저임금을 적용하려면 우선 법적 근로자성을 충족하는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보건복지가족부 관할 보호고용 장애인은 최저임금법의 적용대상인 근로자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
장애인 최저임금 감액 적용과 관련해 기본 연구과제를 수행 중인 남용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정책연구팀장은 기자와의 서면인터뷰에서 "서구사회의 많은 국가들에서는 보호고용(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의 직업재활시설)에 속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게는 근로자성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용현 팀장은 "근로자성을 갖는 장애인 근로자에게는 당연히 최저임금을 동일하게 보장하고, 근로자성을 부여받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은 국가의 기초보장제도를 통해 생활을 보장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주장 또는 분석과 달리 법원은 보호고용된 장애인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2011구합15374, 최저임금적용제외 불인가처분취소)을 내놓기도 했다. 2011년 서울행정법원이 판결문에 적은 내용이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이) 근로 제공의 기회를 부여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음으로써 근로를 통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는 시설임이 분명하므로, ○○○ 등이 이 사건 재활시설에서 직업훈련을 받는 것에 나아가 실질적으로 근로를 제공하고 그에 따라 임금을 지급받고 있다면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자로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서정희 군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논문 <보호고용된 장애인의 근로자성에 관한 소고> 재인용, 한국장애인복지학, 2012)
법원 판결은 보호고용된 장애인을 근로자의 생산성과 연관지어 훈련생으로 봤던 기존의 시각 대신 근로관계 자체에 집중한 것이라는 게 서정희 교수의 분석이다. 조현수 전장연 정책국장의 말을 덧붙이면 이렇다.
"노동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일 뿐만 아니라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다. 교육이 권리이자 의무이기에 공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것처럼, 노동도 마찬가지로 시장의 영역에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요소가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나 한국처럼 소득보장 정책이 미비한 상황에서 노동은 곧 생존과 연결되는 문제이기에 최소한 공공의 영역에서 통제될 수 있어야 한다."
정리하면 적용제외인가 장애인의 근로자성은 장애인 자립 및 사회통합의 일환으로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는 의미다.
법원 "보호고용된 장애인도 근로자"결국 법원 판결은 자립생활패러다임에 기반한 고용지원패러다임과 맥을 같이 한다. 서정희 교수는 앞서의 논문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통합 혹은 일반고용(ordinary employment)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하는 경우에는 보호고용에서의 장애인을 근로자로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장애인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고용 정책에 있어 국가 책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장애인 최저임금과 관련해서도 다르지 않다. 장애인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전면 적용해야 하며, 임금 상승분만큼의 부담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심상정 의원은 "장애인에 대한 최저임금의 기본적인 원칙은 장애인의 최저임금은 보장하고, 발생하는 사업주의 부담을 국가가 보장하는 형태로 제도가 개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정부 지원 시 재원 조달 방안은)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산정이 필요하나, 현재 장애인고용촉진장려금, 고용보험, 국가 일반회계 등으로 충분히 보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현수 국장은 "장애인 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전면 적용 또는 감액 적용으로 인건비 보전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직업재활사업'의 일환으로 정부 차원에서의 일반 예산 배정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조현수 국장은 "해외의 사례에서도 많게는 50% 가까운 수준이 정부의 보조금 지원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직업재활시설 운영·유지 지원이 더 절실한 현실
▲현장에서는 직업재활시설의 유지 및 운영에 필요한 지원이 최저임금 문제보다 우선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설 존립이 가능해야 장애인에 대한 보호고용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문자 성모보호작업시설 원장은 턱없이 부족한 시설 인력 실태를 지적하며, 관련 지원을 강조했다.
최저임금과 관련한 논쟁에서 오히려 당사자인 직업재활시설들은 한 발 물러나 있다. 최저임금 적용 여부에 앞서당장시설 운영·유지 등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편, 장애인 가족들 또는 보호자들은 직업재활시설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안도한다. 그들은 장애인들이 시설에 나가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장애인들에게 직업재활시설은 친구를 만나고, 공부(직업재활훈련)를 하며 본인만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업재활시설이 문제없이 운영되는 게 중요하다.
윤문자 성모보호작업시설 원장은 "장애인 친구들이 40명인데 이들을 돕는 직원은 날 포함해서 4명뿐이다, 이는 시설 관리 인력까지 포함된 것이다, 규정대로면 11명이어야 한다"며 인력 지원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당사자들에게 최저임금 적용 문제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헌법 제34조 5항은 "신체장애자 및 질병·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한다. 변화된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은 국가 보호의 형태가 '자립 지원을 통한 사회통합'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인 권리에 관한 협약,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장애가 비장애인과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유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현실은 당장 관련 시설의 유지·운영에 대한 지원마저 충분하지 못한 형편이다. 지향과 현실의 차이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애인 최저임금 문제가 어떤 정책으로 귀결돼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5625명은 지금도 39만420원으로 한 달을 살아가고 있다.